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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양갱’ 1초 만에 바로 쳤다, 손열음 ‘귀 복사’ 환상의 영상

류지미 2024. 4. 15. 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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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양갱’ 1초 만에 바로 쳤다, 손열음 ‘귀 복사’ 환상의 영상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앞에 악보를 다짜고짜 펼쳤습니다. 그가 한 번도 연주한 적이 없는 곡입니다. “자, 바로 쳐보세요.” 그러자 이 피아니스트는 입꼬리를 살짝 올리면서 건반에 손을 올립니다. 음악은 제대로 나올까요?

서울의 한 연습실에서 '더클래식'을 위해 피아노 앞에 앉은 피아니스트 손열음. 강정현 기자

 

이번 주 ‘더 클래식’은 손열음의 재능과 특징을 파헤쳐 봤습니다. 그러려고 피아노 앞에서 만났죠. 그는 ‘빠른 완성형’ 피아니스트로 유명하거든요. 처음 보는 악보를 읽어 바로 음악으로 바꿔내고, 그걸 또 빨리 외우고, 무대에서 완전하게 연주해 낸다는 거죠. 이뿐 아니라 음의 높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절대음감, 그중에서도 더 정확한 절대음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여기에 눈으로 본 것을 사진 찍듯이 기억하는 ‘사진 기억력’까지 있고요.

 

손열음은 이런 ‘가진 것’이 얼마나 많은 피아니스트일까요? 그의 재능이 음악으로 어떻게 표현돼 나올까요? 지금부터 손열음의 음악을 들으며 알아보겠습니다. 손열음이 연주한 ‘밤양갱’도 쿠키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 ‘더 클래식’의 내용을 공연으로 확인할 기회를 드립니다. 3월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손열음, 스베틀린 루세브(바이올린)의 듀오 공연에 애독자 여러분 중 3명을 추첨해 입장권을 2장(R석)씩 선물하겠습니다. 기사 하단의 구글 폼을 작성해 주시면 됩니다.

📌이런 내용이 있어요

1 바로 보고 바로 친다(영상)
2 조회수 2119만의 비밀
3 피아노의 ‘딕션 장인’
4 극단적 절대음감

📌쿠키 영상: ‘밤양갱’
📌부록: 초5에 비행기 혼자 타고 러시아로

바로 보고 바로 친다 

음악은 묘기도, 서커스도 아니지만 가끔은 그만큼 흥미롭습니다. 손열음이 연주해 본 적이 없는 곡의 악보를 피아노 앞에 딱 펼쳐서 올려놨습니다. 처음 보는 악보(쇼팽)를 보자마자 치는, 초견(初見) 실험입니다.
영상으로 보실까요?

 

물론 유명하기 때문에 귀에 익은 음악이긴 합니다. 그런데 처음 치는데도 거의 무대에서 연주할 수 있는 수준이죠? 무엇보다 속도가 원곡 그대로입니다. 복잡한 악보를 단번에, 종으로 또 횡으로 읽어내는 능력입니다.

이번에는 악보도 없이 음악만 들려주고 연주해보도록 요청했습니다. 속칭 ‘귀로 따는’ 작업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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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숙련된 아이돌이 새로운 안무를 바로 복사하는 장면 같지 않나요?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냐”고 묻자 잠시 생각하던 손열음은 “무엇보다 귀를 막으면 못할 것 같다”고 합니다. 손을 움직이는 것보다 귀로 듣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손열음을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키워드가 나옵니다. 바로 ‘귀’입니다. 모든 것은 귀 덕분입니다. 소리를 잘 듣고, 미세한 차이를 잡아냅니다. 타고났다고밖에는 할 수 없는 좋은 귀를 가지고 있습니다.

조회수 2119만의 비밀 

그럼 이렇게 잘 듣는 피아니스트가 어떻게 연주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우선 가장 유명한 연주 영상을 보죠. 이 글을 쓰고 있는 현재 이 동영상의 조회 수는 2119만2343회. 댓글은 9550개입니다. 댓글은 마치 열렬한 신앙 고백 같습니다. ‘클알못인데 피아노 연주에 처음으로 숨죽였다’ ‘모차르트가 기뻐할 만한 연주’라고 하네요.

손열음이 2011년 러시아에서 연주한 모차르트 협주곡 21번 영상입니다. 차이코프스키 국제콩쿠르 무대였죠. 모차르트 연주 영상 중 이 정도로 인기 높은 것이 또 있었을까요.

