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도 한 것, 韓이 왜 못하나" 이병철 반도체, 시작은 이랬다
업데이트 2022.06.06 18:53
‘우리 회사 일본인 엔지니어가 한국 삼성으로 반도체 강의를 갔는데 한 직원이 중간에 벌떡 일어서 강의를 들었다고 한다. 앉아서 들으라고 했더니 그 직원이 나중에 항의 섞인 푸념을 늘어놓더란다. 강의 전에 군사 훈련을 받고 와서 너무 피곤하고 졸리다는 거였다. 그만큼 힘든 시절이었고, 그런데도 다들 정말 열심이었다.’
남북 간 긴장 상태가 계속되고 있던 1980년대 초·중반. 반도체 사업을 갓 시작하려던 삼성에서 벌어진 일을 하마다 시게타카(濱田成高·98) 박사는 이렇게 회고했다.
30년 연속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 1위의 ‘삼성’을 아는 사람은 많아도 삼성의 반도체, 그 시작을 기억하는 사람은 흔치 않다. 삼성 창업주 고(故) 이병철 회장의 반도체 고문으로 활약한 하마다 박사를 지난 달 31일 도쿄(東京)도 히가시야마토(東大和)시 자택에서 만났다. 하마다 박사는 “반도체 산업에서 한국이 일본을 앞선 건 멀리 보고 결단하는 리더가 있었기 때문”이라며 “지금 일본에 필요한 건 이병철 회장 같은 리더”라고 말했다.
지난달 31일 일본 도쿄도 히가시야마토시 자택에서 삼성 반도체 시작을 알린 64K D램 개발 성공(1983년) 기념품을 들어 보이는 하마다 시게타카 박사.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64K D램과 이병철 회장
조용한 주택가에 있는 그의 집에 들어서자 거실 한 쪽에 놓인 호암(湖巖) 이병철 회장 자서전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 회장의 친필 사인이 담긴 책이다. 하마다 박사는 삼성의 반도체 사업 초기, 삼성에 많은 영향을 준 인물로 ‘이병철 회장의 멘토’, ‘삼성 반도체의 숨은 조력자’로 꼽힌다.
이 회장과의 첫 만남은 1980년대 초반 도쿄에 있는 삼성 사무실에서였다. 도쿄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NTT에서 일하던 하마다 박사는 NTT가 반도체 기술 수출을 위해 만든 회사인 엔텍에서 전무로 일하며 삼성 직원들에게 기술 강의를 했다. 그 과정에서 이 회장과도 가까워지게 됐는데 “한국 경제를 훌륭하게 만들고 싶다”는 열정과 인품에 끌렸다고 했다.
“회장님과는 세세한 기술에 대한 것이 아니라, 앞으로 세계가 어떻게 될지에 대한 대화를 많이 나눴습니다. 그때 이 회장님이 이렇게 말했어요. ‘한국인은 일본 사람과 많이 닮았다. 일본인이 이룬 것은 한국인도 반드시 할 수 있다. 그래서 반도체 기술을 도입하고 싶다’고요.”
그는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사업에 대해 “깊이 생각하고 아낌없이 투자한다는 인상을 받았다”며 “항상 미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여러 산업에 반도체가 사용되리라는 점을 짐작하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하마다 박사가 한국에 방문할 때면 이병철 삼성 회장은 전용 헬기를 내어주곤 했다. 함께 구미 공장을 방문하기도 했는데 "세상에서 제일 안전한 헬기"라는 설명을 해주기도 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삼성 반도체 성공할 줄 알았다”
막대한 생산 시설이 필요한 반도체 사업에 대한 투자는 이렇게 이뤄졌다. 이 회장은 1983년 2월 반도체 사업 구상을 발표했다. 3년 안에 망한다는 우려에도 거대 자금이 투입됐고, 그해 12월 삼성은 64K D램 반도체 개발을 알렸다. 세계에서 세 번째였다.
