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마오쩌둥의 흔적 간직한 중 공산당 성지 옌안

류지미 2022. 8. 10. 15:14

마오쩌둥의 흔적 간직한 중 공산당 성지 옌안

新중국 수립 70주년

입력 : 2019-02-09 04:00

 

중국 산시성 옌안 혁명기념관. 건물 정면에 마오쩌둥 동상이 세워져 있다.

 

1933년 8월 장제스(蔣介石)의 국민당 군대가 중국 공산당 소탕을 위해 5차 공격을 개시했다. 장제스는 공산당 근거지인 소비에트 지역에 ‘철의 포위망’을 치고 경제 봉쇄에 들어갔다. 소비에트 지역은 곧바로 식량과 의료품, 소금 부족에 시달렸다. 곳곳에서 공산당이 패배하며 전선이 무너졌다. 결국 1934년 10월 홍군(紅軍·중국 공산당군)의 주력 10만 군대는 장시성 루이진을 떠나 기나긴 탈출을 시작했다. 대장정(大長征)의 시작이다.

홍군은 험준한 산악지대와 거대한 강, 해발 4000m가 넘는 대설산 등을 넘어 1935년 10월 산시성 옌안(延安)에 도착했다. 11개 성과 18개 산맥, 24개 강을 건너며 1년간 1만2500㎞를 행군했다. 주력부대인 제1방면군은 10만명으로 장정을 시작했으나 산시성에 도착했을 때는 8000여명에 불과했다. 궤멸 직전이던 중국 공산당은 옌안을 최후 보루로 삼아 국민당 공세를 막아내고 항일 전쟁을 치렀다. 이후 옌안은 중국 공산당의 성지가 됐다.

지난 22일 방문한 옌안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과 2021년 중국 공산당 창건 100주년을 앞두고 유적들이 새롭게 단장되고 있었다. 마오쩌둥(毛澤東)은 49년 10월 1일 천안문광장 누각에서 신중국 탄생을 선언했고, 중국 공산당은 21년 7월 창건 이후 28년 만에 국민당을 몰아내고 대륙의 패자가 됐다.

 

성당 건물로 쓰였던 루쉰예술문학원 전경. 천재 작곡가 정율성은 이곳에서 음악을 배워 중국 인민해방군 군가인 ‘팔로군행진곡’을 작곡했다.

옌안에는 마오쩌둥과 공산당 지도부가 지낼 당시 주거지와 공산당 혁명 유적들이 즐비했다. 루쉰예술문학원도 깔끔한 모습으로 단장돼 있었다. 문학원 밖 공터에는 마오쩌둥 필체로 ‘루쉰예술문학원’이 새겨진 커다란 바위 표지석이 있다. 천재 작곡가 정율성이 공부하고 창작했던 곳이다. 33년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간 정율성은 37년 옌안으로 넘어갔고, 루쉰예술문학원에서 공부하면서 ‘연안송’을 작곡했다. 39년에는 ‘팔로군(八路軍) 행진곡’ 등 8곡으로 구성된 ‘팔로군 대합창’을 창작했다. 루쉰예술문학원은 원래 가톨릭 성당이었다. 성당은 옛모습 그대로 보존돼 있고 왼편에 기념관인 조그만 부속건물이 세워졌다. 내부를 야오동(窯洞·산속 토굴집) 형태로 꾸민 기념관에는 당시 학생들의 활동 모습과 유명인들의 사진 등이 전시돼 있다.

마오쩌둥이 37년 1월부터 이듬해 11월까지 2년가량 거주한 ‘펑황산루 유적’도 눈길을 끌었다. 유적지 안에는 마오쩌둥과 주더(朱德) 저우언라이(周恩來) 펑더화이(彭德懷) 등이 지내던 곳이 복원돼 있다. 뒤편에는 일본군 공습시 대피하는 바위 동굴이 있고, 마오쩌둥이 타던 말을 매두던 마굿간도 보였다. 비어 있는 마굿간 안에는 말 사진과 함께 이런 설명이 있다. “38년 가을, 말이 병사하자 마오쩌둥이 마부에게 ‘이 말은 혁명에 공이 있으니 말가죽을 벗기지도 말고기를 먹지도 말고 온전하게 잘 묻어 줘라’고 말했다.”

