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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전된 새들이 산불을 일으키고 있다

류지미 2022. 6. 20. 09:31

감전된 새들이 산불을 일으키고 있다

박근태 기자

입력 2022. 06. 20. 06:00

 

지난해 8월 2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엘도라도 국유림에서 '칼도르'로 이름 붙은 대형 산불이 번지면서 화염과 연기가 치솟고 있다. AP/연합뉴스

 

2014년 칠레 중부에서 산불이 발생해 가옥 2500채가 불타고 13명이 숨지는 참사가 벌어졌다. 1년 뒤 참사 현장에서 북쪽으로 9700km 떨어진 아이다호에서 발생한 산불로 4000헥타르(40제곱킬로미터) 태웠는데 이는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 경기장의 5600배에 이르는 면적이다. 발생 시점도, 지역도 다른 두 화재 사건의 공통점은 무엇일까.

 

국제학술지 사이언스는 19일 전 세계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산불 가운데 일부는 야생 조류가 감전되면서 비롯됐으며 두 화재도 같은 원인에서 시작됐다는 연구자들의 분석 결과를 전했다.

 

과학자들에 따르면 숲과 산에 사는 야생 조류는 인간이 설치한 송전선로의 전선에 않는 것을 선호한다. 전선은 천적을 피하고 먹이 사냥에 나선 조류에게 휴식을 취하고 새 먹잇감을 찾아나설 수 있는 최적의 장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새가 전선에 앉는 과정에서 자칫 피복이 벗겨진 전선을 만지거나 전기가 땅에 전달되도록 경로가 형성되면 감전으로 이어지고 결국 새털 등에 불이 옮겨붙어 타죽는 일이 일어나기도 한다.

 

사이언스는 건조해진 날씨와 조건에서 이렇게 감전돼 불에 타죽는 야생조류가 마치 ‘날개 달린 화염병’처럼 바닥에 떨어지면서 심각한 산불로 이어진다는 전문가들의 분석을 전했다.

 

산불 주요 발생 원인으로는 인간 활동이나 사람에 의한 실화 등이 꼽혀왔다. 건조한 상황에서 벼락이 떨어지거나 한낮의 뜨거운 햇볕도 화재 원인으로 꼽혔다. 야생조류가 감전되면서 발생한 화재가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은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미국 전문기술회사인 EDM인터내셔널 소속 생물학자인 테일러 반스 연구원은 미국 전역의 산불 데이터를 수집했다. 연구팀은 구글 알리미를 사용해 2014년에서 2018년 사이 새에서 시작된 화재를 지켜봤다. 예를 들어 ‘불’과 ‘독수리’라는 키워드를 한 쌍처럼 사용하고 전력선과 관련이 없는 모든 결과를 걸러내는 방식으로 얼마나 언급됐는지를 살폈다.

 

차량 이름인 ‘폰티액 파이어버드’과 같은 결과들을 모두 걸러냈다. 연구팀은 그런 다음 새가 유발했을 가능성이 제기됐을 뿐 사실 확인이 되지 않은 추측성 보고들도 모두 제외했다. 발화지점에서 화상을 입은 새 사진이나 소방관 진술 중에서도 추측성 결과들을 모두 제외했다. 연구원들은 이런 방식으로 감전된 조류가 유발한 산불 44건을 발견해 이달 초 ‘미국 야생조류학회 회보’에 공개했다.

2014년 1월부터 2018년 12월까지 미국 환경보호청(EPA)이 관리하는 생태 지역에서 보고된 조류 감전사에서 발화한 황무지 화재 위치. 미국야생조류학회 회보 제공

 

 

연구팀이 발견한 산불 중 집중적으로 발생한 산불 12건은 주로 태평양과 시에라네바다 산맥으로 둘러싸인 오리건주 남부에서 캘리포니아주를 거쳐 멕시코 북부까지 뻗어있는 지역에서 발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지역은 계곡과 구릉, 산이 다양하게 혼합된 지형에 북미 특유의 따뜻한 지중해 스타일 기후로 겨울에는 바다에서 온화하고 습한 바람이 불고 여름에는 덥고 건조한 날씨가 이어진다. 이런 날씨는 극심한 가뭄을 부르는데 겨울에 잠재적인 연료가 될 수 있고 빠르게 건조되는 많은 양의 초목을 생성한다. 최근 10년새 이들 지역에 발생하는 대형 산불 원인이 되고 있다.

 

연구팀은 이 지역 인구 밀도가 높은 점도 독수리와 매, 올빼미와 같은 대형 포식자들이 감전될 확률을 높인다고 지목했다. 이들 최고 포식자들의 서식지로 들어가 활동하고 거주하는 사람이 그만큼 늘어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조류 감전에서 시작된 산불 규모가 비교적 작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평균 1.2헥타르(1만2000㎡)를 태웠는데 축구장 2개 정도 넓이다.연구팀은 그러나 아이다호와 칠레 산불 사례처럼 대규모 파괴의 가능성은 분명히 있다고 보고 있다.

 

생태학자들은 야생으로 확대되는 전력선이 화재 위험뿐 아니라 멸종위기의 조류에게 치명적 위협이 된다는 점을 더 우려했다. 이란 과학자들은 2018년 이란에서 감전사한 조류 235마리 중 15%가 초원 수리와 이집트 독수리 같은 보호 대상 종이라는 사실을 알아냈다. 영국 버밍엄대 그레이엄 마틴 교수는 “독수리나 그와 유사하게 날개가 크고 몸집이 큰 맹금류가 착륙하거나 이륙할 때 두 개의 전선을 동시에 만질 가능성이 크다”며 “전봇대에서 감전돼 죽을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우려했다.

 

안토니 마르갈리다 피레네생태연구소 연구원은 “조류 감전사는 전 세계적으로 새로운 문제로 떠올랐다”며 “습한 겨울과 덥고 건조한 여름이 특징인 지역의 전력 회사는 산불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전력 기반 시설의 설치 방식을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전기 회사들이 전선의 절연에 더욱 신경을 쓰고 전선에 철망이나 가시 같은 구조물을 만들어 새들이 앉지 않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스 연구원은 “비용이 많이 들지만 대형 조류가 변압기에 더 안전하게 앉을 수 있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며 “하지만 소송의 잠재적인 재정적 비용과 인명 손실, 기반 시설 손실에 비해 가벼운 수준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