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선창 (船艙) - 고운봉(高雲峰)| 울려고 내가 왔든가 - 박재란

류지미 2023. 10. 15. 18:19

 

울려고 내가 왔든가 - 박재란

(映畵 울려고 내가 왔든가 主題歌)

https://www.youtube.com/watch?v=TxUoxPsziKQ 

 Oct 15, 2023

 

울려고 내가 왔든가 웃으려고 왔든가

이슬비 오는 그 언덕에 홀로 핀 백일홍

지나간 옛날 그려보니 사랑도 허무한 꿈이런가

지금은 어데로 갔나 행복의 파랑새

 

울려고 내가 왔든가 웃으려고 왔든가

푸른 하늘에 흘러가는 꽃구름 한 송이

바람에 불려 정처 없이 산 넘고 물도 건너야 하나

지금은 어데로 갔나 행복의 파랑새

 

 

예전 시골 중학생 시절~, 
대중가요는 엄격히 금지 되었던 호랑이 흡연하던 시절이 있었다.

연애는 금지된 장난
대중가요도 금지된 장난이었다.

그래도 눈치껏
연애질 하고 대중가요를  목청 터지지 않게 ㅎ 구성지게 부르던 장난꾼도 있었다.
예나 지금이나  눈치는 생필품이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는 '선창(船艙) '이다...
그걸  박재란이 1960년에 명곡으로 만들었다는 사실을 지금 처음 알았다.

살아생전 놓지지 않고 그 사실을  알게된 것이
그나마 그저 얼마나  크나큰 다행이라 아니할 수 없겠다.

 

그리움은  옛시절 추억 언저리엔 언제나 나타나는 신기루다.


울려고 내가 왔던가 

1960 제작
감독김화랑
출연김진규도금봉엄앵란황정순


북한에서 월남하던 중 공산군에게 아버지를 살해당하고, 어머니와도 헤어진 채 남한에서 고아로 자란 태현(김진규)은 자신을 친형처럼 따르는 윤식(황해)과 뒷골목 생활을 하다 이에 염증을 느끼고 일을 청산한다. 어린 시절부터 외롭게 자란 태현은 기생인 윤식의 누나 성실(도금봉)의 따뜻한 마음씨에 반해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하지만 성실은 태현의 장래를 위해 그와 헤어지기로 결심하고 윤사장(최남현)에게 태현을 소개한다. 윤사장은 태현을 아들삼아 경영 수업을 시킨다. 성실과의 이별로 괴로워하던 태현에게 윤사장의 딸 옥경(엄앵란)이 구애하고 태현도 그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그러던 중 성실은 우연히 태현의 어머니(황정순)를 만나고, 그녀를 태현과 옥경의 결혼식장에 모시고 간다.

 

 

박재란(朴載蘭, 본명 이영숙 , 본명 한자: 李英淑, 1940년 12월 16일 ~ )은 대한민국 여성 가수 겸 작사가이며 영화배우뮤지컬배우이다.

 

1938년 12월 16일, 서울특별시에서 태어나 천안여자중학교를 중퇴했다.

이후 1957년에 KBS 4기 전속가수에 합격하며 가수로 데뷔하게 되었다. 이후 작곡가 박태준에게 박재란이라는 예명을 받으며 가수로 본격적으로 활동하게 되었다.

그녀가 발표한 곡들 중 산 너머 남촌에는, 코스모스 사랑,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 등의 노래가 히트를 치면서 대중들에게 많은 인지도를 얻게 되었다.

현재는 원로가수격으로 가요무대 등에 출연하며 활발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

박재란(朴載蘭, 본명 이영숙  李英淑) 

본관 공주(公州)이며 경성부에서 출생하여 지난날 한때 경기도 인천 제물포에서 잠시 유아기를 보낸 적이 있는 그녀는 아직 일제 강점기 시절이던 1943년(4세 시절) 일가족과 함께 충청남도 천안에 이주하면서 이후 그곳에서 성장하였다.

 

8세 시절이던 1947년에 부친상(父親喪)을 치렀으며 1953년 이영숙(李英淑) 본명으로 주한 미8군 무대 언더그라운드 라이브 클럽에서 가수  데뷔를 하였다. 이후 오르가니스트  작곡가 박태준(朴泰俊)에게 발탁되어 박태준을 사부(師父)로 모시고 바이올리니스트  작곡가 김광수를 사숙(師叔)으로 모시며 박태준의 문하에서 음악 수련을 하며 박태준에게서 박재란(朴載蘭)이라는 예명을 얻었다. 

