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Citing Articles

“공직자·선거범죄 검찰 수사 틀어막으려 여야가 담합”

류지미 2022. 4. 24. 07:17

“공직자·선거범죄 검찰 수사 틀어막으려 여야가 담합”

중앙선데이

입력 2022.04.23 00:20

업데이트 2022.04.23 01:04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의 '검수완박' 법안 중재안을 여·야가 각각 의원총회를 통해 수용하자 이날 오후 사직서를 제출한 김오수 검찰총장이 서울 서초동 대검 청사를 떠나고 있다. [연합뉴스]

22일 박병석 국회의장이 낸 ‘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검수완박)’ 법안 중재안을 여야가 받아들이자 검찰이 강력 반발하고 있다. 문제를 삼는 부분은 크게 세가지다. 수사와 기소를 인위적으로 분리하고, 숙의 없이 시한을 못박아 법안을 통과시키는 한편, 경찰권 비대화 통제 방안 등이 담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본질적으로 민주당의 검수완박 원안과 다를바 없다는 것이 검찰의 인식이다.

특히 무제한토론(필리버스터)를 불사하며 법안 통과를 저지하겠다던 야당이 합의했다는 소식이 전해졌을 땐 “가짜뉴스 아니냐” “정말 사실이 맞느냐”고 묻는 등 검찰 전체가 술렁였다. 국민의힘은 “검찰의 보완수사권을 지켰다”는 입장이지만, 검찰은 “진범·공범을 알거나 여죄가 밝혀져도 사실상 수사할 수 없게 되는 상황”이라며 즉각 반발했다.

 

예세민 대검 기획조정부장은 이날 오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중재안에 대한 우려를 토했다. 예 부장은 중재안 내용 중 특히 검찰의 보완수사와 관련해 “알고도 수사를 할 수 없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중재안에 담긴 현재 검찰의 보완수사에 대한 단일성 동일성 기준을 그 이유로 들었다. 예 부장은 “단순 사기 사건으로 송치됐는데 알고 보니 조직적인 다단계 사기 또는 보이스피싱인 경우가 있다”며 “그런데 단일성 동일성 기준으로 보면, 단순 사기 행위를 벗어난 건은 수사하지 못하고 단순 사기 사건에 대한 공소장만 쓰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일선 검사들은 중재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불법 정치자금과 선거범죄를 수사해 온 각 검찰청 공공수사부(옛 공안부)는 곧바로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는 점에 주목한다. 특히 오는 6월로 예정된 전국동시지방선거 관련 선거범죄 수사에도 차질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고 있다. 중재안에 따르면 현재 검찰이 직접 수사할 수 있는 6대 범죄 중 하나인 선거범죄에 대한 검찰의 수사권은 즉시 폐지된다. 이와 관련, 광주지검 순천지청장을 지냈던 김종민 변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가령 국회의원이 돈을 받고 공천을 주는 경우, 부패와 선거범죄가 겹친다”며 “그러면 경찰이나 중수청에 따라 분리해 수사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할텐데, 현 중재안은 현실을 감안하지 못한 정치적 미봉책”이라고 비판했다.

한 검찰 간부는 “지방선거를 한 달 앞두고 공직자·선거범죄에 대한 검찰 수사를 틀어막는 데 여야 정치인들이 담합했다”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다른 간부는 “국민의힘 의원들도 본심을 드러낸 것”이라며 “닭 쫓던 개가 됐다”고 말했다. 한 부장검사는 “단계적인 검찰 말살”이라며 “특수부는 향후 중대범죄수사청으로 이동해 살아남게 하면서 검찰을 갈라치는 안”이라고 했다.

 

