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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룡 / 아들의 심판 (1960 영화 주제가)

류지미 2022. 5. 25. 17:40

영화 " 아들의 심판"

 

"아들의 심판"은 1960년 공개된 대한민국의 영화이다.

한국 | 드라마 | 1960.05.26 개봉

 

감독; 안현철

제작; 동보영화사

각본; 유한철 / 원작 이서구

배역; 최무룡, 조미령, 김승호, 석금성, 황정순, 전계현 출연

 

 

<줄거리>

 

영화 '아들의 심판'에서 대학 설립자인 재단 이사장 정박사(김승호)의 숨겨둔 여인 윤경(황정순)은

기생의 몸으로 아들을 훌륭히 키울 자신이 없어 본댁에 보내고 딸을 데리고 20년을 그늘진 생활을 해왔다.

 

인식(최무룡)은 장성해 검사가 되고

이 사실을 안 악당이 그 비밀을 폭로하겠다며 윤경에게 공갈하면서 금품을 요구하자,

윤경은 자신의 존재가 아들에게 짐이 될까봐 아들의 장래를 위해 악당을 살해한다.

 

법정에서 죄인의 몸으로 검사 인식앞에 선 윤경의 기구한 운명이 밝혀지면서

'아들의 심판'으로 눈물바다를 이룬다는 신파극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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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무룡 / 아들의 심판 (영화 주제가)

1960

https://www.youtube.com/watch?v=BOpPLCFP1Ig

 

최무룡 / 아들의 심판

유호 작사 / 이인권 작곡 / 대사 최무룡

 

(대사)

어머니는 언제나 절 어린 아이로 보십니다.

어머님의 오지랖엔 언제나 눈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어머님의 소원은 단 한가지 이 아들이 잘 되기를 기원합니다.

어머니는 아들 대신에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그러한 어머니를 내 어머니를

이 무슨 운명으로 하늘이 내리시는 이 아들의 심판을~

어머니 우시지 마옵소서

 

1.

눈 마저 멀고 눈물 마저 메 마른 몸은
한 평생을 남 몰래 울어 온 죄냐
사랑이 죄이라면 버렸을 목숨인데
못 잊어 못 잊어 더듬어 걸어 가는 어머니 길에
아 ~ 비바람 걷힐 날이 영영 없으랴.

 

(대사)

이십여년 모진 가난 속에
빛을 보실 자유마저 빼앗기신 내 어머니
저지른 불효를 통곡하는 이 아들은
인자한 용서만을 비옵니다

어두운 밤, 가시밭 속, 반디불인양
그늘에서 울며 살던 슬픈 모녀 위에
봄은 정녕 오고야 말 것입니다.

 

2.

겨울이 가고 봄이 오는 그 날을 위해
손을 모아 얼마나 빌어 왔더냐
먹구름 사라지고 열리는 푸른 하늘
내 아들 손 잡고 즐겁게 걸어 가는 어머니 길에
아 ~ 찬란한 꽃바람이 휘날립니다.

 

 

*유호(兪湖,1921~2019,본명 유해준, 황해도 해주): 경향신문 문화부 부장을 지낸 소설가,극작가(필명: 호동아/ 胡童兒)이며 ‘신라의 달밤’(1947) 등 박시춘 작곡 가요의 상당부분을 작사하였고, ‘님은 먼 곳에’, ‘서울야곡’ 등 연속극 대본도 집필

 

*이인권(李寅權,1919~1973, 본명 임영일(林榮一)은 1940~50년대 가수(꿈꾸는 백마강, 귀국선)였으나

1955년 이후 부터는 작곡가로서 활동 (꿈이여 다시 한 번, 원일의 노래, 카추샤의 노래, 외나무다리, 바다가 육지라면).

 

*최무룡(崔戊龍 ,1928~1999)은 1928년 경기도 파주 출생. 개성상업고등학교 졸업. 중앙대 법학과 졸업. 법대 재학 당시 최무룡은 연극배우로 활동하면서 제1회 전국대학연극경연대회에 참가, ‘비오는 산골’로 인기상을 받았다.

 

1948년에는 KBS가 두 번째로 모집한 방송연기 연구생(성우)으로 뽑혀 구민, 윤일봉 등과 함께 본격적으로 연기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곳에서 최무룡은 방송연기자로 연극무대와 목소리 연기자 활동을 하면서 배우로서의 초석을 다졌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부산으로 피신하여 부산의 연극무대에서 활동하면서 최남현, 전옥, 강효실 등과 인연을 맺었다.

최무룡은 이곳에서 전옥의 딸 , 강효실과 첫 번째 결혼을 하였다.

전쟁이 끝나자 최무룡은 강효실의 가족들과 함께 서울로 상경하였는데 그는 전옥, 강효실 등과 함께 연극과 영화에 출연하였다. 최무룡의 영화 데뷔작은 이만흥의 6·25전쟁영화 <탁류>(1954)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