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nderful World

성주에서 바라보는 가야산 만물상

류지미 2022. 7. 6. 18:28

嶺南의 石火星, 星州 伽倻山

 

[흥] 성주에서 바라보는 가야산 만물상

김태진 기자 novel@imaeil.com

매일신문 입력 2019-05-22 18:00:00 수정 2019-05-22 16:55:18

 

가야산 만물상으로 통하는 성주 백운동 코스
우주의 기운이 모이는 생명의 땅 세종대왕자 태실
전통마을의 풍경과 이야깃거리 풍성한 한개마을
한개마을 주변 분뇨 악취 처리는 풀어야할 숙제

상아덤에서 본 가야산 만물상. 보려는 대로 보여준다. 바위 틈이 빚어낸 절경은 금강산, 설악산에 뒤지지 않는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노랗게 물들었다. 한창 참외가 맛있을 때다. 30번 국도는 어딜 봐도 참외하우스다. 하우스 주변에 아무렇게나 내다버려진 불량 참외마저 예쁘다. 성주와 참외는 등치될 만큼 흡착돼 떨어질 줄 모른다. 대구에서 성주 가는 길 풍경이다. 온통 노랗게 풍요롭다.

 

참외의 본산이라 해도 부끄럽지 않을 이곳은 500여 년 전 우주의 기운이 모인다던 땅으로, 영남의 길지로 통했다. 업종이 체계적으로 정리돼 부동산업계가 일찌감치 자리잡았다면 핫플레이스였을 성주다.

태종, 세조, 단종의 태실이 있고 가야산이 뽐내는 극강의 경치 만물상이 있다. 마을이 문화재 덩어리인 한개마을도 빼놓지 못한다. 오밀조밀 몰려있다. 자동차로 20분 거리다.

◆가야산 만물상

가야산이란 이름을 가진 산은 전국에 2곳이다. 충남 예산과 성주다. 성주와 합천이 공유하는 산은 같은 산이다. 가장 높은 봉우리인 칠불봉(1432.4m)은 성주에 있고 실질적 정상으로 인식되는 상왕봉(1429.8m)은 합천에 있다. 두 봉우리 사이의 거리는 고작 200m다. 해발고도가 높다 해서 주봉이 되는 건 아니다. 소머리를 닮았다 해 우두봉(牛頭峰)으로 불리는 상왕봉이 주봉 대접을 받는다. 상왕봉이 합천에 있다보니, 무엇보다 해인사의 명성에 가야산이 묻어가다시피 해 합천 가야산이 더 익숙하다.

상아덤에서 본 가야산 만물상. 보려는 대로 보여준다. 바위 틈이 빚어낸 절경은 금강산, 설악산에 뒤지지 않는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그러나 가야산의 필살기 매력은 만물상이다. 통상의 가야산 등반코스는 성주 백운동에서 시작해 해인사 방면으로 마무리되는 이유다. 탁월한 풍광의 만물상은 성주에 있고 정적인 아름다움의 해인사는 합천에 있다. 서로 반씩 나눠가졌다.

 

보는 대로 보인다는 만물상이다. 각자의 배경지식, 살아온 역정에 따라 다른 모습으로 보인다. 심지어 비슷한 배경지식을 가진 사람들이 봐도 시시각각 변하니 말 다했다. 성주가 가야산의 맹주임을 강력하게 주장할 수 있는 근거는 만물상 덕이다. 가을의 해인사와 홍류동계곡의 대항마로 손색없다.

상아덤에서 본 가야산 만물상. 보려는 대로 보여준다. 바위 틈이 빚어낸 절경은 금강산, 설악산에 뒤지지 않는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만물상은 갈라진 바위틈이 만들어낸다. 깊거나 얕은 그 틈바구니에서 눈은 착시 현상을 즐긴다. 빈틈으로 각자 생의 굴곡을 넣어 보이는 대로 해석하는 것이다. 동심으로 돌아간 듯 창의적 상상이 꼬물거린다. 고생하신 어머니의 얼굴 주름이 떠오를지, 산전수전 인생고난의 손금을 펼쳐볼지. 만물상 감상법에 정석은 없다. 각자의 몫이다.

 

만물상은 오랫동안 통제구간이었다. 1972년 10월 가야산이 국립공원으로 지정되면서 통제됐다 38년 만인 2010년 개방됐다. 정작 가까이서 만물상을 살피니 풀이며 나무며 생의 의지들이 사이사이 박혀있다. 어느 틈에 정상을 바라보는 의지가 강해진다. 정상이 가까워지는 상아덤에선 산휘파람새 소리가 개선가처럼 들린다. 다 왔으니 힘내라는 리듬감에 숨넘어간다. 마음먹은 대로 보였고 마음먹은 대로 들렸다.

