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ibetan Arts

티베트 불교의 생불

류지미 2022. 6. 13. 13:53

티베트 불교의 생불

티베트 불교의 생불이 중국을 탈출하다

석은혜

1. 들어가는 말

1999년 12월 28일, 티베트 불교의 생불(살아있는 부처가)인 17대 카르마파(噶瑪巴; 중국어로는 까마바) 우기엔 트린리 도르제(14세)가 중국을 탈출해 인도에 머물고 있어 중국은 파룬궁(法輪功)의 중난하이(中南海) 시위 이후 새로운 긴장국면에 들어섰다.


현재 티베트 불교에는 생불이 세 명 있다. 첫 번째는 티베트 정치, 종교 최고의 지도자이며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達賴; 중국어로는 다라이) 라마(喇嘛)로 그는 관세음보살의 화신으로 여겨지고 있다. 두 번째 생불은 판첸(班禪; 중국어로는 빤찬) 라마 로 그는 아미타불의 화신으로 여겨지고 있고 서열 두 번째 정신적 지도자이다. 세 번 째 생불은 카르마파로 서열 세 번째 정신적 지도자인데, 이 17대 카르마파가 자신이 거주하던, 라싸(拉薩)시에서 27km 떨어진 곳에 있는 추부쓰(楚布寺)에서 탈출하여 인도로 간 것이다.


이 사건의 이해를 돕기 위해 먼저 티베트 불교역사와 티베트 불교의 교파, 활불전세(活佛轉世) 제도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또한 카르마파의 탈출 경위와 인도 정부의 망명 허락 여부, 이 사건이 중국 기독교인들과 선교에 미치는 영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2. 티베트 불교의 역사와 교파


티베트 민족은 원래 매우 공격적이고 호전적이어서 763년엔 중국의 수도를 점령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불교 수행에 몰입하면서 빈번한 종교활동에서의 거대한 낭비와 함께 티베트 사회 생산력 발전을 저해시켜 국력이 위축되었고, 결국 1950년 중국의 침략을 받아 1951년에 중국의 자치구로 편입되었다. 따라는 티베트는 현재 영토상으로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해 있으며, 정식 행정구역 명(名)은 시짱자치구(西藏自治區)이다. 티베트에 살고 있는 티베트인은 ‘짱족(藏族)’으로 불리며 공식적으로 중국의 55개 소수민족 가운데 하나이다.


티베트인들이 중국의 소수민족인 몽고족, 만주족 등과는 달리 중국에 완전히 동화되지 않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그들이 가지고 있는 종교 때문이다. 티베트인들이 신봉해 온 종교는 ‘라마교(喇嘛敎)’이다. ‘라마’란 장어에서 음역해 온 것으로 그 뜻은 ‘스승’ 혹은 ‘윗사람’이란 의미인데, 처음에는 절간의 우두머리나, 고승들을 ‘라마’라고 부르다가 후에는 모든 승려들을 ‘라마’라고 불렀다. 라마교는 짱족들의 불교에 대한 속칭으로 이것을 ‘티베트 불교’ 또는 ‘장전(藏傳)불교’라고도 부른다. 본 글에서는 라마교를 ‘티베트 불교’라고 칭하겠다.


불교는 AD 7세기경에 중국의 내지 또는 인도로부터 티베트에 수입되었다. 불교는 티베트에 수입된 후 청장(靑藏)고원의 특수한 역사적 환경 속에서 티베트 고유종교인 본교(本敎)와 장기간 동안 서로 영향을 주기도 하고 대립되기도 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융합되면서 AD 10세기경에 와서 독특한 지방특색을 띤 티베트 불교로 형성되었다. 이 티베트 불교에는 4대 교파가 있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1) 거루파(格魯派): ‘거루’는 ‘계율을 잘 지킨다’는 뜻이다. 이 교파는 승려들이 계율을 엄격히 지키게 하고, 불경 공부를 착실하게 순서에 따라하게 하여 종교 조직체를 강화하였기에 ‘거루파’라고 불렀다. 이 교파의 라마들은 누런 모자를 쓰고 누런 옷을 입었기에 ‘황교(黃敎)’라고도 불렀다. 거루파는 티베트 불교 중 제일 늦게 형성된 교파이다. 이 교파는 쫑카바(宗喀巴)라는 라마가 종교 개혁운동에 기초하여 세운 것이다. 이 교파에서는 라마가 혼인하는 것을 금지하기에 그 우두머리들이 ‘까쥐파’에서 창시한 활불전세의 승계법을 가져다가 우두머리를 승계하고 있다. 이 교파는 청조의 순치(順治) 황제 때 시작하여 티베트에서의 통치 지위를 확립했다. 달라이 라마 및 판첸 라마 두 생불의 계통이다.


