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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진 대이작도, 소이작도 & 영화 ‘섬마을 선생님’

류지미 2022. 8. 5. 05:30

<기획취재> 영화 ‘섬마을 선생님’

완도신문

  • 입력 2013.09.26 09:47
  • 수정 2015

 

강제윤 시인 - 옹진 대이작도, 소이작도 기행

 

동자승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객승은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구지 선사가 돌아오자 동자승은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구지 선사가 물었다.

 

 
"그 스님에게 했듯이 나에게도 대답 해 보거라. 불법이 무엇이냐?"
 
동자승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구지선사는 칼을 꺼내 동자승의 손가락을 싹둑 잘라 버렸다. 동자승은 비명을 지르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선사가 동자승을 불러 세우고 다시 물었다.
 
"그래 불법이 무엇이냐?"
 
동자승은 순간적으로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아차, 그런데 손가락은 이미 잘리고 없지 않은가? 그 순간 동자승은 퍼뜩 깨쳤다.
 
벽암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동자승은 대체 무엇을 깨쳤던 것일까. '무아(無我)'를 깨쳤던 것일까. 나를 내려놓을 때, 나의 주장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나는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나그네는 소이작도 손가락 바위 화상의 법문을 듣고도 쉽게 깨치지 못한다. 나그네는 여전히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없다.
 
무정하게도 막 배는 소이작도에 닿지 않고 대이작도로 곧장 가버렸다. 손님이 없는 비수기에는 흔한 일이다. 주민들이야 자기 배로 건널 수 있지만 나그네는 불과 200미터 거리의 바다도 건너뛰지 못하고 갇혔다. 저 작은 바다도 건너 뛸 수 없는 몸이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초월의 꿈을 꾸고 있단 말인가!
 
우편선을 얻어 타고 대이작도로 건너왔다. 크고 작음은 상대적이다. 대이작도는 이름처럼 큰 섬이 아니다. 큰 대자가 붙은 것은 소이작도에 비해 크다는 뜻일 뿐, 섬은 면적 2.57㎢, 해안선둘레 18km에 불과하다.
 
대이작도의 선착장에는 '영화의 섬'이라는 빛바랜 글귀가 눈에 띈다. 대이작도는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을 영화화한 '섬마을 선생님'(1967년 김기덕 감독 작품)의 배경이 됐던 섬이다. 나그네는 선착장을 지나 큰말 부근에서 대이작도의 주산인 부아산에 오른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159m에 불과한 부아산. 산정에는 70m의 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정상에 오르니 대이작도 주변의 섬들이 발아래 인 듯 가깝다. 동쪽은 옹진군의 승봉도, 서북쪽은 자월도, 소야도, 덕적도, 서쪽은 문갑도, 굴업도, 각흘도, 남서쪽은 선갑도, 백아도, 울도. 동남쪽으로는 풍도, 육도, 대란지도 등 충남의 섬들도 지척이다.
 
이제는 섬 마을의 많은 학교들이 사라지고 없다. 영화의 배경이 됐던 대이작도의 계남분교도 폐교된 지 오래다. 더 이상 순정을 다 바쳐서 총각 선생님을 사랑할 섬 처녀는 없다. 처녀들, 총각들, 모든 젊은 사람들이 떠나가 버린 섬마을은 적막하다. 섬도 늙었고 사람도 늙었다. 순정을 빼앗고 훌쩍 떠나버렸던 총각 선생님은 지금쯤 교감이나 교장이 되어 늙어갈 것이다.
 
그때 그 순정한 처녀는 어디로 갔을까. 뭍으로 나가 식모살이를 하거나 공장으로 갔겠지. 더러는 술집으로도 갔겠지. 그녀도 이제는 늙었거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더 이상 청춘도 없고 비애도 없는 섬은 쓸쓸하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부아산 정상, 정자에 앉아 '섬마을 선생님'을 흥얼거린다. 구성진 가락에 애틋한 가사. 그 시절뿐일까. 순정을 다 바친 이들에게 돌아오는 보답이란 기껏 비극적 결말뿐인 것이. 하지만 노래의 힘은 비애를 넘어 선다. 슬픔도 가락을 타면 흥이 된다.
 
