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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크라테스의 죽음

류지미 2022. 7. 17. 15:13

자유공간 ━━━━♡

소크라테스의 죽음

The Death of Socrates

 

Jimie 19.05.21 08:49

 

 

The Death of Socrates, happened at a Greek prison near the Agora market place in Athens about 2500 years ago. The Agora market place is now a park, located at the foot of the Acropolis Hill in Athens. The Parthenon Temple is seen at the top of the Hill.

 

 

The Death of Socrates, happened at a Greek prison near the Agora market place in Athens about 2500 years ago. The Agora market place is now a park, located at the foot of the Acropolis Hill in Athens. The Parthenon Temple is seen at the top of the Hill.

 

There are no signs indicating the exact location where Socrates drank poison. This is a photo taken at or near the place of the death of Socrates.

 

The cutting and carving of groundwork and even of whole rooms into the rock of the hills, west of the Acropolis (the Areos Pagus, the Hill of the Nymphs and the one of the Muses, and the Pnyx) on the way up to the Monument of Philopappos, is typical of the area, and demonstrates the town planning and architecture of ancient Athens.

 

 

소크라테스는 70세가 되던 기원전 399년에 법정에 섰다.

죄목은 아테네가 인정하는 신을 믿지않고 새로운 신을 끌어들인다는 것아테네 청년들을 부패 타락시킨다 가지였다. 아테네 청년들은 소크라테스의 가르침을 깨닫고자 사색에 잠기는 경우가 많았는데, 소크라테스를 고발했던 고소인들은 이것을 타락이라고 간주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믿었다는 신이란다이모니온(daimonion)소리였다. 다이몬(daimon) 정령이나 신령 등을 가리키고, 다이모니온은 영적인 것을 뜻하는데, 다이모니온의 소리가 과연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에 대해 일치된 견해는 없지만 소크라테스가 옳지 않은 일을 그것을 반대하는신의 소리양심의 소리라고 흔히 생각한다. 플라톤은 다이모니온의 소리가 항상 무엇인가를 하지 말라는 부정적 양태로 나타난다고 했다.

재판은 배심단에 의해 진행되었는데, 민사소송이냐 형사소송이냐에 따라 배심단의 숫자가 달랐다. 소크라테스 재판은 형사소송에 해당되었고, 원고는 3명이었으며, 500 이상의 배심단이 참여했다. 아마도 500 혹은 동수(同數) 피하기 위해 501명이었을 것이다. 당시의 재판은 크게 부분으로 나뉘어 있었다. 전반부는 유죄와 무죄를 가리고, 후반부에서는 형량을 결정했다. 소크라테스는 전반부 재판에서 60표의 차이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형량을 결정하는 2 재판에서는 원고가 먼저 형량을 제시하고, 피고도 자기가 받을 형량을 제시하면, 재판관들은 투표로 형량 가운데 하나를 선택한다. 원고측이 제시한 형량은 사형이었다. 이에 대해 피고인 소크라테스는 자신은 상을 받아야 마땅하지만 굳이 형량을 제시하자면 돈이 없으니 1므나의 벌금형을 받겠다고 했다. 그러나 그런 벌금형을 제안하면 극히 불리해지리라고 판단한 제자들은 그를 설득해 30므나로 올리게 하고 금액에 대한 보증을 했다. 그렇지만 사형이라는 극형에 비하면 30므나의 벌금형은 여전히 비교대상이 되지 못한다. 더욱이 소크라테스는 형량에 대한 표결에 앞선 발언에서 재판관들에게 선처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받아야할 것은 벌이 아니라 자신은 평생 아테네를 위해서 살아왔으므로 외국 국빈이료로 숙식을 제공받는 영빈관에서 지내는 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재판관들을 자극했다. 결국 형량 판결에서는 전반부 판결 때보다는 80명이 많은 배심원이 사형에 표를 던졌다.

법정에서 사형이 확정되고 나서 하게 되는 고별사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란어떤 것에 대해서도 감각을 갖지않는 ()’이거나(psyche)이곳에서 다른 곳으로 이주하는 중의 하나라고하면서, 어떤 경우라도 좋다고 했다. 만일 죽음이 아무 감각도 없는 전적인 () 상태라면, 꿈도 꾸지 않는 잠과 같이 매우 즐거운 밤이 것이고, 혼의 이주라면,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을 만나볼 있을 테니, 이것 또한 굉장한 행복이라고 했다. 선량한 사람에게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어떤 나쁜 일도 없으며, 신들도 보살펴줄 것이기 때문에 죽어서 골칫거리에서 벗어나게 것이 잘된 일이다.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은 임박한 죽음에 대해 노여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그것을 맞이할 것이다고 했다. 제자 사람이 그렇다면 우리가 자살이라도 해서 죽음을 택해야 하지 않겠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우리가 살아있는 동안 (psyche) 비록 육체라는 감옥에 갇혀있다고 할지라도 인간들은 신들의 소유물이기 때문에 인간이 감옥에서 몰래 도망쳐서는 안된다고 답했다.

