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론스타 그날 한동훈 “그날 지우고 싶다” 2006년 9~10월 무슨 일

류지미 2024. 4. 21. 07:25

한동훈 “그날 지우고 싶다” 2006년 9~10월 무슨 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입니다. 협조 부탁드립니다.  

 

2006년 10월 17일 씨티그룹 산하 씨티글로벌마켓증권(이하 씨티증권) 서울지점. 20~30명의 양복 차림 남자들이 들이닥쳤다. 이들은 손에 쥔 서류 몇 장을 들이밀더니 사무실 곳곳을 뒤지기 시작했다.

 

그중 한 명이 막 컴퓨터에 접속하려던 순간, 누군가 앞을 가로막고 빠르게 쏘아붙였다. 영어였다.

 

“자료는 홍콩 지사 서버에 보관돼 있는데 한국 검찰이 거기를 뒤질 순 없습니다.”

당황한 수사관들이 고개를 뒤로 돌렸다. 시선이 머문 곳에 외환카드 주가조작 의혹 사건 주임검사 이동열(전 서울서부지검장)과 한동훈(현 법무부 장관)이 있었다.

 

한동훈은 그로부터 한 달 전 금융감독원에서 넘어온 이 사건 자료를 살펴본 뒤 이동열에게 “형 이거 할 수 있어. 딱 보니까 되는 사건이야”라고 호언장담했다.(1회 참조)

지난 3월 27일 국회 법사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고 있는 한동훈 법무부 장관. 김성룡 기자

 

호언이 허언으로 전락할 위기였다. 본류인 외환은행 헐값매각 의혹 사건 수사가 꽉 막혀 있던 그때 이 사건은 검찰의 유일한 돌파구였다. 이것마저 실패하면 론스타 수사는 더는 가망이 없었다.

 

두 사람은 압수수색 지원군이었던 조상준(전 국가정보원 기조실장), 이복현(현 금융감독원장)과 머리를 맞댔다.

잠시 뒤 한 검사가 나섰다. 영어 실력이 주요 선발 기준이었던 론스타 수사팀의 검사 중에서도 영어를 특출나게 잘한다는 평가를 받던 조상준이었다. 그는 유창한 영어로 설득에 나섰고 긴 대치 끝에 결국 상대를 한발 물러나게 했다.

국정원 기조실장 시절인 지난해 10월 국회 정보위 전체회의에 출석했던 조상준. 김경록 기자

 

검찰은 씨티증권 홍콩 지사 서버에 접속한 뒤 중요 검색어들을 집어넣어 관련 자료들을 검색했다. 프린터가 쉴 새 없이 토해 낸 자료들은 큰 상자 10개를 꽉 채웠다.

 

핵심은 e메일이었다. e메일은 증거와 방증의 집합체다. 그걸 확보하면 이기고, 놓치면 진다. 검찰은 그때 그걸 확보했고, 이겼다.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치밀한 사전 분석과 정확한 조준, 살을 발라내는 노력이 뒤따랐다.

악전고투 끝에 주가조작 전모 밝힌 한동훈 

“2006년 9~10월을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다.”

 

론스타 얘기가 나올 때마다 한동훈은 이렇게 말했다. 그만큼 고생했다는 얘기다. 사무실을 함께 썼던 ‘방장’ 이동열과 ‘방졸’ 한동훈은 중수1과장 최재경(전 민정수석, 현 삼성 고문)의 인솔하에 그해 8월 말 론스타 수사팀으로 넘어왔다.

 

그들을 포함한 지원군에는 정·관계 로비 의혹 수사 임무가 부여됐다.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을 담당한 두 사람은 개인 금품 비리 정황을 찾아내 그를 기소했다. 보고받을 때마다 “울화가 치민다”고 답답해하던 중수부장은 지원군의 활약에 고무돼 “이제야 숨통이 좀 트이는 것 같다”고 흐뭇해했다.

 

두 사람에게 외환카드 주가조작 의혹 사건이 배당된 건 그 직후다. 이동열과 한동훈은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열 상자 분량의 영문 자료들을 다섯 상자씩 나눠 맡은 뒤 밤낮을 가리지 않고 번역했다.