가야산 만물상의 절경을 최대치로 끌어올리는 관람대는 상아덤이다. 상아덤 역시 김수로왕과 연관된 가야의 이야기를 전설처럼 품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성주 백운동에서 출발하는 만물상 코스 구간은 3㎞ 남짓이다. 까짓것 3km쯤이야 싶지만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매긴 등반 난이도는 '매우 어려움'이었다. 다섯 단계의 난이도 중 최고 등급이다. 백운암지를 거쳐 서성재에 올라 상아덤으로 내려가는 길을 택해도 거리는 비슷하다. 서성재에서 상아덤으로 들어가는 길 앞에 '안전사고 다발구간, 심장돌연사 골절·염좌 등 사망 2건, 부상 등 25건'이라 친절하고 자세하게 적혀있다. 매우 어려운 코스니 마음 단단히 먹으라는 경고로 와 닿는다. 서성재로 올라 만물상을 본 뒤 다시 서성재 방면으로 하산하라는 명령에 진배없다.

 

백운동을 기점으로 등산에 나서면 반드시 지나는 곳이 가야산야생화식물원이다. 하산하며 들러야지 했던 곳인데 대부분 다음을 기약하며 지나친다는 말은 정설로 들렸다. 만물상을 본 눈인데 뭔들 감동적일까. 지치기도 지쳤을 터. 그러나 소소하게 둘러볼 만하다. 생태박물관 느낌이다. 야생화를 주제로 성주군이 야심차게 조성한 전문식물원이다. 620여 종 야생화와 나무가 있다.

선석산에 있는 세종대왕자태실. 이끼가 비석 음각을 뒤덮을 만큼 세월이 흘렀어도 생명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세종대왕자태실

30번 국도는 물론이거니와 모세혈관처럼 뻗은 지방도에도 참외하우스가 도열해 있다. 어딜 가든 참외다. 산행으로 지친 몸을 참외 몇 개로 달래려다 한 박스를 차에 싣는다. 평생에 꼽힐, 참 잘한 충동구매다. 성주가 참외 천지가 될 줄 500여 년 전엔 상상이나 했을까.

 

성주는 태실(胎室)의 고장이다. 성주군 용암면 조곡산에 태종의 태, 가천면 법림산에 단종의 태, 그리고 선석산에 세조의 태를 비롯한 세종의 아들들, 그러니까 세종대왕자의 태가 묻혀있다.

 

세종은 당시 영의정 하륜에게 태실지를 알아보라는 특명을 내렸다. 하륜은 성주를 길지로 언급한다. 1438년부터 4년간 적장자 문종을 제외한 18명의 왕자와 왕세손인 단종 태실 등 19기가 이곳에 안장됐다.

 

막상 찾아와 보면 어떻게 이런 데를 찾아냈을까 싶다. 별세계다. 사실 생물학적으로 보자면 괴이하기 그지없는 곳이다. 탯줄과 부속물을 씻어서 항아리에 담아 매장한 것이다. 태실은 시신을 매장한 묘와 성격이 다르다. 묘가 생의 마무리라면 태실은 태어남의 상징이다.

 

생과 사의 오묘한 원리가 이해되든 안 되든 이곳은 기가 모여 있다는 길지다. 차분해지면서 멍 때리는 것도 당연하다. 충전중이라는 신호다. 이렇게 좋은 땅을 태에 내어줄 정도라면 태에 대한 의전은 특별한 것이라 봐야한다.

선석산에 있는 세종대왕자태실. 이끼가 비석 음각을 뒤덮을 만큼 세월이 흘렀어도 생명의 상징으로 남아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태실 구조는 복잡하다. 태항아리를 보관하는 석함, 개석은 땅에 묻혀 있고 땅 위로는 기단석, 앙련, 중동석, 개첨석, 복련 등으로 구성돼 있다. 예조가 담당했다. 태를 묻는 데도 예법과 규칙이 있었단 얘기다. 국가의 좋은 기운과 미래를 위해 리더의 복을 기원하는 의미로 해석한다. 아이들의 꿈을 담아 20년 뒤, 30년 뒤 풀어본다는 타임캡슐도 이렇게까지 묻나 되짚어본다. 하긴 17세기 떠오르던 태양 여진족, 후금이 쳐들어왔을 때도 지엄한 예법을 가르치려 했다. 조선의 예조답다.

태봉을 보면 5개의 태실은 사각형의 기단석 외에 석물이 없다. 수양대군(세조)의 즉위에 반대한 다섯 왕자(안평대군, 금성대군, 화의군, 한남군, 영풍군)의 태실이다. 단종 복위 역모를 꾀했다는 이유를 댔다. '역모'는 가장 무서운 대역죄였다.

