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 작사의 쌍두마차 '박영호'와 '조명암'|식민지 대중가요 시리즈 4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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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대중가요 시리즈 4편] (2022년 4월 26일 방송) 대중가요 작사의 쌍두마차 '박영호'와 '조명암' 이준희, 이영미와 함께합니다.
00:14:41 꿈꾸는 백마강 양적인 면이나 질적인 면에서 모두 해방 이전 대중가요 작사를 대표하는 쌍벽 두 사람이 다양한 필명으로 발표한 작품은 대략 1100여 곡. 작사자가 확인된 작품이 대략 3500여 곡이니, 약 1/3을 점하는 셈
00:30:38 온돌 야화 두 사람은 또 특이하게 같은 필명을 공동으로 사용하기도. 김다인이 바로 문제의 필명. 김다인 명의로 발표된 작품 중 어떤 것이 조명암의 작품이고 어떤 것이 박영호 작품인지는 확정하기 어려운 문제
00:39:24 타국의 여인숙 대중가요에서 작가의 개성을 찾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으나, 두 사람의 대비는 그래도 꽤 확인되는 편. 박영호는 작사가인 동시에 극작가로 활약했고, 조명암은 역시 극작도 했지만 시인으로 문필 활동을 시작
00:44:46 역마차 박영호는 특별한 학력 없이 거의 독학으로 극작가가 되었으나, 조명암은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하고 일본 와세다대학 불문과에 유학. 당시 불문과 교수 중 한 명이 일본의 유명 시인이자 작사가였던 사이조 야소
00:50:53 오빠는 풍각쟁이 작품 활동만 해서 작품 수가 좀 더 많기도 한 조명암과 달리, 박영호는 음반 기획을 총괄하는 음반회사 문예부장을 몇 차례 맡기도. 녹음을 눈앞에 두고서도 가사를 완성하지 않아 가수들을 초조하게 했다는 박영호의 집필 스타일이 그런 상황과 관련이 있는지도.
01:11:08 불어라 쌍고동 많은 작품을 발표한 두 사람은 군국가요에서도 역시 쌍벽을 이루는 작가. 특히 조명암은 확인된 군국가요의 2/3 정도를 도맡아 썼을 정도.
01:24:06 고향초 해방 이후 두 사람 모두 월북을 선택. 박영호는 1946년, 조명암은 1948년. 박영호는 1952년 또는 1953년에 사망했으므로 북한에서 노랫말을 그렇게 많이 만들었을 것 같지는 않으나, 조명암은 1993년까지 살면서 많은 체제선전 가요를 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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