 

이 30분 남짓한 모차르트를 듣고 나면, 이상하게도 모든 감각이 깨어난 듯한 느낌이 듭니다. 마치 마법에 홀린 듯 ‘수십 번씩 봤다’는 고백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잡아끄는 걸까요?

 

한마디로 정리하면 ‘맛있게’ 연주하기 때문입니다. 손열음의 연주에는 맛이 밍밍한 부분이 없습니다. 예를 들어 2100만 모차르트의 영상 중에 이런 부분입니다. 두 영상을 비교해 들어 보세요.
〈3분19초부터 재생되는지 확인해 보세요〉

 

〈2분47초부터〉

 

다르게 들리죠? 상대적으로 두 번째 연주는 요즘 말로 ‘무맛’으로 느껴지지 않나요? 그렇다면 다시 궁금해집니다. 손열음식의 별미는 왜 맛이 입체적일까?

피아노의 ‘딕션 장인’

모든 음이 다 들리기 때문입니다. 네, 손열음의 큰 특징은 모든 음표가 정확하게 귀에 꽂힌다는 점입니다. 빈 오선지를 펼쳐놓고 들으면 음을 다 받아적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화배우 중에 대사 전달력이 좋은 이들을 ‘딕션 깡패’라 부른다죠. 한석규·김희애·박은빈·서현진 같은 배우 말입니다. 손열음은 ‘피아노 위의 딕션 장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음절이 다 들리고 이해가 됩니다. 그 쾌감이 2100만 회 이상 반복 재생을 일으켰습니다.

또 다른 예는 이런 부분입니다. 다음 두 연주를 비교해 보면 해상도 차이를 알 수 있습니다. 특히 왼손을 보세요. 손열음의 연주가 오돌토돌한 자갈밭 같다면, 두 번째 연주는 촉촉한 진흙길 같지 않나요? 여러분은 어느 쪽이 더 좋으신가요?
〈1분25초부터〉

 

〈1분7초부터〉

 

이제 마지막 질문입니다. 손열음은 어떻게 이런 연주를 할 수 있는 걸까요. 해상도 높고 선명한 연주 말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다시 한 글자입니다. ‘귀’. 네, 이 모든 것은 귀의 능력 덕분입니다. 앞에서 봤듯 그는 복잡한 소리에서도 모든 부분을 듣습니다. 그렇게 해서 처음 보는 악보도 쓱쓱 쳐내고, 들은 음악은 바로 손으로 옮기죠.

 

이제 우리는 아주 고전적인 질문 앞에 서게 됩니다. ‘도대체 이런 능력은 타고난 것인가, 후천적으로 계발된 것인가.’ 손열음은 “어려서부터 쳐보고 싶은 곡이 정말 많았다. 그래서 닥치는 대로 악보를 읽었다”고 했습니다. 오랜 시간 훈련됐다는 주장입니다. 하지만 악보를 빨리 읽는 능력이 애초에 없었다면 그만큼 많은 악보에 도전하지도 못했겠죠. 결국 ‘타고난 능력’과 ‘피나는 노력’의 절묘한 결합이 손열음 음악의 근간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극단적 절대음감

앞에서 이야기한 대로 손열음은 또 절대음감이 극도로 발달한 피아니스트입니다. 피아노 건반을 누르면 그 음을 맞히는 것을 절대음감이라고 하죠. 그런데 손열음은 건반과 건반 사이의 음까지 알아맞힙니다. 음이 건반으로 딱딱 나뉘어 있는 피아노 말고, 바이올린과 같은 현악기로 표현하는 아주 미세한 차이까지 잡아냅니다. 쉽게 말해서 ‘미’와 ‘파’ 사이에 피아노 건반은 없지만, 실제로는 소리가 존재하죠. 손열음은 그 사이의 음정도 구별해낼 수 있는 귀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나가는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 깡통 두드리는 소리의 음정을 맞히는 것은 물론이고요.