2) 까쥐파(噶擧派): ‘까쥐’는 티베트어에서 ‘입으로 전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이 교파는 불법을 구두로 전하는 것을 중요시하기 때문에 경전은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그래서 ‘까쥐파’라고 불렀다. 일설에 의하면 이 교파의 창시자가 불법을 닦을 때 흰옷을 입었기에 ‘백교(白敎)’라고도 불렀다. 이 교파는 샹바까쥐(香巴噶擧)와 타부까쥐(塔布噶擧)의 두 계통이 있었다. 그러나 전자는 15세기에 쇠퇴하였고, 후자는 4대8소(四大八小) 지파로 나누어졌다. 까마단싸스(噶瑪丹薩寺)와 추부쓰(楚布寺)를 주요사원으로 하는 카르마 까쥐파는 4대(四大) 지파의 머리이며, 이들은 흑모계(黑帽系)와 홍모계(紅帽系)로 나뉘었다. 카르마파는 흑모계의 우두머리 생불이다. 이 교파는 티베트 불교에서 제일 먼저 ‘활불전세’ 제도를 실행했다.


3) 닝마파(寧瑪波): 닝마’는 ‘오래되었다’는 뜻이다. 이 교파는 티베트 불교 중 역사가 가장 긴 교파로, 그 당시 새로운 불법을 숭상하는 기타 교파와 대립되었기에 낡은 교파, 즉 ‘닝마파’라고 불렀다. 그들은 모두 붉은 모자를 썼기 때문에 ‘홍모파’ 또는 ‘홍교(紅敎)’라고도 불린다. 닝마파는 티베트에서 널리 알려져 있고 그 영향도 크지만 안정되고 강대한 종교세력 집단을 형성한 적은 없다.


4) 싸자파(薩迦波): ‘싸자’는 지명인데 이 교파의 주요한 사찰이 티베트의 싸자 지역에 세워졌기에 ‘싸자파’ 라고 부른 것이다. 이 교파에 속한 사람들이 벽을 홍, 백, 남 세 가지로 칠하기에 ‘화교(花敎)’라고도 불렀다. 이 교파의 승려들은 혼인하여 자식을 둘 수 있었고, 절간의 주지의 지위를 가족에게 전승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이 교파의 세력은 원나라 때 가장 강했다.


티베트 불교의 이 4교파 중 가장 큰 세력은 거루파, 까쥐파 순이며 현재 4대 교파의 지도자들 가운데 3명이 인도로 망명했다.

3. 티베트 불교의 활불전세 제도


티베트의 특징 중 하나는 ‘활불전세제(活佛轉世制)’인데, 이 제도는 ‘까쥐파’에서 처음 실행하였고, 나중에 거루파, 닝마파도 이 제도를 도입하여 사용하고 있다. ‘활불(活佛)’는 육신(肉身)을 의미하는 것으로 ‘생불(生佛)’을 말한다. ‘활불전세’란 명망 있는 고위급 승려들이 죽은 후, 그가 다른 사람의 몸을 빌어 ‘전세(轉世: 다시 태어남)’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직위와 권력을 계승할 때 전임자가 다시 환생했다고 인정되는 소년에게 그 자리를 승계 한다.