대이작도의 진짜 보물은 섬 안에 없다. 큰 풀안 해변 건너 바다 속에 있다. 밀물 때는 몸을 숨겼다 썰물 때면 모습을 보이는 모래섬. 사승봉도에서 자월도 서남단까지 펼쳐진 모래밭을 이곳 사람들은 풀등이라 부른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풀등으로 간다. 고기잡이가 없는 여름철에는 피서객을 태운 어선들이 자주 운항하지만 요즈음 같은 봄철에는 풀등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
 
민박집 주인에게 부탁해서 어렵게 낚시 배를 얻어 탔다. 10분 남짓 가니 망망하던 바다 위로 장대한 모래섬이 솟아 있다. 오늘은 '조금'이라 모래섬의 일부만 보이지만 '사리' 때면 동서 2.5km, 남북 1km의 모래 평원이 본 모습을 다 드러낸다. 모래섬은 마치 바다의 신기루 같다.
 


출처 : 완도신문(http://www.wandonews.com)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https://www.youtube.com/watch?v=_c41F3Fl5r0

 

1967년 김기덕 감독의 영화 '섬마을 선생님' 주제가

영화에는 오영일, 문희, 안은숙, 김희갑 등 인기배우 대거 등장

(1절)
해당화 피고 지는 섬마을에
철새따라 찾아온 총각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2절)
구름도 비켜가는 섬마을에
무엇하러 왔던가 총각선생님
그리움이 별처럼 쌓이는 바닷가에
시름을 달래보는 총각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떠나지 마오


이경재 작사, 박춘석작곡, 이미자 노래한 <섬마을 선생님>은 언제들어도 애잔한 느낌이 든다.

'엘레지의 여왕' 이미자의 비단결 같은 미성(美聲)이 노래의 감칠맛을 더해 준다.
낭랑하고 애틋한 음색에다 총각선생님에 대한 섬마을 젊은 색시의 순정이 듬뿍 묻어나는 노랫말은 들을수록 쏙 빠져들게 만든다.

대중가요 <동백아가씨> 만큼이나 팬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던 곡이 <섬마을 선생님>이다.
이미자씨도 자신이 가장 아끼는 노래로 <동백아가씨>와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를 꼽는다.

공교롭게도 이 3곡은 박정희 군사정권시절 방송
금지곡으로 묶였던 노래다.
<섬마을 선생님>은 왜색이라는 이유로 금지곡이 됐다.

'트로트의 여왕', '국민가수' 등 어떤 찬사에도 지나침이 없는 이미자씨는 화려한 연륜 만큼이나 대중이 모르는 힘든 시간들이 많았다.

<섬마을 선생님은> 북한에서도 잘 알려진 가요다.
알게 모르게 많이 듣고 불리는 노래로 유명하다.
이씨는 2002년 평양공연을 갔을때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노래를 많이 알고, 부르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섬마을 선생님>은 얼마 전 신세대 트로트가수 장윤정양이 요즘 버전으로 불러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이처럼 <섬마을 선생님> 노래가 크게 인기를 얻자 1967년 김기덕 감독이 같은 제목의 영화를 만들었다.

1960년대 후반 외딴 섬으로 계몽 온 총각선생님과 섬 처녀 사이의 수채화 같은 사랑 이야기를 담은 작품이다.
신지식인과 구세대 사이의 갈등도 영화 중간 중간에 스며 들어있다.

영화엔 당시 최고의 인기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오영일, 문희, 안은숙, 김희갑등이 그들이다.

영화 줄거리는 월남전 참전 경험이 있는 한 교사가 남해의 섬 학교에 자원해 부임한다.
섬의 유일한 학교인 아주 작은 분교.

그는 섬마을 사람들의 무지와 편견에 시련을 겪기도 하지만 굽히지 않고 어려운 일들을 헤쳐 나간다.

섬마을에는 점점 희망이 싹터간다.
그런가운데 선생님과 섬 처녀가 가까워지면서 열애를 한다.
주인공으로 나온 선생님(오영일)과 섬처녀(문희)의 연기가 돋보인다.


큰말선착장으로 여객선이 들어오고있다.(뒷섬은 소이작도)
흑백영화였음에도 촬영지인 인천시 부근 대이작도 풍광이 느껴졌던 영화로 관객들 인기가 대단했다.
지금의 대이작도 마을 입구에는 전교생이 몇 명뿐인 '이작 분교'가 있다.
그러나 대이작도에는 유명한 분교가 하나 더 있었다.
명칭은 자월초등학교 계남분교. 폐교가 됐지만. '섬마을 선생님' 영화 제작 때 주요 촬영지로 활용된 곳이다.
그래서 인천시 옹진군 자월면 대이작도는 늘 '섬마을 선생'이란 수식어가 붙어 다닌다.