인터뷰를 하던 하마다 박사는 거실에 있던 64K D램을 꺼내 보였다. 상자에는 금박으로 ‘삼성반도체통신’이란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삼성은 이후 1992년 각종 정보를 저장하는 메모리 반도체인 D램 시장에서 1위를 찍은 뒤 내리 30년 정상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하마다 박사는 삼성의 반도체 성공을 예견했다고 했다. 연구소 차원의 기술과 실제 공장에서 이뤄지는 ‘양산’ 사이엔 큰 차이가 존재하는데 삼성은 이미 실패의 쓴맛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 삼성전자 부장이 하루에 TV 4000대를 만들었는데 전부 불량이 났다며 괴로워하더라구요. 양산이란 그만큼 어려운 것입니다. 이런 아픔을 경험했다면 반도체도 해낼 수 있겠다, 일본을 뛰어넘을 수도 있겠다고 상상했습니다. 그리고 예상보다 빨리 일본을 추월했고요.”
일본 반도체는 왜 밀려났나
NTT 연구소에서 시작해 삼성에 반도체 기술을 수출까지 하마다 박사의 이야기는 한시간 넘게 이어졌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하마다 박사는 도시바나 히타치 등 한때 한국에 반도체 기술을 가르쳐 준 일본 기업들이 되레 시장에서 밀려난 이유도 ‘리더십 때문’이라고 했다. 신중히 판단하고 과감히 결정하되, 책임지고 대규모 투자를 할 수 있는 지도자가 있어야 하다는 의미다. 정부 자금으로 대만의 TSMC 신규 공장을 구마모토(熊本)에 유치하는 등 반도체 강국으로의 부활을 꿈꾸는 현재의 일본에 “이병철 회장 같은 사람이 있었으면 한다”고도 했다.
한·일 반도체 협력에 대해선 “기술이 무섭게 빠른 속도로 변하고 있고,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이 치고 올라오는 상황에서 한·일이 싸울 때가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 앞으로의 반도체 시장은 삼성이 주도하는 메모리가 아닌 ‘시스템(시스템LSI)’이 된다고도 했다. “지금까지처럼 단순히 메모리를 싸게 만들면 되는 것이 아니라, 인공지능(AI) 시대에 발맞춰 시스템적인 요구를 반도체에 빨리 적용하는 곳이 승자가 된다”는 설명이다.
※삼성전자 역시 메모리가 아닌 비(非)메모리 반도체인 시스템LSI 사업 확대를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발표한 바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반도체 설계 회사들이 맡긴 반도체를 위탁생산(파운더리)하는 시장에선 대만의 TSMC가 독보적인 시장 1위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은 오는 2030년까지 이 분야에서 1위를 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지난 2019년 일본이 한국에 대한 반도체 소재 수출 규제를 발표하자 “한·미·일이 분업해 발전시켜 온 ‘반도체 공동체’를 깨는 것은 죄”라며 일본의 조치를 비판했던 하마다 박사는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고 했다. 단 반도체의 ‘한·일 협력’은 협력을 위한 협력이 아닌 상호 성장과 경쟁을 위한 협력이 돼야 한다고 말했다.
상대가 먼저 개발한 기술을 따라가려 노력할 것이 아니라 상대가 앞선 기술은 과감히 도입해 새로운 단계로 발전시키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중국과는 협력이 힘든 만큼 같은 정치적 토대를 가진 한국과 일본이 서로를 성장시키며 미래로 나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저는 지금의 삼성에 대해 자세하게 모르니 일반적인 조언을 하려고 합니다. 우선 엄청나게 폭넓은 정보를 모아야 합니다. 리더는 많은 사람들을 만나 어떤 기술이 앞으로의 미래를 주도할지 끊임없이 듣고 방향을 찾아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결정을 하는 데 몇 년이 걸리더라도요. 이병철 회장님은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의견을 물어보셨어요. 반도체에 상당한 돈을 투자해도 된다는 확신이 들때까지요. 그러면서 어떤 의미에서 스스로 반도체 전문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반도체가 앞으로의 세상에서 어떻게 쓰여질지 가장 잘 알았다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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