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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은 귀, 맑은 눈으로

류지미 2022. 6. 1. 08:08

밝은 귀, 맑은 눈으로 [신동욱 앵커의 시선]

https://www.youtube.com/watch?v=5uk5SspVgz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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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 군주 정조가 반대파의 영수, 심환지에게 보낸 비밀편지입니다.

한 패거리 신하들이 뒤섞여 엉망으로 하는 행실을 보고 화가 나서 썼습니다.

그런데 끝부분에 한글 어휘가 딱 하나 끼어 있습니다. 이 네 글자 '뒤쥭박쥭'입니다.

상황과 감정을 그만큼 실감나고 후련하게 표현할 말이 없었던 것이겠지요. 사람들이 천방지축 뒤섞여 떠들어대며 뒤엉킨 곳을 난장이라고 합니다.

과거시험장을 가리켜는 말이기도 합니다. 선비들이 중구난방 어지럽게 들끓어 뒤죽박죽이라는 얘기입니다.

선거란, 임금 대신 국민 앞에서 치르는 현대판 과거시험입니다. 그렇듯 선거판도 난장판이 되기 일쑤입니다. 미국 역사학자 제임스 로빈슨이 말했습니다.

"선거전은 사람들을 감정의 아수라장으로 끌고 가면서 멀쩡한 판단력을 마비시킨다"고… '아미엘의 일기'로 이름난 스위스 철학자 아미엘도 "선거란, 민중을 자신의 도구로 삼기 위해 민중에게 아첨하는 사기극"이라고 했지요.

내일은 대선 후 치르는 첫 지방선거 날입니다. 그런데 선거판 여기저기서 들려온 소리가 온통 '돈타령'이었습니다.

그것도 무료, 무상, 반값, 감면, 감세에다가 수당, 현금, 지원금 같은 퍼주기 약속들입니다.

한 후보가 지르면 다른 후보가 더 얹어 받아치는 게 무슨 도박영화라도 보는 듯합니다.

"묻고 더블로 가!"

여야가 따로 없는 선심경쟁이 어제오늘 일은 아닙니다만, 이번처럼 황당하고 허황된 공약이 난무하는 선거는 근래 처음 봅니다.

'말 대포'로 쏘아대는 '쩐(錢)의 전쟁'이 따로 없습니다. 게다가 곳곳에서 돈 봉투가 적발된 것으로도 모자라 부정투표까지 나왔습니다.

거동이 불편한 마을 노인들 몰래 이장이 우편 거소투표를 했다가 노인들께 들킨 겁니다.

아무리 대선 연장전처럼 과열됐다곤 해도 민주 선거의 시계마저 거꾸로 돌리게 놔둘 수는 없는 일입니다.

뒤죽박죽 선거를 축제로 되살릴 수 있는 건 유권자만이 할 수 있습니다.

현명한 유권자는 밝은 귀로 거짓된 말을 가려 듣고, 맑은 눈으로 쌀에서 뉘를 골라낼 줄 압니다.

글자를 몰라도 씩씩하게 투표하러 가시겠다는, 시인의 옆집 할머니처럼 말입니다.

"맨 위 칸을 콕 찍으라고? 이번에는 바로 아래 칸 찍어야 한다고? 이러지들 마라… 이래 봬도 투표 경력 수십 년이다. 나도 다 생각이 있다"

"투표는 총알보다 강하다", 링컨이 한 말입니다. 투표율이 높을수록 유권자의 힘도 커집니다.

5월 31일 앵커의 시선은 '밝은 귀, 맑은 눈으로' 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