이날 오후 대검찰청서 열린 ‘검수완박 공청회’에 현직 검사로는 유일하게 참석한 차호동 대구지방검찰청 검사도 “중재안을 보면 공직자범죄, 선거범죄를 빼게 돼있는데, 사실 이걸 빼면 누가 좋나”라며 “대다수 국민들과 상관 없는 부정선거, 뇌물, 부정부패 이런 것이 중재의 대상이 된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그는 “이것이 우리 국회의 현실이고, 제가 일개 평검사에 불과하지만 의장님과 여당·야당 의원들 전부 부끄러운 줄 아셔야 한다”고 말했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사범에 대한 공소시효가 6개월에 불과하다. 선거 범죄 수사 경험이 많은 한 검사는 “선거 사범에 대한 단기 시효를 둔 국가는 우리가 유일하다”며 “만약 경찰이 5개월여 수사를 하다가 미진한 상태에서 검찰로 송치할 경우 검찰은 뻔한 사건도 시간관계상 증거수집을 하지 못하고 속절없이 무혐의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며 “이제 정치인들만 발 뻗고 잘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검찰이 선거범죄 수사권을 가지고 있는 현재도 공소시효 문제로 처벌까지 이어지기가 상당히 까다롭다는 게 법조계 평가다. ‘드루킹’ 댓글 조작 사건으로 기소돼 대법원에서 징역 2년형을 확정받은 김경수 전 경남지사 사건이 대표적이다. 김 전 지사는 컴퓨터 등 장애 업무방해 혐의는 유죄로 인정됐지만, 공직선거법 혐의는 최종 무죄 판결을 받았다. 대법원은 당시 김 전 지사가 드루킹 일당에 센다이 총영사직을 제안한 것이 2018년 지방선거가 아니라 2017년 대선 과정에 대한 대가로 봤다. 대가성은 인정됐지만, 이에 대한 공소시효가 이미 지난 탓에 처벌하지는 못했다.

 

배용원 서울북부지검장은 간담회를 열고 “검수완박 법안이 그대로 시행되면 제2, 제3의 ‘김태현 사건(세 모녀 살인 사건)’ 해결이 어려워질 것”이라며 “벼랑 끝에 도달한 ‘폭주 기관차’를 더 늦지 않게 멈춰주길 간곡히 호소한다”고 말했다. 서울북부지검은 지난해 4월 이 사건을 수사했는데, 김태현은 우발범행임을 주장했지만 검사가 디지털 포렌식 등 수십 시간에 걸친 보완수사를 통해 계획적 범행임을 밝혔고, 무기징역이 선고됐다는 것이다. 그는 “의사가 환자를 보지 않고 진단을 내릴 수 없는 것처럼, 검사가 수사를 하지 않고 공소제기 여부를 결정할 수는 없다”며 “법안이 시행되면 검사는 기록 너머에 숨겨져 있는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기 어렵게 된다”고 지적했다.

 

한편, 이날 퇴임하는 조남관 법무연수원장 역시 “결국 우리나라는 부패공화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검수완박 논란이 커지기 전인 지난 5일 사표를 낸 조 원장은 이날 퇴임사를 통해 “한 나라의 정의와 인권을 최고 가치로 하는 사법체계 근간을 변경하는 입법이 이념적 과잉과 권력적 탐욕 속에서 분노와 졸속으로 처리되면 정의가 뒤틀리고 국민의 기본권이 형해화될 수밖에 없다”며 “그 피해는 오로지 국민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검찰 밖에서도 비판이 이어졌다. 대법원 공청회에 참석한 김예원(40·사법연수원 41기) 장애인권법센터 대표 변호사는 “중재안이라고 부르고 싶지 않고 야합안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중재안은) 고작 1 %도 안되는 기득권 범죄에 대해서만 수사를 통제하고 99%의 일반 범죄 수사 통제는 안 한다”며 “서민권리의 극적 소멸”이라고 주장했다. 한국형사법학회장 출신 김성룡 경북대 로스쿨 교수도 “중재안에 나와있는 부분을 결론적으로 얘기하면 민주당이 낸 법안을 6개월이나 1년 미루겠단 취지”라며 “부칙을 보면 앞으로 4~5개월 안에 검사가 열심히 수사해서 기소하지 못하면 정치인들 수사는 못하게 되고, 사람들은 ‘경찰에 가서 (사건이) 암장되겠구나’ 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참석자인 모성준(46·32기) 대전고법 부장판사는 검찰의 수사지휘권이 없어진 상태에서 부패·경제 등 2개 범죄만 검찰이 직접 수사하게 될 경우, 범죄의 수사 가능 여부를 판단하는 것 자체에 위축을 받게 되고 결국 범죄자들에게만 유리한 상황이 펼쳐진다고 설명했다. 모 판사는 “범죄 실체는 단일하고, 수사를 해야 적용법조를 알 수 있는 것인데, (지금은 반대로) 적용 법조를 알아야 수사권이 있는지를 알 수 있는 아주 획기적인 상황이 됐다”며 “절차가 실체적 진실을 발견하는 것을 방해하고 그 결과 모두가 무력감에 빠지게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준호·강광우·안대훈·정용환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