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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을 것 없는’ 윤 대통령이 흘려보낸 4개월…보수조차 “달라져야 한다”

류지미 2022. 9. 4. 21:37

‘잃을 것 없는’ 윤 대통령이 흘려보낸 4개월…보수조차 “달라져야 한다”

  • 한겨레
  • 성한용 기자
  • 입력2022.09.04 07:00최종수정2022.09.04 19:45

[한겨레S] 성한용 선임기자의 정치 막전막후 444

대통령의 능력과 리더십

지난 넉달 보인 역량 분석해보면

몰상식 언행에 통치 역량 못 보여

직접성·정직성 결여한 태도 일관

국힘 내부·보수 논객들마저 외면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7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브리핑룸에서 열린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취재진 질문에 답하고 있다. 대통령실사진기자단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에서 자유민주적 기본 질서를 파괴하면서도 국민을 위한 것이라고 강변하였고, 전두환 대통령은 헌정 파괴의 쿠데타와 광주에서의 유혈 참사를 딛고 권력을 장악한 후에 ‘정의 사회’를 표방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정치 지도자들의 말과 행동의 불일치에 대해서는 언론과 시민사회의 끈질긴 추적과 함께 이를 용납하지 않으려는 국민적 의지가 정말로 아쉽다.”

“유권자에게 자신을 검증할 시간을 주지 않으려는 후보는 경계해야 한다. 기성 정치권과 정치인들에 대한 반발 심리라는 점은 이해될 수 있지만, 선거에 임박하여 신선함을 무기로 혜성처럼 등장하는 후보를 일종의 ‘충동구매’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실체가 드러나자 후회하는 식의 행태가 되풀이되어서는 곤란하다.”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의 선친(윤석오)은 이승만 대통령 시절 경무대 비서관을 했습니다. 윤여준 전 장관이 어릴 때 경무대에 갔다가 하얀 가구에서 꺼낸 차갑고 맛있는 과자를 먹은 기억이 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게 바로 냉장고였고 아이스크림이었다고 합니다. 윤여준 전 장관 자신은 전두환·노태우·김영삼 대통령 3대에 걸쳐 청와대 비서관을 했습니다. 대통령의 리더십에 관한 책을 그가 쓴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집권 4개월 언행, 몰상식 수준



2011년에 출판한 <대통령의 자격―스테이트크래프트>는 ‘대통령에 당선되는 데 필요한 능력’이 아니라 ‘선출 이후 대통령으로서 일을 잘할 수 있는 능력’에 관한 책입니다. 스테이트크래프트는 우리말로 ‘치국경륜’(治國經綸), ‘통치 리더십’ 정도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당선된 지 6개월, 취임한 지 4개월이 거의 다 되어갑니다. 이제 윤석열 대통령의 스테이트크래프트, 즉 대통령으로서의 역량과 리더십에 대한 평가를 시작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앞에서 인용한 책 내용은 ‘대통령에게 요구되는 언행의 자질 네 가지’ 가운데 세번째 기준 ‘말과 행동이 어긋나지 않는지’에 관한 것입니다. 저는 특히 “선거에 임박하여 신선함을 무기로 혜성처럼 등장하는 후보를 일종의 ‘충동구매’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실체가 드러나자 후회하는 식의 행태가 되풀이되어서는 곤란하다”는 대목이 무척 흥미로웠습니다. 어쩌면 윤석열 대통령이 바로 이런 사례에 해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윤여준 전 장관이 책을 쓴 것은 2011년인데 11년 뒤의 미래를 미리 내다보고 예언이라도 한 것 같습니다. 책에는 이런 내용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지도자의 정직성이 중요하다. 정치인 중에는 자신은 이념과는 상관없으며 자신의 위상을 ‘상식’에 두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없지 않다.”

“만일 국가 운영을 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정치적 원칙으로서 상식을 내세운다면, 이는 결국 정치적 갈등을 상식 대 비상식(혹은 몰상식)의 대립, 즉 선악의 갈등으로 몰고 가게 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 대목도 윤석열 대통령을 콕 집어서 비판한 것처럼 읽힙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내걸고 집권했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집권 이후 언행은 오히려 불공정과 몰상식에 가깝습니다. 제 평가가 너무 부정적인가요? 그렇지 않습니다. 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국민의힘 정치인들의 비판은 훨씬 더 가혹합니다. 취임 초 인사 난맥 때만 해도 여권에서는 “지켜보자”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국정 지지율이 크게 떨어지자 국민의힘 의원들도 비판을 시작했습니다.

말 바꾸기와 잘못에 사과 않기
 
 
물론 드러내놓고 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대개는 기자들에게 슬쩍 털어놓거나 자기들끼리 주고받는 푸념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무섭기 때문일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비판의 핵심은 정치적 리더십 자체가 너무 부실하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스테이트크래프트라고 할 수 있는 리더십 자체가 없는 것 같다는 의미입니다. 이들이 이런 평가를 하는 이유는 그동안 있었던 몇 가지 사건 때문입니다.