 

당일 귀가는 사치였다. 새벽 2~3시까지 번역하다가 집에 가서 눈 좀 붙인 뒤 옷 갈아입고 오전 8시에 다시 출근하는 생활이 반복됐다. 출근 후에는 중수부장에 대한 보고서를 먼저 쓴 뒤 다시 번역에 매달렸다. 그러는 사이사이 씨티증권 관계자들을 소환해 주가조작 실행 여부에 대한 조사도 해야 했다.

환하게 불을 밝히고 있는 대검 청사. 강정현기자

 

간이침대에서 밤을 새우며 일한 적도 많았다. 그럴 때면 부인들이 갈아입을 옷을 대검 청사 방호원실에 맡겨 두고 갔다. 피로가 누적되면서 이동열은 대상포진, 한동훈은 면역질환을 앓았다.

 

몇 안 되던 낙 중 하나가 카페인이었다. 한동훈은 알루미늄 캔에 담긴 일리(illy) 커피 원두를 좋아했다. 아침마다 사무실에서 그걸 갈아 커피를 내린 뒤 동료들에게 건넸다.

 

론스타 수사팀에 있었던 변호사 A는 “그때만 해도 원두를 갈아 마시는 공무원은 드물었는데 한동훈은 스타일리스트였다. 그의 사무실에 가면 커피 냄새가 은은하게 풍겨왔다”고 말했다.

 

이동열과 한동훈은 젊음과 사명감, 단련된 금융수사 역량, 그리고 카페인의 힘을 빌려 악전고투 끝에 자료들을 모두 번역했고, 순서대로 사건을 재구성했다. 씨티증권 관계자들은 물증의 힘 앞에 하릴없이 무너졌다. 이렇게 해서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의 전모는 세상에 그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냈다.

외환카드 2대 주주 뒤통수 때린 론스타 

“외환은행 인수가 마무리된 뒤에 협의하자고 했잖아요. 시간을 갖고 문제를 해결하려 했던 건데 이럴 수가 있어요? 너무나 의외의 상황입니다. 시간을 좀 주세요.”

 

2003년 11월 13일 올림푸스캐피탈(이하 올림푸스) 홀딩스 아시아 사장 허용학이 외환은행 관계자들에게 분통을 터뜨렸다. 론스타가 막무가내로 “지분을 무조건 팔라”고 윽박지른 데 대한 반응이었다. 그가 더욱 황당했던 건 매우 우호적이었던 한 달 전의 태도가 손바닥 뒤집듯 뒤집혔기 때문이다.

 

과당 경쟁으로 만들어진 거품이 터지면서 당시 외환카드는 다른 카드사들처럼 빈사 상태에 있었다. 외환카드의 2대 주주였던 올림푸스(지분율 24%)는 신주인수권부사채(BW) 발행 등을 통해 외환카드에 현금을 넣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그러던 올림푸스에 10월 8일 론스타 코리아 대표 스티븐 리의 편지가 도착했다.

 

“우려를 깊이 이해하고 있다. 외환은행 인수 작업이 마무리되면 올림푸스와 협의해 외환카드에 유동성 지원을 하겠다.”

편지에 고무된 허용학은 인수 작업 종료 시점인 10월 31일까지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그러나 11월이 된 이후 인편으로 전달된 메시지는 그를 얼어붙게 했다.

 

“올림푸스 지분을 우리에게 팔아라. 그렇지 않으면 외환카드를 부도내겠다.” 올림푸스는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다.

외환은행을 인수한 론스타는 자회사 외환카드마저 가져야 했다. 통째로 재매각해야 이익을 극대화할 수 있어서다. 소매금융에 주력한다는 전략을 이행하기 위해서도 카드사는 필요했다.