현재 가장 태표적인 활불(생불)이 달라이 라마 14대이며, 그가 1959년 인도로 망명하자 지난 40년 동안 무려 13만 명의 티베트인들이 그를 따라 그의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로 갔다. 인도는 그 동안 이들을 난민으로 인정해 수용해 왔다. 달라이 라마는 그 동안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 40여 개의 국가와 지역을 순회하며 정부와 의회 지도자, 민간 단체 지도자들에게 티베트가 독립국가라는 것과 티베트인에 대한 지원을 요청했다. 이런 그의 노력은 세계 평화 수호자로서 이미지를 부각시켰고, 1989년 10월에는 노벨 평화상을 받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 달라이 라마는 이번 4월 20일 한국을 방문하여 서울대학에서 강연할 계획을 가지고 있기도 하다.


달라이 라마가 인도로 망명하자 중국 당국은 티베트에 남아있던 제2의 지도자 판첸 라마 10대로 중국의 티베트 정책을 지지케 하여 달라이 라마와 대치시켜 왔다. 이 판첸 라마 10대가 1989년 1월 28일에 심장마비를 일으켜 51세의 나이로 죽자 달라이 라마는 1995년 5월 14일 인도에서 찾아낸 6살의 어린이 덴둔 초키 니마를 판첸 라마 후계자로 지명 발표했다. 이에 분노한 중국 정부는 달라이 라마가 선정한 판첸 라마는 적법성이 없다는 글을 언론에 발표하고, 1995년 12월에 6살의 어린이 쟈인카인 노부를 다른 판첸 라마로 옹립, 판첸라마 11대가 둘이 생겨났다. 달라이 라마가 선정한 데둔 초키 니마는 부모와 헤어진 채 중국으로 옮겨왔으나 중국 당국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하다가, 행방불명되어 지금까지 그의 생존을 알 수 없다. 1999년 4월 25일은 11대 판첸 라마의 10살 생일이며, 5월 17일은 그가 행방불법 된지 4년째 되는 날이다. 인권 단체들은 그를 ‘가장 나이 어린 정치 희생자’로 부각시키고 있다.


‘어용 판첸 라마’로는 티베트인들의 정신적 집약이 이루어지지 않자, 중국 정부는 제3의 지도자 카르마파 17대를 부각시켜 왔다. 그러나 카르마파가 그 신망마저 업고 히말라야를 넘어 인도로 간 것이다. 제17대 카르마파가 인도로 가자 중국은 지난 1월 16일 서둘러 제7대 레팅 라마(닝마파) 승계식을 했다. 1997년 2월 6대 레팅 라마가 사망한 이후 공석이었던 자리를 두 살배기 어린이에게 승계한 것이다. 이 행사가 이루어진 조캉사원(大昭寺)에 베이징과 시짱자치구의 당, 정 간부들이 대거 참석한 것을 보면 티베트 불교도들의 자발적인 선출이 아니라 중국의 입김이 강하게 작용했음을 시사해 준다. 인도 다람살라에 있는 티베트 망명정부도 중국이 제7대 생불 승계식을 서두른 것은 카르마파 탈출을 희석시키려는 조치라며 정신적 지도자인 달라이 라마의 승인이 없는 한 새 라마의 정통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이번 레팅 라마 승계는 결국 티베트인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는커녕 반감만 키우고, 껄끄럽던 망명정부와의 관계도 한층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했다.


한편 이날 7대 라마로 등극한 소이남 푼콕은 한 시골 마을에서 운전사 아버지와 평범한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것으로 알려졌다. 티베트 불교의 고승들은 중국 국무원의 종교국과 시짱자치구 당국의 의뢰를 받고 지난 1년여 동안 6대 라마의 화신을 찾아왔다. 고승들은 자치구 내 8개 현(縣) 31개 향(鄕), 진(鎭)에서 올라온 7백여 명의 후보를 상대로 각종 검증 과정을 거쳤다. 대표적인 것은 후보 소년을 상대로 전임자의 어린 시절 소지품과 비슷한 물건을 섞어 내어놓고, 후보 소년이 전임자의 것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고 다른 것은 쳐다보지 않는 신통력을 발휘하면 생불로 결정된다고 한다.