첫째, 검찰개혁 합의 번복입니다. 윤석열 당선자 시절 권성동 원내대표가 박병석 국회의장 중재로 검찰 직접수사권을 축소하고 중대범죄수사청을 설치하는 내용의 검찰개혁 방안을 민주당과 합의했습니다. 권성동 원내대표는 서명 전에 윤석열 당선자에게 내용을 보고했고 의원총회 추인도 받았습니다. 그런데 합의문을 발표한 뒤 검찰에서 반대 여론이 들끓자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와 이준석 대표가 나서서 합의안을 비판하기 시작했습니다. 윤석열 당선자는 입을 꾹 다물었습니다. 버티던 권성동 원내대표는 합의를 번복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윤석열 당선자가 태도를 바꿨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합리적입니다. 진실은 권성동 원내대표만 알고 있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금까지 권성동 원내대표를 쉽게 내치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이 사건 때문 아닐까요?


둘째, 초등학교 5살 입학 파동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7월29일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업무 보고를 받고 “취학 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을 신속히 강구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검토하라”가 아니라 분명히 “강구하라”였습니다. 하지만 반대 여론이 강하게 일자 윤석열 대통령은 “교내 방과 후 돌봄이 전제돼야 한다. 각계각층의 여론을 들어보라”고 슬그머니 물러섰습니다. 그러고도 진화되지 않자 결국 8월8일 박순애 부총리를 사퇴시켰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박순애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지난달 8일 저녁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국교육시설안전원에서 사퇴 의사를 밝힌 뒤 고개 숙여 인사하고 있다. 백소아 기자 thanks@hani.co.kr

 
셋째, 지금도 진행 중인 이준석 대표 축출 기도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권성동 원내대표에게 보낸 ‘내부 총질이나 하던 당대표’ 문자가 지난 7월26일 공개됐습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사과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사태는 엉뚱하게 전개됐습니다. 국민의힘이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로 전환하면서 이준석 대표를 쫓아낸 것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8월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다른 정치인들께서 어떠한 정치적 발언을 했는지 제가 제대로 챙길 기회도 없었다”고 동문서답을 했습니다. 비겁한 것일까요, 아니면 국민을 바보로 아는 것일까요?

최근에는 초재선 의원들을 직접 만나거나 전화를 걸어서 국민의힘을 비대위 체제로 전환해야 한다고 압박을 가하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국민의힘 정치인들은 윤석열 대통령의 이런 리더십을 “자기 손에 피 안 묻히는 방식”이라며 무척 낯설어합니다. 왜 그럴까요?

정치인들은 다른 분야의 사람들과 달리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직접성입니다. 정치인은 중요한 일을 자기가 직접 하는 사람입니다. 선거에 출마하려면 외롭게 결단해야 합니다. 선거운동은 자기가 해야 하고, 정치자금도 자기가 알아서 마련해야 합니다. 낙선의 고통도 혼자의 몫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를 쫓아낼 때 직접 나선 것은 역설적으로 그가 전형적인 정치인이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반면에 검사나 관료들은 조직인입니다. 조직의 힘으로 일합니다. 잘못해도 조직이 보호해줍니다. 조직의 뒤에 숨는 데 익숙합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 조직에 더 익숙한 것 같습니다.

둘째, 정직성입니다. 우리는 정치인이 거짓말을 많이 하는 것으로 잘못 알고 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정치인은 거짓말을 할 수 없습니다. 공인이기 때문에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합니다. 지역구에서 민원을 받아도 해결하기 힘들면 “어려워 보이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합니다. “해결할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정치인의 모든 말과 행동은 감시를 받습니다. 기자들은 정치인과의 통화를 대개 녹음합니다. 정치인의 거짓말은 언젠가 반드시 탄로가 납니다. 정치인이 사과를 자주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그들이 잘못을 인정할 줄 알기 때문입니다. 정직하기 때문입니다.

윤석열 대통령은 아직 정치인이 아니라서 그럴까요? 자기 잘못을 슬그머니 다른 사람에게 떠넘기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사과에 너무 인색합니다. 안타깝습니다.
 
보수 논객도 “윤 대통령 달라져야”



윤석열 대통령의 부실한 리더십에 대해서는 이른바 보수 논객들도 무척 비판적인 태도를 보입니다. <조선일보> 8월16일치 ‘윤 대통령은 달라져야 한다’는 제목의 ‘김대중 칼럼’ 일부 내용입니다.

“윤 대통령은 고집이 센 사람이라고 한다. 그는 그것을 신념이나 소신이라고 잘못 믿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은 더 이상 머뭇거리지 않았으면 한다. 그는 그야말로 ‘어쩌다 대통령’ 된 사람인데 여기서 잃을 것이 없다.”

그런가요? 요즘 보수 성향 신문의 몇몇 칼럼이나 사설을 보면 당혹과 낙담이 강하게 느껴집니다. 윤석열 정권을 만드는 데 앞장섰으니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일까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정치부 선임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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