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연실 Kim Yeon-sil , 金蓮實
일제 강점기 조선과 6.25 전쟁 이후 북한의 배우인 김연실은 부모를 일찍 여의고 김학근 밑에서 성장했던 김연실은 15세의 나이로 초혼을 했지만, 곧 실패하고 말았다. 김연실은 연극과 영화계에 골고루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다채로운 이력으로 인해 굵직한 한국 연극영화계의 단체들을 경험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김연실은 영화, 연극, 음악 분에서 골고루 활동하며 각각의 영역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배우였다.

생애와 이력
김연실 Kim Yeon-sil 金蓮實(1911~1997)
일제 강점기 조선과 6.25 전쟁 이후 북한의 배우.
김연실은 명치 43년, 즉 1910년 12월 29일에 태어났다. 그녀가 평양에서 태어나 평양여자보통학교를 마쳤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제 강점기 관료(평북 성진 군수와 해주 군수 역임)였던 김연식이었다. 그녀는 적어도 두 명의 남자 형제를 가지고 있었는데, 오빠인 김학근은 단성사에서 활동하던 변사였고, 남동생인 김학성은 훗날 촬영감독이 되었다. 김연실이 여배우가 된 계기는 연예계에서 활동을 하고 있던 김학근의 주선 때문이었다.
부모를 일찍 여의고 김학근 밑에서 성장했던 김연실은 15세의 나이로 초혼을 했지만, 곧 실패하고 말았다. 의지할 곳을 잃어버린 김연실에게 김학근과 그의 동료 변사들은 ‘나운규프로덕션’을 추천했고, 나운규는 그녀를 나운규프로덕션의 첫 영화인 〈잘 있거라〉에 출연시켰다.
작품 세계
〈잘 있거라〉로 데뷔할 당시만 해도 나운규가 원하는 배우상은 아니었다고 한다. 나운규는 데뷔 당시 김연실의 얼굴이 ‘매친 데가 없어 붓을 댈 수 없’는 얼굴이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그녀의 초기 인상은 여배우와는 거리가 멀었다. 다만 그녀는 나이가 들면서 골격과 윤곽선이 뚜렷해졌고, 그로 인해 여배우로서의 분명한 인상을 마련해갈 수 있었다.
김연실이 나운규에게 발탁되어 데뷔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드러낸 열성 때문이었다. 나운규는 김연실의 외모와 연기력이 뛰어나지는 않았지만, 김연실에게는 하고자 하는 의욕과 열성이 충만해 있었다고 회고하고 있다. 이로 인해 김연실은 나운규의 작품 〈잘 있거라〉에 캐스팅될 수 있었다.
1928년 4월 9일에 발간된 『동아일보』 기사에서, 이 작품에서 김연실이 맡았던 역할이 ‘시골 처녀’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이 작품에서 김연실은 “조고마한 잘 정돈된 몸맵시에 투명하여 모다 드려다 보일 듯한 얄팍한 얼골에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지고 나타나서 만흔 갈채를 밧은 이”로 평가되었다. 그만큼 김연실의 등장은 의외였지만, 그만큼 신선한 충격을 준 것도 사실이었다.
나운규프로덕션에서 김연실의 두 번째 출연한 영화는 1928년 1월 28일에 개봉한 영화 〈옥녀〉였다. 그녀는 〈잘 있거라〉에 출연한 이후 나운규 작업과 인연을 맺으며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져갔다.
김연실은 금강키네마사로 이적하여, 여주인공의 반열에 오르게 된다. 김연실은 1929년 2월 이원용, 이경선 등과 함께 〈종소리〉의 촬영에 임했다. 이 작품에서 김연실의 역할은 비련의 여주인공 ‘애경’ 역이었다. 그녀의 연기는 “재래에 나타난 모든 영화에서 볼수업든 새경디(境地)를 개척하얏다고 하겟다 그도 차차 캐메라 압흘 니저버리고 그 주인공과 자긔 처지를 구별치 안코 감정을 마음대로 주입할 수 잇는 모양이다 이번 〈종소리〉에서는 성공하얏다고 볼 수 잇다”는 평가를 받았다. 또한 김연실의 애경 역할이 ‘자못 성안(成案)한 전형을 다루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이러한 연기 평들은, 김연실이 점차 영화배우로서 적응해가고 있음을 알려주는 증거라 할 것이다.
김연실은 원방각프로덕션으로 이적하여 〈철인도〉(1930)에 출연했다. 영화 〈철인도〉는 나운규에게도 영화인으로서의 사활을 건 작품이었다. 하지만 전국 로케이션을 감행하고, 인천 기선 위에서의 자살 장면에 도전하고, 평양 탄광에서 실전을 방불케 할 정도의 격투를 벌였는데도, 이 작품은 흥행에 성공하지 못했다.
이후 김연실은 1930년 5월 31일에 개봉하여 6월 6일까지 단성사에서 상영한 영화 〈승방비곡〉에 여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 본래 〈승방비곡〉은 최독견의 신문 연재소설이었는데, 이 소설을 이서구가 각색하고 이구영이 감독하여 동양영화사 제 1회 작품으로 제작하였다. 이구영은 여주인공 명숙 역으로 김연실을 기용하였다.
당시 영화평에는 명숙 역할을 한 김연실에 대해, “아무도 모르는 가장 큰 슬픔이 이(승방의 비곡:인용자) 속에 잠겼을 것 같다. 그러나 승방의 비곡 아닌 위태위태한 일이 이 영화를 싸고 남았으니 그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작품의 불행한 여주인공(김연실 분)이 지팡이를 짚고 장님이 되어 뚜벅뚜벅 캄캄한 세상을 찾아 나오는 장면”이었다고 평한 바 있다.