세조 태실과 가장 멀리 떨어진 곳에 단종의 왕세손 시절 태실이 멀쩡하다. 왕위에 오른 뒤 태실을 가천면 법림산으로 이봉했기 때문이었다. 진짜 태실은 사라졌다. 세조는 단종과 관계된 흔적을 쫓아다니며 파헤쳤다. 세조는 정말이지 성질대로 다 했다.

 

반면 세조 태실 앞엔 거북받침돌 위에 위엄을 세운다는 가봉비(加封碑)가 있다. 스스로의 시대에 스스로를 높여 놨다. 아비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나오는 한숨이 길다. 성군이라 칭송받는 세종도 자식의 일에는 도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 꼴을 보자고 여기다들 모아놓은 줄 아니'

마을 전체가 중요문화재인 성주 한개마을. 관람객이 한개마을을 거닐고 있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한개마을

세종대왕자 태실에서 13km 정도 떨어진 가까운 곳에 '한개마을'이라고 있다. 마을 전체가 중요문화재다. 세종과 인연이 있는 마을이다. 세종 때 진주목사를 역임한 이우가 들어와 조성한 마을이다. 560여 년을 내려온 성산이씨 집성촌이다. 6채의 재실을 포함한 75채의 집은 옛 모습을 잃지 않고 비교적 잘 보존돼 있다. 영남의 대표적인 길지 중 하나로 꼽혔다.

 

고택들이 남에서 북으로 차차 올라가는 형태로 자리잡고 있다. 요즘 눈으로 봐도 배치가 훌륭하다. 북쪽에 마을을 감싸는 영취산(靈鷲山·332m)이 버티고 있다. 마을 이름은 예전 백천에 있었던 한개나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크다는 뜻의 '한'(한강, 한밭과 같은 용례), 개울이나 나루를 뜻하는 '개'를 합친 말로 '큰나루터마을'이란 뜻의 순우리말이다. 산을 배경삼아 신록이 도드라진다. 마을 구석구석으로 꽃들이 화려하고 대나무가 멋스럽다.

 

이 마을은 홍문관 교리를 배출한 집이라는 교리댁, 사도세자와 인연이 있는 '북비(北扉)'로 알려진 응와고택, 이수빈 전 삼성생명 회장의 생가로 유명한 월곡댁, 60년 전 영화에도 등장했던 한주정사 등 전통마을의 풍취와 멋스러움이 넘치고 이야깃거리도 풍부한 곳이나 그에 대한 설명을 차치하고 한개마을의 존폐와 관계된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마을에 내려서자마자 퀴퀴한 악취가 코를 찌른다. 하필 두엄을 친 날에 마을을 찾았나보다 싶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관광안내소에서 광대바위 옆으로 가서 신도비를 보고, 북비를 꼭 보고, 마을을 둘러보라 일러주고 얼른 문을 닫았던 게 떠올랐다.

성주 한개마을의 고택 중 하나인 하회댁. 안동 하회마을에서 시집온 며느리가 살던 곳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채근 기자 mincho@imaeil.com

마을을 둘러보는 내내 거름 냄새가 가시질 않는다. 거름 냄새치고는 꽤 진하고 불쾌하다 싶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머리가 아파올 정도로 강한 악취다. 코는 우리 신체 기관에서 가장 먼저 피로감을 느껴 암내, 발냄새 등에 곧 적응하게 된다던 과학 학습 내용에 수정이 불가피해 보였다. 코, 후각세포는 끊임없이 경고 신호로 뇌를 울렸다. 골이 띵했다.

북비를 꼭 보라는 말은 뒷전이었다. 사도세자의 이야기며,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오직 마을을 얼른 벗어나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다시 문화관광해설사들에게 찾아가 물었다. 친절이 얼굴에 밴 해설사들도 울상으로 바뀐다. 눈은 마을 맞은편 돈사를 향했다. 그들도 코에서 냄새가 배서 빠지질 않는다고 했다. 비오기 전 저기압이 발달하면 나타나는 현상이라고 했다.

 

불편한 진실이었다. 찾아보니 몇 년 전부터 마을 주민들은 악취 때문에 도저히 살 수 없을 지경이라고 수차례 민원을 제기했다. 군청 측은 현지 지도점검을 실시하고 악취 저감제 살포 등을 유도하고 있다고 밝혔다.

 

즐겁고 유쾌한 기대감으로 가득해야할 여행 지면에 고발성 이야기라니. 하지만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꽃을 심고, 나무를 심고, 전망대를 터도 관광명소가 되기 어려워 보였다. 무엇보다 이런 악취를 감내하고 이 마을에 오라고 할 자신이 없다. 마을에 인기척이 없었음이 이해되기 시작했다. 이 마을을 소개하는 어떤 사진에도 냄새는 드러날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