재판이 있기 하루 전에 아테네에서는 델로스 아폴론 축제로 가는 배를 꽃으로 장식하는 행사가 있었다. 아테네의 축제사절단이 델로스에서 돌아오기까진 공적인 처형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법정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동안 감옥에 갇혀있었다. 동안 제자들은 매일 새벽 재판이 열렸던 법정에 모였다. 법정 근처에 감옥이 있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법정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감옥 문이 열리기를 기다렸다가 문이 열리면 소크라테스에게 가서 하루종일 함께 보냈다. 어느 감옥문을 나서면서 제자들은 델로스로 갔던 배가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형집행정지 기간이 만료된 셈이다.

사형집행일되자 관리인이 감옥에 들어와 소크라테스의 결박을 풀어주고 어떻게 형을 집행할 것인지 알려줬다. 제자들이 감옥으로 들어가자 방금 결박에서 풀려난 소크라테스 옆에서 울고 있던 부인 크산티페를 집으로 돌려보내고 해질 형이 집행될 때까지 ‘혼의 불멸’ 둘러싼 사제간 마지막 대화를 했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의 마지막 모습을 책으로 펴낸 플라톤 아파서 거기에 없었다. 소크라테스를 가장 훌륭하고, 가장 지혜롭고, 가장 올바른 사람이라고 평가하는 플라톤은 너무 아파서 차마 운명의 자리에 있기 어려웠던 것이다. 아파서 없었다’ 짧은 표현이 플라톤의 슬픔과 고통을 드러낸다.

무엇을 소크라테스의 유언 으로 것인가? ‘악법도 법이다라는 유언이 유명하다. 그러나 말은 소크라테스의 마지막을 기록했던 플라톤의 저작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이 그의 유언이라는 것은 오직 우리나라에서만 유통되 있다. 과거 권위주의 정권 아래에서 준법정신을 강조하면서 소크라테스를 끌어들인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것은 소크라테스의 평소 생각과는 다르다. 그는 위험을 무릅쓰고라도 올바르지 못한 명령을 거부했 는데, 시민 불복종이라는 개념을 처음 소개했던 소로(Henry Thoreau, 1817-1862) 정신은 소크라테스에서 것이라고 했다.

소크라테스의 유언 으로 간주되는 두번째 것은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닭 한 마리 바쳐달라’ 당부다. 이것은 독배를 들이키고 실제로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다. 아스클레피오스는 그리스신화에서 치유의 이었는데, 당시 사람들은 육신의 병이 나으면 치유의 신인 아스클레피오스에게 감사의 제물로 마리를 바쳤다. 소크라테스에게 죽음은 혼이 육체로부터 해방되는 , 치유의 일이다. 그러니 자기 몫으로도 아스클레피오스에게 마리를 바쳐달라고 것이다.

소크라테스의 유언 으로 간주되는 번째 것은 ‘혼을 돌보라’ 당부이다. 크리톤이 제자들에게 마지막으로 지시할 일이 무엇인지를 소크라테스에게 물었을 ,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자네들이 자네들 자신을 돌본다면, 자네들은 나를 위해서도 가족을 위해서도 그리고 자네들 자신을 위해서도 기쁠 일을 하게 걸세.” 진정한 자신이란 그들 자신의 가리킨다.

제자들과의 대화가 끝나고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목욕을 하고 독약을 마시면 여인들이 주검을 목욕시키는 수고를 하지 않게 것이라며 목욕을 했다. 그리고 집안 여인들과 아들을 감옥 밖으로 내보낸다. 집행인이 소크라테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자 독약을 지었으면 가져오게 한다. 친구이자 제자인 크리톤은 아직 해가 지지 않고 산등성이에 있으니 독약은 나중에 마셔도 된다고 말하지만, 소크라테스는 시간을 끄는 것은 비웃음을 자초할 뿐이라고 한다. 결국 크리톤은 독약을 사람을 불러들인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소크라테스가 묻자 관리는 독약을 마시고서 다리에 무거움을 느끼게 때까지 이리저리 거닐다가 누우면 된다고 대답한다. 독약으로 사용된 독미나리는 신경-근육 차단을 통해 효과를 나타내기 때문에 근육이 마비되고, 결국 호흡근까지 마비되면 사망에 이른다.

소크라테스가 잔을 비우는 동안 사람들이 울음을 터뜨리자, 숙연한 가운데 죽음을 맞아야 하니 의연하게 있으라고 당부한다. 관리의 지시대로 그는 이리저리 거닐다가 다리가 무거워지자 자리에 눕는다. 독약을 주었던 관리는 얼굴을 무엇인가로 덮은 채로 누워있는 소크라테스의 다리를 누르면서 느낌이 있느냐고 묻는다. 다음에는 정강이로 올라간다. 이렇게 점점 위로 옮겨가며 눌러보면서 소크라테스의 몸이 굳어가고 있다는 것을 확인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크리톤이 말이 있느냐고 물었는데 소크라테스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조금 지나서는 몸을 떨었다고 한다. 관리가 얼굴에 덮었던 것을 걷으니 소크라테스의 눈이 이상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자 크리톤이 입을 다물게 해드리고 눈을 감겨 드렸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 루이 다비드의 유화.>

독을 마시기 전 그가 슬픔에 빠진 동료들과 제자들을 향하여 자신의 영혼의 불멸에 대한 신념을 설명하고 있다.

 

[참고문헌]
이강서, 죽음을 생각한다는 , 모시는 사람들, 99-136.
Wikipedia, Conium maculat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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