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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레그리 미제레레(Allegri-Miserere)

류지미 2023. 12. 16. 14:06

 

너무 아름다워서 봉인된 성 금요일 시편, 알레그리 미제레레(Allegri-Miserere) 

https://www.youtube.com/watch?v=vNFKuqfx99M

 

 

 

 

 

너무 아름다워서 100년동안 봉인된 노래를 외워버린 모차르트

https://www.youtube.com/watch?v=8Jj1ZAL3eh4

 

 

미켈란젤로의 천장화

La Volta : the Ceiling

시스티나 성당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의 제작 기간은 1508년부터 1512년이다. 중간에 율리오 2세가 경비를 제대로 지급하지 않아 14개월 동안 작업이 중단되었던 것을 감안한다면 이 짧은 작업 기간은 실로 경이로울 정도다. 라파엘로가 수많은 조수를 기용하여 거의 협업에 가까운 작업을 했다면 미켈란젤로의 조수들은 그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조수’의 역할만 했을 뿐, 극히 일부를 제외한 대부분을 미켈란젤로 혼자 힘으로 그렸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가로 14미터, 세로 41미터의 공간에, 그것도 바닥이나 벽도 아닌 천장에 무려 343명에 달하는 인간군상과 배경을, 대충이 아니라 ‘완벽하게’ 그려 넣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작업이 유화가 아닌 프레스코화라는 점도 미켈란젤로의 천재성을 입증한다. 프레스코는 벽면에 회반죽을 바른 뒤에 그것이 마르기 전에 안료를 입혀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빨리 그림을 그려야 하고 수정이 필요한 경우 그 부분을 죄다 뜯어내야 한다. 따라서 가능한 한 빨리 정확하게 그려야 하는, 굉장한 기술이 필요하다. 게다가 미켈란젤로는 그 이전까지 제대로 된 프레스코화 작업을 해본 적도 없었다.

 

그는 약 18미터 높이의 비계를 만든 뒤 그 위에서 작업했다. 좁은 공간에서 고개를 뒤로 젖히고 그림을 그리느라 나중에는 고개를 앞으로 숙일 수도 없을 지경에 이르렀고, 시력 저하에 욕창을 비롯한 온갖 후유증을 다 앓게 되었다고 한다. 물론 이런 이야기들은 미켈란젤로가 78세 되던 해에 그의 전기 《미켈란젤로의 생애》(1553)를 발간한 제자 화가이자 작가인 아스카니오 콘디비나 미켈란젤로를 광적으로 숭배하던 바사리가 만들어낸 다소 과장이 섞인 이야기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는 그림 실력은 둘째 치고 체력적으로도 인간 승리임에 틀림없다. 실제로 그는 작업을 하는 동안 가족이나 지인에게 보낸 편지에 자주 자신이 ‘이제껏 겪은 것 중에 가장 심한’ 육체적 피로에 시달린다고 고백하곤 했다.

 

미켈란젤로는 원래 천장과 벽이 연결되는 부분에 12사도의 모습을 담고, 중앙은 적당한 장식을 그려 마감하려고 했다. 하지만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교황에게 바뀐 구상을 전했다. 율리오 2세는 흔쾌히 이 천재의 변덕을 이해했고, 이번엔 “네 마음대로 하는 주문”을 했노라 공언했다.

 

9개의 중앙 그림

제단 쪽에서 성당 출입구에 이르는 긴 공간, 천장 중앙에는 9개의 창세기 장면이 그려져 있다. 이들을 중심으로 제단 쪽에는 〈요나〉가, 출입구 쪽에는 〈즈카르야〉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중앙 그림 좌우 바깥으로 각각 5개씩 총 10개로 구성된 그림들은 신화의 무녀들과 성서의 예언자들을 번갈아가며 담아냈다. 이들 10개의 그림들 사이에 튀어나온 8개의 스펜드럴(뾰족한 삼각 모양)과 그 바깥 쪽에 벽이 시작되는 부분의 16개의 루네트(잘린 원 모양)의 공간에는 예수의 조상들이 그려져 있다. 네 귀퉁이펜던티브에는 예언서에 언급된 이스라엘 민족의 구원과 관련한 장면들이 담겨 있는데, 이 펜던티브와 스펜드럴 위에는 청동 조각 같은 누드상이 좌우 대칭으로 그려져 있다.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 배치도
 
 

미켈란젤로는 중앙을 9면으로 나누어 그 안에 《창세기》의 장면들을 그려 넣었다. 그중 제단 벽으로부터 첫째, 셋째, 다섯째, 아홉째에 해당하는 그림은 액자틀을 넣어서 그렸고, 그 모퉁이에 이뉴디라고 하는 총 20명의 누드상과 10개의 청동 메달리온을 넣어 장식했다. 메달리온은 방패 모양으로 건축에서 원형 모양의 양각 조각을 뜻한다. 이들 이뉴디들이 들고 있는 참나무 이파리나 도토리 장식은 식스토 4세와 율리오 2세를 배출한 로베레 가문(라파엘로 산치오 〈정의〉 항목 참조)을 상징한다. 둘째, 넷째, 여섯째, 여덟째에 해당하는 그림은 액자가 없다.

 

미켈란젤로는 출입문 쪽부터 작업을 시작했다. 따라서 《창세기》의 연대상으로 보면 오히려 뒷부분에 해당하는 일곱 번째 그림부터 그린 셈이다. 첫 작업은 〈대홍수〉였다. 이어 〈노아의 제사〉와 〈만취한 노아〉, 그리고 〈아담과 이브의 유혹과 추방〉, 〈이브의 창조〉를 완성한 뒤 한참 동안 제작을 중단한 그는 1511년에 한 차례 작업 상황을 공개한 뒤 〈아담의 창조〉부터 작업을 재개했다. 아마도 미켈란젤로는 아담과 이브에 관한 중앙 부분을 그리면서부터 어차피 바닥에서 세부적인 그림까지 세세하게 볼 수 없는 점을 감안해 인물의 크기를 확대했고, 상대적으로 등장인물의 수도 가급적 줄여나간 것으로 보인다. 이어 1512년 그는 〈땅과 물을 가르심〉, 〈식물의 창조, 해와 달의 창조〉, 〈빛과 어둠을 가르심〉까지 차례로 완성하였다. 스스로 조각가임을 주장했던 그는 처음엔 실력 있는 베테랑 화가도 덤비기 힘든 프레스코화 작업이 상당히 부담스러웠겠지만, 날이 갈수록 작업 속도는 빨라졌고, 질적인 면에서도 흠잡을 바 없는 완벽을 보여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