계남분교 운동장에 서 있는 섬마을선생님 촬영기념비. 뒷섬이 승봉도이다.

40년이 지난 지금 대이작도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영화 촬영 땐 3백여 주민이 있었지만 상당수가 외지로 빠져나가 지금은 1백여명만 남아 어업과 농업에 종사하고 있다.

섬마을선생님에 출연했던 김유숙씨. 지금은 마음씨 좋은 민박집 주인이다.

바월도 승봉도 등 인근 섬 뱃길을 안내하는 이작도 등표

특이한 것은 부두에서 내리면 '문희 소나무'가 맞는다.
부두에서 마을쪽으로 3백여m떨어져 있는 이 나무는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 장면에 나온다.
문희가 이 소나무에 기대서서 선생님이 타고 떠나는 배를 안타까운 시선으로 바라 보았다고 해서 이렇게 불렸다고 한다.

하루 두번씩 수면 위로 솟는 이작도 풀등
멀리서 보면 풀치 떼 같은 풀등 모래섬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살아있는 조개도 함께 밀려오는 풀등 해변
밀물이 풀등을 감싼 후 노을에 젖어들고 있다. 뒷섬은 선갑도

영화에 등장하는 배우들과 스텝들 면면도 그 때로선 보통이 아니었다.
남자주인공 오영일은 제4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신인 연기대상을 받았다.
여주인공 문희(1947년 7월 출생)는 인기 절정의 배우였다.

동구여상을 나와 연예계에 몸담은 그녀는 1965년 영화 '혹맥'을 통해 데뷔했다.
영화계를 떠나서는 한국일보 경영진 집안으로 시집가 한국종합미디어 대표이사 회장직을 지낸 이색 이력도 갖고 있다.

또 지금은 고인이 됐지만 한때 희극배우로 이름을 날렸던 김희갑씨(1922년 7월 출생 / 일본 메이지대학교 출신)의
'양념 같은 연기력' 또한 눈길을 끌었다.
그는 쇼 무대 공연때 <불효자는 웁니다>등 가요를 불러 앵콜을 받았을 만큼 노래에도 일가견이 있었다.
만능 엔터테이너로서 한동안 여배우 황정순씨와 콤비를 이뤄 '팔도강산' 을 비롯한 여러 영화에서 연기력을 선보였다.

안은숙씨(1953년 6월 출생)는 중앙대 연극 영화학과를 나와 1963년 영화 '부부조약'으로 영화계에 데뷔했다.
영화 '섬마을 선생님'에서 총각선생 약혼녀로 출연, 어린 나이에도 깜찍한 연기를 펼쳤다는 평이다.

영화를 만든 김기덕 감독은 1930년 9월 서울에서 태어나 많은 작품들을 쏟아냈다.
'섬마을 선생님' 에선 감독 겸 편집 일을 맡아 프로다운 모습을 보여줬다.

한편 노래를 작곡한 박춘석씨는 70년 후반 나이로 10여년 넘게 병마와 싸우다가....
박씨는 '가수 이미자를 키워낸 작곡가' 로 불릴만큼 이미자씨가 부른 수많은 곡을 만들었다.
박씨는 평생 독신으로 지내면서 2천7백여 곡의 노래를 발표했다.

이미자씨의 <섬마을 선생님>, <기러기 아빠>,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
손인호가 부른 <비내리는 호남선>, 은방울 자매의 <마포 종점> 등 그가 작곡해 히트한 곡들은 수두룩하다.

'
동백아가씨'와 '섬마을 선생님'의 LP판.
1969년 8월 8일 제작한 '섬마을 선생님' LP판

노래 가사 첫마디에 나오는 '해당화'는 여름 해변 등지에서 아침 이슬을 머금고 바다를 향해 피는 꽃이다.
자세히 보면 사랑하는 님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낙네처럼 애처롭게 보인다.
예로부터 선비들의 사랑을 많이 받는 꽃으로 시나 노래 소재로도 많이 등장한다.

북한 원산 남동쪽에 있는 명사십리에도 해당화가 유명하다.
유난히 흰 모래밭과 긴 초록빛의 곰솔 숲 뒤로 보이는 옥빛 바다, 거기에 피어있는 주홍빛 해당화는 명사십리의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명물로 알려져 있다.

이때문인지 한국의 고전소설 '장끼전' 에도
'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한탄마라.
너야 내년 봄이면 다시 피겠지만
우리 님 이번 가면 다시 오기 어려워라
' 는 내용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