론스타는 외환카드 합병 이후 무자비한 구조조정의 칼날을 휘둘렀다. 2004년2월 서울 방배동 외환카드 본사 앞에서 한 여직원이 구조조정 항의 집회 도중 눈물을 흘리고 있다. 김성룡기자

 

문제는 합병 비용과 지분율 하락이었다. 외환카드를 합병하려면 카드 주식을 은행 주식으로 바꿔주거나 현금을 주고 인수해야 한다. 그런데 카드 주가가 높으면 비용이 많이 들거나 론스타의 지분율 하락이 불가피해진다.

 

11월 3일 기준 은행과 카드의 합병 비율은 1대 1.355였고,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은 7787원이었다. 그대로 합병했다면 론스타의 외환은행 지분율은 48.92%로 떨어졌다. 금과옥조인 지분율 50%가 깨질 판이었다.

 

방법은 외환카드 주가를 낮추는 것뿐이었다. 동시에 걸림돌이었던 올림푸스도 제거해야 했다.

외환카드 주가 낮추려 돈줄 끊고 부도 공언 

외환은행에 1조원 이상의 현금을 투입한 론스타는 그중 단 한 푼도 외환카드에 보내지 않았다. 그러면서 외환카드를 부도낼 거라고 공언하고 다녔다. 주가가 급락했다.

 

올림푸스는 물론이고 금융 당국까지 당황했다. 외환카드 부도 시 카드업계 및 금융권 전체에 파장이 확산해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었다.

서울 여의도 금융감독원. 연합뉴스

 

작전은 신속하면서도 은밀했다. 외부 인사들은 물론이고 외환은행 간부들조차 론스타의 진짜 속내를 몰랐다. 한국계 씨티증권 직원 스캇 오(한국명 오창민)의 e메일에 그 속내가 담겨 있었다.

 

 외환카드는 11월 17일 유동성 부족 사태를 맞게 될 거야. 주가가 계속 내려가게 하기 위해 전혀 도움을 주지 않을 거고. 그다음에는 외환은행이 공개매수나 합병을 할 거야. 이런 절차는 매우 빠르게 진행될 예정이야. 문제는 외환은행 집행부가 이런 것들에 대해 전혀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야. 이거 재미있군(This is fun). 

 

디데이 직전 론스타는 또 한 번의 깜짝 쇼를 했다. 11월 14일 금융감독원에 ‘대주주 지분 전액 감자, 소액주주 지분 20대 1 감자’를 골자로 하는 강제감자명령 신청을 한 것이다. 물론 당시 외환카드는 강제감자 요건에 해당하지 않아 즉각 반려됐지만 결과는 중요하지 않았다.

 

론스타는 반려 사실을 숨긴 채 신청서만 보여주는 방법으로 올림푸스를 뒤집어놨다. 외환카드 주가도 감자 신청 소식에 재차 곤두박질쳤다.

금융 당국 동원한 고압적 협상에 올림푸스 백기  

결국 올림푸스는 협상 테이블에 나오지 않을 수 없었다. 미국에서 급히 입국한 론스타 부회장 엘리스 쇼트와 올림푸스 본사 임원 다니엘 민츠가 11월 16일 마주 앉았다.

엘리스 쇼트 론스타 부회장(왼쪽)이 2006년 4월 기자회견장에서 존 그레이켄 론스타 회장 (오른쪽)과 귀엣말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쇼트는 “외환카드에 한 푼도 지원할 수 없고, 증자도 할 수 없다. 곧 부도날 것”이라며 민츠를 고압적이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였다. 그러면서 “자산 가치가 전혀 없으니 올림푸스 보유 지분을 주당 630원에 팔아라”라고 터무니없는 덤핑 매각을 요구했다.

 

 

 지금 싸우고 있어! 엘리스는 올림푸스와 소액주주 지분을 전부 인수하는 대가로 (단돈) 100억원을 제시했어. (민츠가 그 말을 듣고) 일어나서 나가버렸어! (스캇 오의 e메일 중) 

 

17, 18일의 협상도 별반 다르지 않았다. 분수령은 19일이었다. 유동성 고갈로 외환카드 부도 가능성이 제기되던 날이었다. 애가 탄 금감원은 이날 새벽 “내일까지 진척이 없으면 직접 개입하겠다”고 경고했다. 외환카드는 그날 현금서비스 중지라는 극약 처방까지 쓴 끝에 겨우 하루를 더 연명했다.

