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첫 여성 국무 올브라이트 별세
2000년 美 고위직으론 첫 방북…北 비핵화 일괄타결 협상 이끌어
“김정은은 파시스트 전형” 평가도…이민자로 ‘아메리칸 드림’ 상징
나토 확장 통해 러 견제 외교…바이든 “그녀는 자유의 힘” 애도
미국 현직 고위 관계자 최초로 북한을 방문한 매들린 올브라이트 전 미 국무장관(오른쪽)이 2000년 10월 평양에서 김정일 당시 북한 국방위원장과 잔을 부딪치며 건배하고 있다. 평양=AP 뉴시스
미 국무장관은 대통령, 부통령, 하원의장에 이은 권력서열 4위 직책이다. 지난해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이 취임하기 전 그는 미 여성 중 가장 먼저 미 행정부 최고위직에 올라간 인물이었다. 이처럼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이자 수많은 유리천장을 깨고 ‘여성 최초’ 기록을 쓴 그는 ‘유럽의 안정이 곧 미 국가안보의 핵심’이라는 신조하에 나토 확장을 통한 러시아 견제에 집중했다. 옛 소련이 주도한 바르샤바조약기구에 속했던 체코 폴란드 헝가리는 1999년 나토에 가입하며 서유럽으로 편입됐다. 이후 발트 3국,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등의 추가 가입이 이어져 러시아가 나토 동진(東進)을 최대 위협으로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올브라이트 전 장관이 주유엔 미국대사 시절인 1994년 이라크와의 협상 당시 착용한 뱀 모양 브로치(위 사진). 사담 후세인 당시 이라크 대통령이 자신을 ‘뱀 같은 여자’라고 칭하자 이 브로치를 달았다. 그는 러시아와의 협상에서는 힘을 상징하는 독수리 브로치(왼쪽 아래 사진)를, 중동 분쟁 협상 때는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 모양 브로치를 착용하며 ‘브로치 외교’를 선보였다. 리드마이핀스 웹사이트 캡처
2000년 6월 최초의 남북 정상회담으로 북한과 미국의 해빙 무드가 조성되자 그는 그해 10월 북한을 찾았다. 당시 김정일과의 회담에서 북-미 수교, 북한의 핵·미사일 폐기 등을 포함한 일괄타결 협상을 이끌었다. 다만 한 달 후 북한 선제 타격 등 대북 강경책을 내세운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후보가 미국 대선에서 승리해 북-미 화해 분위기도 사라졌다.
그는 2018, 2019년 북-미 정상회담 당시 “세계 독재자 중 진짜 파시스트의 전형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이라며 북한의 거짓말을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자서전 ‘마담 세크리터리’ ‘파시즘’ 등을 통해 “인간 정신의 자발성이 북한보다 철저하게 말살된 곳은 없다” “북한은 세속적인 수니파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라며 독재를 비판했다.
컬럼비아대에 진학해 행정학·공법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이곳에서 은사(恩師)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교수를 만났다. 폴란드 이민자인 브레진스키는 1976년 지미 카터 당시 대통령의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으로 발탁된 뒤 ‘똑똑한 제자’를 워싱턴으로 불러들였다. 올브라이트는 이후 클린턴 행정부 1기의 유엔주재 미국 대사를 거쳐 국무장관에 올랐다. 당시 상원 인준에서 만장일치 찬성을 받았을 정도로 미 사회의 고른 지지를 받았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은 “그는 선(善), 우아함, 품위, 자유를 위한 힘이었다. 그가 역사를 만들었다”고 애도했다. 클린턴 전 대통령과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 부부, 부시 전 대통령도 애도 성명을 냈다. 네드 프라이스 국무부 대변인은 “그가 이 건물에 미친 영향이 매일 건물의 모든 곳에서 느껴진다”고 했다.
워싱턴=문병기 특파원 weappon@donga.com
김수현기자 newsoo@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