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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의와 염치

류지미 2022. 7. 17. 04:48

"예의와 염치 무너진 지금… 漢나라에 주목해야"

 
조선일보 l 입력 2020.05.15 03:02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 '漢書' 국내 첫 완역본 10권 출간

"사마천 책보다 높이 평가받아… 몰락의 리더십 서술도 주목해야"

 

 

"중국의 정사(正史)인 이십오사 가운데 두 번째 역사책이 '한서(漢書)'입니다. 그런데 '그냥 이십오사 중 한 책'이 아닙니다." 이한우(59) 논어등반학교장은 최근 '한서'를 10권 분량으로 번역해 출간했다. 후한의 역사가인 반고(班固·32~92)가 '한서'를 쓴 지 1900여 년 만에 처음 나온 한국어 완역본이다.

"한(漢)은 중국이라는 통일국가가 비로소 완성된 나라고, 그걸 굳건히 유지할 수 있었던 정치력과 이념이 꽃을 피운 시대입니다. '한자' '한문' '한학' '한시' 같은 단어에 공통으로 들어가는 글자가 바로 '한(漢)' 아닙니까?"

 

이한우 논어등반학교장은 "동아시아 지식인 사이에서 정사(正史)의 모범으로 평가받았던 '한서'의 완역본이 일본엔 있고 한국엔 없다는 사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이태경 기자



'한서'는 고조 유방이 나라를 세운 기원전 202년부터 서기 8년까지 존속한 전한(前漢=서한)의 역사를 다룬 책이다. 그 문장과 내용에서 이십오사의 간판스타 격인 사마천의 '사기(史記)'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아 왔다. 이 교장은 '한서'에 대해 "잘 다듬은 문장으로 사실을 자세하게 묘사한 책"이라고 했다. "우리나라 '조선왕조실록'을 필리핀 영어에 비유한다면 '한서'는 셰익스피어 수준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중국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고 역사적 안목을 높이는 데 더없이 귀중한 책입니다."

황제의 사적을 기록한 본기와 인물 전기인 열전, 표(表)·지(志) 등으로 구성된 기전체(紀傳體) 사서의 특징을 한껏 활용한 것도 '한서'의 특징이다. 역대 인물들을 열전에서 '유림' '혹리' '외척'처럼 한 카테고리로 묶어 유형화하고, 나아가 '고금인표'를 만들어 상상(上上)에서 하하(下下)까지 9단계로 인물의 등급을 매긴 것. 이 교장은 "지금 우리에겐 찾아보기 어려운, 무섭도록 날카로운 비판 의식이었다"고 했다.

사실상 중국 첫 거대 제국(帝國)의 성립 비결이 '한서'에 나올까. "인정(仁政·어진 정치)을 제도화하고 지방까지도 교화를 펼친 유가(儒家) 사상이 국가 이념이 됐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지금 우리나라와는 달리 예의와 염치를 중시한 사회였습니다. 당시 유가는 고지식한 명분론이 아니라 대단히 현실적인 이념이었죠."

그런 한나라가 왜 멸망한 것일까. "교언영색에 넘어가 충신과 간신을 구별하지 못하고 외척에게 흔들린 11대 황제 원제 때부터 몰락이 시작된 것입니다." '한서'를 즐겨 읽었던 조선 시대 지식인들은 이런 내용을 잘 알고 있었기에, 선조 임금은 '내가 원제처럼 소인배를 물리치지 못해 나라가 망해간다'고 자책하기도 했다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휘둘린다는 점에서 현재 한국의 리더십은 원제에 비견할 수 있습니다."

 

 

이 교장은 노무현 정부 때 국가 리더십의 부재를 고민하며 '군주열전' 시리즈를 썼고, 이명박 정부 때는 나라에 온통 사(私)만 보일 뿐 공(公)이라는 개념이 붕괴한 것에 주목하며 '논어'를 번역했다. 박근혜 정부 때는 '태종실록'을 연구하며 '유능함'의 문제를 파고들기도 했다. "지금 말입니까? 모든 게 다 무너진 시기죠. 리더십도 공도 없고, 탐욕적인 데다 부끄러운 줄조차 모릅니다." 그는 이제 사리분별이 사라진 시대를 걱정하며 '주역'과 '사기'를 새롭게 번역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유석재 기자]

 

조선일보 문화부장을 역임한 그는 2016년 초 회사를 나와 논어 강의와 태종실록 번역에 바쁜 나날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