 

20일 0시 무렵 금감원 감독정책국장 윤용로가 민츠와 허용학을 불렀다. “론스타의 최종 제시 가액이 주당 5030원(11월 19일 종가)이니 받아들이든지, 부도내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라.” 올림푸스는 결국 오전 6시에 백기를 들었다.

합병으로 주가 오를라…감자 언급하며 주가조작 공모 

올림푸스의 투항이 사실상 명백해진 19일 오후 론스타와 씨티증권 핵심 인사들이 조선호텔 커피숍에 모였다. 그런데 잔치 분위기가 아니었다. 누군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

론스타는 웨스틴조선호텔 커피숍에서 주가조작 모의를 했다. 사진 웨스틴조선호텔

 

“합병 사실만 발표하면 외환카드 주가가 오르고 주식매수청구권 가격도 같이 올라 론스타에 손해다.”

합병 발표가 외환카드에 새 호재로 작용해 주가를 밀어 올리면 그동안의 ‘노고’가 ‘도로아미타불’이 된다는 얘기였다.

이윽고 엘리스 쇼트 또는 스티븐 리로 추정되는 누군가의 입에서 답이 나왔다.

 

 주식매수청구권 가격 상승을 막기 위해 ‘외환카드에 대한 감자를 고려한다’고 발표하면 어떨까. 외환은행과 카드의 합병 기준 시점도 늦추자. 

스캇 오가 김앤장에 문제의 e메일을 보낸 건 커피숍 회동 직후였다. 이 e메일은 이후 핵심적인 물증이 된다.

외환카드 주가조작 사건 1심 판결문에 담긴 문제의 e메일 내용. BR은 스캇 오, CN은 김앤장 변호사, J는 외환카드다.

 

스캇 오는 이에 대해 “합병 전에 감자를 발표해 주가를 떨어뜨려 주식매수청구권 가격을 하락시키고, 주가가 내려갈 시간을 벌기 위해 외환카드의 합병 결의 이사회를 뒤로 미루는 것의 법률적 문제점을 자문해 달라는 취지였다. e메일 속 ‘capital reduction’(감자)은 ‘감자 사실을 시장에 알리는 것’을 암시(imply)한다”고 진술, 증언했다.

 

커피숍 회동 내용은 이튿날인 11월20일 외환은행 이사회에서 더욱 구체화했고, 그다음 날 기자회견에서 현실화했다. 론스타는 20일의 이사회 내용이 새나가지 않도록 보안에 극도로 신경을 썼다. 참가자들에게 녹음 금지 경고까지 했다.

그런데 그 이사회 내용은 토씨 하나, 아니 숨소리 하나까지 빠짐없이 상세히 녹음돼 있었다. 어찌 된 일일까. 한동훈의 천군만마가 된 이사회 현장 녹음테이프의 비밀과 ‘숨은 영웅’의 이야기는 다음 회에 이어진다.

 

에디터

  • 박진석

    관심

    중앙일보 기획취재담당

    kailas@joongang.co.kr
    먼 길 돌아 다시 서초동 글을 쓰게 됐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 이영근

    관심

    중앙일보 기자

     

    • cjh8**** 2023.06.22  20:49

      ㅋㅋㅋ용비어천가네...한덩훈 대통 만들기 들어갔나??아직 윤통 4년 남았다 깝치지들 마라

      좋아요111화나요392
       
    • tksk**** 2023.06.22  16:54

      론스타 한테 넘기고막대한 손실수사해서 제살만 깍았네

      좋아요58화나요238
       
    • blue**** 2023.06.22  13:39

      삼성 현대보다 일산 외국산이 우수한데 제품이 애국심으로 국내산 쓰라고 폭력을 쓰고 주인이 전라도 공산주의인지도 모르고 일제고사라고 일제고사가 국영수 우수하지 따라갈 생각않고 그저 반일 국내고사가 언제부터 물수능 이였나

      좋아요18화나요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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