 

1957년 정식 가수 데뷔하였고 이후 《뜰 아래 귀뚜라미》, 《러키 모닝》, 《코스모스 사랑》, 《밀짚모자 목장 아가씨》 등을 비롯한 노래들이 히트하였다. 1년 후 1958년에는 파인 김동환  기타리스트  작곡가 김동현 작곡한 《산 너머 남촌에는》을 불러 연이은 히트 기록하였고, 이듬해 1959년 영화 《비 오는 날의 오후 3시》의 단역 출연을 통하여 영화배우 데뷔하였다.

 

같은 해 1959년,  당시 미국 가수  기타리스트  작사가  영화배우 벌 아이브스(Burl Ives)가 미국 시인  라디오 MC였던 웨블리 에드워즈(Webley Edwards)와 공동으로 영어 가사 작사하고 작곡 한 《Pearly shells》라는 노래 작품을 작사가 전우 한국어 가사로써 번안 작사하고 박춘석이 편곡한 《진주 조개잡이》라는 노래를 받아 불렀다. 이 노래 작품은 국내에서 1960년대 1970년대 여름 애창 노래 가운데 인기 애창 번안곡에 손꼽히는 노래가 되었다.

 

 

선창 (船艙)  - 고운봉(高雲峰)

1941

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

 

고운봉 -선창/영상출연 가수 박채영/스타365

https://www.youtube.com/watch?v=8E-X8blwcwE 

 

울려고 내가 왔든가 웃을려고 왔든가

비린내 나는 부둣가엔 이슬 맺힌 백일홍

그대와 둘이서 꽃씨를 심든 그날도

지금은 어데로 갔나 찬비만 나린다

 

울려고 내가 왔든가 웃을려고 왔든가

울어본다고 다시 오랴 사나이의 첫 순정

그대와 둘이서 희망에 울든 항구를

웃으며 돌아가련다 물새야 울어라

 

-------------------------------------------------------------

울려고 내가 왔든가 웃을려고 왔든가

추억이나마 건질손가 선창아래 푸른 물

그대와 둘이서 이별에 울든 그날도

지금은 어데로 갔나 파도만 스친다

 

고운봉- 선창/그시절 그 쇼(설날 특집)

https://www.youtube.com/watch?v=7xMTuXxDudc 

 

(高雲峰, 1920년 2월 9일 ~ 2001년 8월 1일)은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트로트 가수이다.

본명은 (高明得)이다. 충청남도 예산 출생이다. 어릴 때부터 가수를 꿈꾸던 중 1938년에 예산공립농업학교를 졸업하고 경성부로 무작정 올라왔다. 태평레코드 문예부장 박영호를 찾아가 예명을 얻고 전속가수로 채용되었다. 곧바로 악극단 소속으로 순회공연에 참가하면서 데뷔를 준비한 끝에, 1939년에 일본에서 〈국경의 부두〉를 발표하여 정식 데뷔하였다.

 

고운봉의 창법이 맑고 곡도 애잔한 내용이 많아 '순정가수'로 홍보되었다. 〈국경의 부두〉와 〈아들의 하소〉가 알려지면서 인기 가수가 되었고, 이후 〈남강의 추억〉 등을 계속 히트시켰다. 1940년에는 오케레코드로 옮겼고, 이듬해 발표한 조명암 작사, 김해송 작곡의 노래 〈선창〉이 공전의 인기를 기록하게 되었다. 1942년에 콜럼비아레코드로 이동하였으며, 태평양 전쟁 말기에는 친일적 성향의 노래도 불렀다.

 

종전 후 일본에 건너가 미국 대중음악에 심취하여 활동을 하였고, 1958년에 귀국한 뒤 대표작 중 하나인 〈명동블루스〉를 발표하였다.

 

사망하기 1년 전인 2000년에 고향인 예산 덕산온천에 선창 노래비가 세워졌다. 노래비 제막식에서 〈선창〉을 부르는 등 말년까지도 활동을 계속했다.

 

2001년 8월 1일, 노환에 따른 뇌경색으로 인해 향년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으며, 생전인 1998년에는 문화훈장 옥관장을 수여받았다.

 

주요 노래로는 "선창", "명동 블루스" 등이 있다.

 

고운봉 '선창'feat 전출연자

https://www.youtube.com/watch?v=hWFGLZuIrsA 

KBS2TV 1993 가요대상 - 1993년 12월(19931230)

고운봉 - '선창'(feat. 전출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