이후 김연실은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1930), 〈화륜〉(1931), 〈임자업는 나룻배〉(1932), 〈종로〉(1933) 등의 영화에 출연했다. 1934년부터는 경성촬영소 일련의 영화에 주/조연으로 출연하여, 〈전과자〉, 〈대도전〉, 〈홍길동전〉에 출연하였다. 1930년대 전반기는 김연실의 전성기였고, 이 시절에 김연실은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배우와 가수로도 활동하였다. 1937년에는 김연실이 가장 많은 영화에 출연한 여배우로 뽑히기도 했다.
하지만 1930년대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그녀의 인기는 쇄락했고, 그녀의 활동 범위는 위축되기 시작했다. 새로운 면면과 개성을 지닌 여배우들이 대거 등장하고, 대중 가수들의 전문성이 심화되면서, 영화계와 가요계에서 그녀의 입지가 축소되었기 때문이다. 일제 강점기 말기에는 연극계를 떠나 생활인으로 돌아가기도 했으나, 고협에서 활동을 재개하면서 연극배우 혹은 악극 배우로 연극계에 복귀했다.
영화계로의 복귀는 해방 이후에 이루어졌다. 해방 이후 김연실은 〈사랑의 맹서〉(1947)에 출연하였는데, 이 영화에 함께 출연한 최은희에게 호감을 갖게 되었고, 남동생인 김학성에게 최은희를 소개했다. 이러한 인연으로 김학성과 최은희는 결혼하였다. 1949년에는 이규환 감독의 〈돌아온 어머니〉에 출연하였는데, 이것은 남한에서 그녀의 마지막 영화 출연이었다. 그녀는 이 작품에서 주인공 어머니 역을 맡았지만, 당시 관련 평은 냉담하기 이를 데 없었다.
6.25 전쟁이 일어나자 김연실은 월북하였고, 북한에서 인민배우의 칭호를 들으면서 활동하였다. 그녀가 월북한 것은 김혜일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는데, 김혜일은 북한의 극영화 〈피바다〉와 〈유격대 5형제〉등의 미술을 담당한 영화미술가로 알려져 있다. 그러다가 1984년 북한에서 설립된 ‘신필름’ 제작 작품인 〈탈출기〉에 최은희 등과 함께 출연하기도 했다. 김연실은 1997년 북한에서 사망했다.
영화사적 평가
김연실은 연극과 영화계에 골고루 활동한 경력이 있으며, 다채로운 이력으로 인해 굵직한 한국 연극영화계의 단체들을 경험했다는 특징을 지니고 있다. 게다가 김유영은 김연실이 ‘과하게 움직이는 경향’을 자제할 수 있는 배우라고 평가하고 있으며, 오랫동안 ‘배우 생활’로 일관한 경력을 가진 배우라고 기술하고 있다.
또한 김연실은 여배우로서의 자존감을 잃지 않는 배우였다. 그녀는 여배우에 대한 부당한 처사에 항거할 줄 알고, 당당하게 여자로서의 몸가짐을 강조할 줄도 알았으며, 남의 시선을 의식하면서도 이에 대해 공박할 줄도 알았다.
김연실은 영화, 연극, 음악 분에서 골고루 활동하며 각각의 영역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배우였다고 정리할 수 있겠다. 그녀는 세 분야에서 고른 성과를 거두었지만, 각각의 분야에서 최고가 되는 완성도를 보이지는 못했다. 이것이 그녀의 연예 인생에서 가장 분명한 한계라고 할 수 있겠다.
작품 목록

〈잘 있거라〉(Farewell(Jal issgeola), 조선, 1927, 출연)
〈옥녀〉(Ok-nyeo(Oknyeo), 조선, 1928, 출연)
〈종소리〉(The Ringing of A Bell(Jongsoli), 조선, 1929, 출연)
〈철인도〉(Cheol-indo, 조선, 1930, 출연)
〈바다와 싸우는 사람들〉(People Who Are Fighting against the Sea(Badawa ssa-uneun salamdeul), 조선, 1930, 출연)
〈승방비곡〉(Sorrowful Song in the Buddhist Monastery(Seungbangbigog), 조선, 1930, 출연)
〈수일과 순애〉(Su-il and Sun-ae(Suilgwa sunae), 조선, 1931, 출연)
〈화륜〉(Hwaryun(Hwalyun), 조선, 1931, 출연)
〈임자 없는 나룻배〉(A Ferry Boat that Has No Owner(Imja-eobsneun nalusbae, 조선, 1932, 출연)
〈종로〉(The Street Named Jongno (Jongno), 조선, 1933, 출연)
〈전과자〉(Ex-Convict (Jeongwaja), 조선, 1934, 출연)
〈청춘의 십자로〉(Turning point of the youngsters(Cheongchun-ui sibjalo), 조선, 1934, 출연)
〈대도전〉(Challenge(Daedojeon), 조선, 1935, 출연)
〈홍길동전〉(The Story of Hong Gil-dong(Hong Gildongjeon), 조선, 1935, 출연)
〈춘향전〉(The Story of Chun-hyang(Chunhyangjeon), 조선, 1935, 출연)
〈새로운 맹서(노도(怒濤))〉(New oath, 조선, 1947, 출연)
〈돌아온 어머니〉(A Mother(Dol-a-on eomeoni), 조선, 1949, 출연)
〈탈출기〉(The story of Escape, 북한, 1984, 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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