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미 산업1부 차장
학계도 활발한 융합이 이뤄지는 시대다. 어제 한국계로는 처음으로 필즈상을 받은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완전히 다른 두 수학 분야인 조합론과 대수기하학을 연결해 수학계의 난제를 풀었다. 그런데 그가 살아온 방식도 경계를 허무는 ‘하이브리드’였다. 한국의 천재 조각가 권진규(1922∼1973)의 조카 손자인 그는 시(詩) 쓰기에 빠져 고교를 자퇴했고, 과학 이야기를 쓰려고 검정고시를 치러 서울대 물리학과에 진학했다가 복수전공으로 수학의 세계에 발을 들였다. 한 수학자는 “조합론은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필요한 분야”라며 “허 교수가 남들과 똑같이 살지 않아 ‘나만의 생각 근육’을 키울 수 있었던 것 같다”고 했다.
고대 그리스의 피타고라스학파가 음악에서 수학적 원리를 발견했듯 현대 수학자들도 음악에서 조화와 질서를 찾는다. “수학은 예술의 한 분야”라는 허 교수는 중학생 때부터 직접 작곡한 곡을 피아노로 연주했다. 그를 수학의 세계로 이끈 91세의 히로나카 헤이스케 서울대 석좌교수(1970년 필즈상 수상)도 음악 애호가였다. 세계적 지휘자 오자와 세이지는 친구인 히로나카 교수를 이렇게 평했다. “어떻게 이 사람은 이토록 음악을 사랑하며 이렇게 많은 지식을 갖췄는지 늘 의문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중학교 시절 피아니스트가 되려고 몰두하다가 음악에 쏟았던 정열의 방향을 바꿔 수학자가 되었다. 그가 음악과 깊이 관계를 맺고 자기만의 방식, 즉 자신의 세계를 정립한 게 내게는 흥미로웠다.”
최근 한국 영화 ‘이상한 나라의 수학자’에서 원주율(π·파이)을 피아노로 친 곡이 화제가 됐다. 음계의 ‘도’를 1로 삼아 ‘3.141592…’로 이어지는 원주율을 ‘미도파도솔레레…’ 식으로 연주한 이 음악은 이 땅의 많은 ‘수포자’(수학 포기자)들에게도 감동을 줬다. 허 교수의 필즈상 수상을 계기로 수학적 사고의 우아함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김선미 산업1부 차장 kimsunm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