 

第十七世噶瑪巴鄔金欽列多傑 (Ogyen Trinley Dorje 1985- )

1985年,法王誕生在東藏拉拓(Lhatok)區一個遊牧家庭的帳蓬中,母親才懷他的時候,曾經有奇異的夢。他出生時有一隻杜鵑鳥飛到他們的帳蓬上,同時在山谷中很多人都聽到神秘的法螺聲音。

 

Apo Gaga born 26 June 1985 in Lhatok Township, Chamdo County, Tibet

 

Ogyen Trinley Dorje (Tibetan: ཨོ་རྒྱན་འཕྲིན་ལས་རྡོ་རྗེ།, Wylie: O-rgyan 'Phrin-las Rdo-rje, Chinese: 鄔金欽列多傑; born 26 June 1985), also written as Urgyen Trinley Dorje (Wylie: U-rgyan 'Phrin-las Rdo-rje). Ogyen Trinley Dorje has been recognized and enthroned as the 17th Gyalwang Karmapa.

The Karmapa is head of the Karma Kagyu school, the primary sub-school of the Kagyu school, one of the four main schools of Tibetan Buddhism. Ogyen Trinley Dorje escaped from Chinese occupied Tibet in 1999, relocated to India in 2000, and is currently traveling and residing in the United States.

 

'카르마 카규파(Karma Kagyu)'는 성명을 통해 " 2017년 3월 25일 17대 지도자인 카르마파 타에 도르제(33)가 어린 시절 친구인 린첸 양좀(36)과 결혼했다"고 발표했다.

카르마 카규파는 티베트 망명정부 지도자 달라이 라마가 속한 겔룩파보다 200년 이상 앞선 티베트 불교에서 가장 오래된 종파다. 티베트 중부지역에서 출생한 도르제는 지난 1994년 11살 때 17대 카르마파로 추대됐다.



4. 17대 카르마파의 인도 망명


1999년 12월 28일, 17대 카르마파는 자신이 머물던 추부쓰를 탈출하면서 1통의 편지를 남겼다. 자신이 떠나는 것은 16대 카르마파가 남겼던 정통권위를 상징하는 검은모자와 법기(法器: 불교의식에 쓰는 그릇)를 가지러 가는 것이며, 절대로 국가와 민족 그리고 사찰과 영도자를 배반하는 것이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 편지를 남겨놓고 여승인 누나(24세) 외에 5명의 수행원을 거느리고 40년 전 달라이 라마가 걸어서 넘었던 히말라야 산맥을 횡단, 네팔과 인도북부를 거쳐 2000년 1월 5일 달라이 라마가 머물고 있는 다람살라에 도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정부 당국은 1992년 카르마파를 제3의 정신적 지도자로 승인했었다(달라이 라마도 인정함). 중국 정부는 그를 티베트 불교에 대한 관용정책의 상징으로 이용, 티베트의 종교 자유를 외쳐왔다. 그러나 그의 이번 탈출은 검은모자와 법기를 가지러 간 것이 아니라 중국 당국의 종교정책에 대한 티베트인의 공개적인 반발로 여겨지고 있어 중국 당국을 매우 당혹스럽게 하고 있다.


이 사건은 국제사회의 매우 큰 관심거리가 되었으며, 베이징(北京) 당국은 현재 이 사건의 전말에 대하여 상세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베이징의 이름을 밝히기를 원치 않는 한 관원은 이번 사건은 치밀한 계획아래 이루어진 것으로 만약 해외에서 도움을 주지 않았다면 성공하기가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말했다. 따라서 그는 미국 정보국(CIA)이 이 사건의 중요한 계획자일수도 있다는 것에 대해 배제하지 않았다. 다른 정보에 의하면 이번 사건은 1998년부터 계획된 것이며, 17대 카르마파의 탈출노선도 해외에서 말하는 대로 1,400km를 보행하고, 눈으로 봉쇄되어 있는 희말라야 산맥을 횡단한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러나 카르마파가 핼기를 이용했는지 아니면 육로를 이용했는지에 대해서는 증명하지 못했다.