 

이런 재능이 음악에는 어떻게 연결될까요? 손열음 음악의 빛깔에 답이 있습니다. 같은 음을 누를 때도 그의 소리는 넓은 스펙트럼으로 표현이 됩니다. 똑같은 음표도 그에게는 다 다르게 들린다는 거죠. 그래서 손열음의 연주에서는 다양한 빛깔이 쏟아져 나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예를 들면 이런 부분입니다.
〈30분부터〉

 

다음 연주와 비교해 보면 손열음의 정확한 딕션과 더불어 많은 색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5분37초부터〉

 

또 많은 청중이 손열음의 리듬을 이야기합니다. 쫄깃하면서도 탱글탱글한, 손열음식 리듬 표현이 있거든요. 재즈 피아니스트를 찾아가 레슨을 받았던 일화도 유명합니다. 하지만 손열음은 “거쉬인, 라벨과 같은 20세기 작품에서는 재즈 공부가 도움됐지만, 그 이전 시대의 리듬은 분명히 다르다”고 말합니다. 즉 손열음식 리듬에 적합한 단어는 ‘재즈’보다도 ‘풍선’입니다. 손열음은 “리듬을 풍선처럼 늘려서 생각하려고 한다”고 했습니다. “바람이 꽉 차 있는 풍선처럼 리듬을 팽팽하게 스트레치해서 표현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는데요, 다음 음악을 들으시면 무슨 말인지 쉽게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

 

천재라는 말은 주의해서 사용해야 합니다. 고유한 예술성을 오히려 가릴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많이 타고난 사람한테는 천재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되지 않을까요. 들으면 바로 피아노로 옮길 수 있는 귀, 모든 소리를 하나하나 청중에게 전달하는 손, 그리고 탱탱한 풍선처럼 리듬을 만드는 유연한 근육들. ‘많이 가진’ 피아니스트 손열음은 그러나 “정성 들여 오랫동안 만들어낸 음악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얘기해 줬습니다. 그 누구보다 단거리 스퍼트를 잘할 수 있지만, 마라톤 완주를 여러 차례 자꾸 해내고 싶다는 말로 들렸습니다.

 

 

 “최근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 3악장을 연주하는데 변주곡 구조로 접근해 봤다. 주제들이 조금씩 다르고 비슷하게 나오는 것을 설정했다. 이렇게 전체 구조가 타당하도록 연주하는 데에 공을 들이고 있다.” 

 

굵은 선으로 발전하는 손열음이 마지막으로 더 클래식의 구독자들을 위해 귀여운 가요 ‘밤양갱’ 영상으로 인사를 드립니다. 단순한 음악이기는 하지만, 귀로 듣자마자 바로 건반으로 옮기는 신기한 재능을 다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근영 디자이너

 

초5에 비행기 혼자 타고 러시아로

 

부모의 뒷바라지가 유난한 음악계에서 손열음은 독립적으로 자랐다. 1997년 초등학교 5학년에 혼자 비행기를 타고 러시아에 갔다. 모스크바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비행기를 갈아타고, 공항에서 버스를 타야 하는 일정이었다. 손열음은 혼자 날아가 차이콥스키 주니어 콩쿠르에서 1위 없는 2위를 했다. 그는 “학교 선생님인 엄마가 함께 가줄 수 없는 것을 이해했다”고 웃으며 기억한다.

 

음악은 다부진데, 인생은 여유롭다. 원주여중을 졸업하고 바로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했고, 그 해에 이탈리아 비오티 국제콩쿠르에서 최연소 1위를 하며 ‘순수 국내파’의 역사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수많은 콩쿠르에 출전하고 입상했지만 결과에 초연한 편이다. 중앙SUNDAY에 2014년 기고한 글에서 ‘고백하자면 나는 부럽다는 감정을 잘 몰랐다’고 썼다. 목숨을 걸고 음악에 매달리는 대신 자신을 돌보며 성장해 온 손열음의 성격이 잘 보이는 글을 여기에 인용한다.

 

" 고백하자면 나는 부럽다는 감정을 잘 몰랐다. 혹시 부러울 게 없어서 그런 것 아니냐고 한다면 물론 절대로 아니다. 그저 지극히 무경쟁적인 천성을 타고났을 뿐. 유치원 간식 시간에 모든 아이들이 자기 것을 먼저 해치우고 친구들의 것으로 눈을 돌리는 것이 대체 어떤 심리냐는 질문을 던져 선생님을 당황하게 했고, 초등학교 시험 때 “이것만 맞았으면 네가 1등인데 아쉽지도 않니?” 하는 엄마에게 “(1등 한) 그 아이는 원래 공부 무지 잘하는 애야~ 나랑은 달라!”라며 도리어 엄마에게 무안을 주었으며, 콩쿠르에서 나보다 총점이 1점 낮게 발표된 친구와 공동 1등이 되었는데도 친한 친구와 상을 나누었다며 오히려 좋아해서 주변 사람들을 김빠지게 만들었던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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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 카드 발행 일시2024.03.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