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칼럼] 임종석은 어떻게 김정은 돈지갑을 지켜주었나
우리 국민 아닌
김정은 편에 서서
국군포로 배상을
훼방 놓은 사람이
총선에 나가
국민의 대표가
되겠다 한다
2020년 7월 서울중앙지법에서 기념비적 판결이 나왔다. 북한 김씨 정권이 저지른 반인권 만행의 책임을 인정한 최초의 판결이었다. 원고는 6·25 때 북에 억류돼 강제 노역에 시달린 2명의 탈북 국군 포로였다. 이들이 제기한 소송에서 재판부는 “‘피고 김정은’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북한)과 공동으로 4200만원을 배상하라”고 선고했다. 4200만원은 ‘김일성·김정일의 상속인’인 김정은에 대해 민법상 상속 비율에 따라 산정한 금액이었다. 우리의 사법 체계로 북한과 김씨 일족의 불법 행위를 단죄한 것이었다.
사법사(史)에 남을 획기적 판결이었지만 과정은 험난하기 짝이 없었다. 북한과 김정은을 소송 당사자로 우리 법정에 세울 수 있는지부터 논란이었다. 원고 측은 북한이 ‘민법상 비법인 사단’에 해당된다는 법리를 짰고 재판부도 이를 인정했다. 북한에 소송 서류를 어떻게 보낼 것이냐도 문제였다. 재판부는 법원 홈페이지 공지로 송달 효과를 내는 ‘공시 송달’로 처리해주었다. 우여곡절 끝에 피고인 출석 없는 궐석 재판이 진행됐고 4년 만에 결국 원고 승소 판결이 내려질 수 있었다.
남은 문제는 배상금을 어떻게 받아 내냐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이것도 해결해주었다. 임종석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2005년 설립한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란 단체가 있다. 경문협은 북한을 대리해 방송국 등에서 저작권료를 징수한 뒤 북에 송금하고 있는데, 대북 제재에 막혀 못 보낸 23억원이 법원 공탁금으로 쌓여 있었다. 재판부는 이 돈을 압류해 배상금으로 주라는 추심 명령을 내렸다. 사법적 효력이 북한에 미치지 못하는 맹점을 깔끔하게 풀어준 것이다.
이 판결은 북에 배상 책임을 물을 수 있는 완벽한 판례를 확립했다. 국군 포로에 이어 6·25 납북자와 연평해전 유족들도 잇따라 소송을 제기해 모두 승소했다. 판결문 구조가 2020년 첫 선고와 똑같았다. 이렇게 법원이 경문협 공탁금으로 지급하라고 선고한 배상액이 지금까지 총 9억여 원이다. 북의 만행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희생자들이 조금이나마 보상받을 길이 열렸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암초에 부닥쳤다. 돈줄을 쥔 경문협이 지급을 거부한 것이다. 경문협은 변호사를 선임해 법정 공방을 벌이며 돈을 내줄 수 없다고 맞섰다. 그 이유가 북한의 선전 논리와 유사했다. 저작권의 소유 주체인 조선중앙방송위가 독립 기구이기 때문에 저작권료도 북한 정부 돈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마치 북한이 방송의 독립성을 보장하기라도 하는 양 해괴한 논리를 폈다. 나라 전체가 김씨의 사유물인 북한에서 노동당의 부속품 아닌 기관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경문협은 껍데기뿐인 ‘사유제’ 법 조문까지 들고 나왔다. 북 헌법 제24조 등에 ‘개인이 사유 재산을 소유할 수 있다’고 규정된 것을 근거로, 저작권료가 북한 방송국의 프로그램 제작자 개인 소유라고 주장했다. 노동당이 지배하는 국영 방송 선전물이 어떻게 사유 재산이 될 수 있나. 북한이 김정은 1인 지배 국가임을 세상이 다 아는데도 경문협은 말도 안 되는 억지 논리를 내세워 법적 다툼을 벌였다. 수십 년 강제 노역 당한 국군 포로의 인권보다 김정은 정권의 재산이 중요하다는 것이었다.
이 모든 궤변의 정점에 있는 것이 임종석 전 실장이었다. 경문협은 노무현 정권 시절 북한에 달러를 보내주려 임종석이 주도해 만든 단체다. 그가 북한 당국에 저작권법 체계를 가르쳐 가며 대리인 계약을 맺은 뒤 설립했다. 그는 청와대에 들어갔던 시기 등을 빼고는 20년 가까이 이사장을 맡아 경문협 활동을 관장해왔다. 경문협이 국군 포로, 납북자, 연평해전 유족에 대한 배상금 지급을 거부한 것도 그가 이사장일 때였다. 임종석이 최종 결정권자란 사실은 누구 눈에도 분명했다.
놀라운 것은 유사한 법리 구조의 강제 징용자 배상에 대해선 그가 정반대 입장을 취한 점이었다. 문재인 청와대의 비서실장 시절, 일본이 한국 법원의 배상 판결에 반발하자 그는 “매우 부적절하다”며 일본에 돈을 내놓으라고 촉구했다. 윤석열 정부가 ‘제3자 배상’을 추진하자 “굴욕적” “깊은 모멸감” 운운하며 공격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북한의 인권 유린에 희생된 피해자들에 대해선 김정은 돈을 못 가져가게 끝까지 훼방 놓았다. 엊그제 열린 항소심 선고에서도 경문협의 거부에 막혀 국군 포로 배상이 끝내 좌절됐다. 사실상 임종석이 막은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렇게 북한의 이익을 대변했던 사람이 총선이 다가오자 “정권 심판”을 외치며 선거에 나가겠다 한다. 임종석의 출마를 놓고 많은 논란이 벌어졌지만 이 문제 하나만으로도 그는 자격이 없다. 그는 국군 포로와 납북 피해자 아닌 김정은 편에 섰던 장본인이다. 우리 국민의 반대편에 서서 김정은 돈지갑을 지켜준 사람이 국민의 대표가 되겠다 하니, 기가 막힐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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