현재 중국을 탈출하여 인도에 도착한 카르마파 17대는 달라이 라마의 망명처인 다람살라에서 동북쪽으로 17km 떨어진 시드바리의 규토 수도원에서 인도 경찰과 달라이 라마의 경호원 50여 명의 보호를 받으면서 신도들을 접견하고 있다. 달라이 라마는 인도에 머물고 있는 17대 카르마파의 인도 망명을 허용해 줄 것을 인도 정부에 요청했다. 달라이 라마는 인도의 아탈 베하리 바지파이 총리에게 보낸 서한에서 도르제가 전통양식에 따른 카르마파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교사들이 있는 인도에 머물러야 한다면서 망명허용을 촉구했다고 전한다. 또한 티베트지지 단체들도 인도 정부에게 17대 카르마파의 인도 정치적 망명을 허용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 외교부 대변인인 주방자오(朱邦造)는 인도가 카르마파에게 정치적 망명을 허용하는 것은 상대방의 국내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중국․인도간 협정을 위협하는 것이라며 카르마파 문제를 다룰 때 중국과의 관계개선 약속을 지키도록 충고했다. 따라서 인도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악화를 우려해 도로제의 망명요청에 대한 최종 결정은 시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만약 인도 정부가 17대 카르마파의 망명을 허용하지 않을 경우 카르마파는 미국을 망명지로 선택할 가능성이 크다.

5. 중국 기독교와 선교에 미치는 영향


중국은 현재 각 종교와의 갈등으로 고민에 빠져있다. 사교(邪敎)로 규정한 파룽궁(法輪功)은 물론 카톨릭과 티베트 불교 등 중국이 인정하는 종교와의 불협화음도 잇따르고 있다.


중국은 지난해 말 파룬궁의 핵심 4인방에게 징역 18~7년을 선고했다. 그러나 이튿날 수십 명의 파룬궁 시위대가 천안문(天安門)에 등장해 경찰이 이들을 쫓고 있다. 지난 1월 6일에는 중국이 교황청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5명의 주교를 임명해 수교 협상이 논의되던 바티칸과의 관계가 얼어붙었고, 교황청의 실망스런 성명에 8백만 명의 중국 카톨릭 지하신도들은 동요하고 있다. 또한 티베트 불교의 생불 17대 카르마파가 라싸시의 추부쓰 절에서 탈출, 인도의 망명정부에 도착해 중국 당국에게 충격을 주었다. 중국은 파룬궁, 카톨릭, 티베트 불교에 의해 종교적 도전을 받고 있는데다가 미국이 1999년 12월 23일 중국을 세계의 종교탄압 5개국 중 하나로 지목한 바 있어 종교문제로 매우 긴장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매우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파룬궁을 사교(邪敎)로 규정하고 강력한 단속을 지속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관련자들을 사법 처리하고 있다. 그리고 교황청을 상대로 먼저 대만과 관계를 끊고 중국 내 카톨릭들에게 간섭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라고 압력을 넣고 있다. 티베트 불교 문제는 달라이 라마와의 대화 제의를 거부하고 중국이 옹립한 판첸라마를 앞세워 티베트 통치를 굳히고 있는 상태이다.


이러한 중국 정부 당국의 종교정책은 자연히 중국 기독교와 선교사역에도 그 영향이 미치고 있다. 정부가 인정하지 않는 불법집회 단속 강화로 중국 가정교회는 핍박을 받고 있다. 또한 외국선교단체와 선교사들의 종교활동에 대해서도 역시 민감한 반응을 보이고 있으며 중국 공안당국의 감시와 규제가 강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현재 중국 정부가 종교문제로 매우 긴장하고 있기 때문에 중국 선교사들은 선교활동을 하는데 있어서 각별한 주의와 지혜로운 처신이 필요하다.

< 참고 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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關慶寧 外, “雪國翻疑夢佛法無邊”,『亞洲週刊』, 2000.1.17-1.23
蒙憲, “六世熱振活佛繼位見玄機”,『亞洲週刊』, 2000.1.23-1.30
覃光廣 外 편저, 『중국소수민족 종교신앙』, 태학사
한윤숙, “티벳의 정치갈등과 티벳문제의 국제화”, 『중국교회와 선교』제5호,
중국복음선교회.
조선일보, 중일일보 등 각종 일간지 2000년 1월.
인터넷 자료: www.tibet.o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