펑황산 유적 바로 앞에 공원형 광장이 있고, 그 지하에는 항일군정대학 전시관이 있다. 안내문에는 항일군정대학이 36년 12월 여기로 옮겨왔다고 돼 있다. 항일군정대학은 정율성이 음악지도원으로 활동했고, ‘아리랑’의 님 웨일즈와 인터뷰할 당시 김산이 강의하던 곳이다.

 

마오쩌둥과 중국 공산당 간부들이 일본군의 폭격을 피해 생활했던 양자링의 토굴 내부. 옌안에는 주더와 류샤오치, 저우언라이 등이 거주하던 토굴이 그대로 복원돼 있다.

마오쩌둥 등 중국 공산당 간부들은 일본군의 폭격이 심해지자 38년 11월 급히 양자링(楊家嶺)으로 피했다. 그곳에서 43년까지 5년간 지냈다. 양자링에는 주더와 마오쩌둥, 류사오치(劉少奇), 저우언라이 등이 거주하던 야오동이 옛 모습 그대로 복원돼 있다. 마오쩌둥의 야오동에는 당시 쓰던 물통과 주전자 컵, 의자, 침대, 책상 등이 놓여 있다. 집 앞에는 마오쩌둥이 46년 8월 6일 미국인 기자 안나 루이스 스트롱을 만나 인터뷰했다는 돌로 만든 탁자와 의자도 있다. 당시 마오는 인터뷰에서 “모든 반동파는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진정으로 강력한 힘은 반동파가 아니라 인민에게 있다”고 말했다. 공산당 지도부는 43년 10월 이곳에서 짜오위안(棗園)으로 옮겨 47년 3월까지 머물렀다. 짜오위안에도 마오쩌둥이 머물렀던 야오동과 당 서기처 회의실 등이 보존돼 있다.

옌안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문화대혁명이 한창이던 69년 열여섯의 나이에 하방(下放)돼 시련을 겪었던 유적도 있다. 옌촨(延川)현의 산골마을 량자허(梁家河)촌으로 하방된 시진핑은 황토 산비탈을 파내 흙벽을 세운 토굴에서 지내는 고초를 겪었다.

시내에 있는 옌안 혁명기념관은 규모부터 사람을 압도했다. 기념관에 들어서자 드넓은 광장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마오쩌둥 동상이 시내를 바라보듯 세워져 있었다. 기념관은 홍군의 대장정, 대일 항전, 일제 패망 후 국공내전, 중화인민공화국 설립까지의 역사를 사진과 모형으로 전시해 놨다. 기념관에는 조선의용군 간부 양성기관인 뤄자핑 조선혁명군정학교의 구성원들이 해방 후 옌안을 떠나기 전 마지막으로 기념촬영한 사진이 걸려 있었다. ‘중국의 붉은 별’을 쓴 에드가 스노와 부인 님 웨일스 사진도 보였다.

옌안은 2021년 공산당 창당 100주년을 앞두고 새로운 관광도시로 변모를 서두르고 있다. 부동산 개발회사 다롄완다그룹은 옌안을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120억 위안(약 2조원)을 투자하기로 했다. 완다는 중국 공산당의 ‘홍색(紅色)’을 주제로 한 대규모 문화관광시설을 건설할 계획이다. 공산당 창건 100주년인 2021년 개장이 목표다.

옌안=글·사진 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출처] - 국민일보

 

中華人民共和国国歌「義勇軍行進曲(March of the Volunteers)」

https://www.youtube.com/watch?v=PoebTDqEByg

The national flag and anthem | Opening Ceremony of 2019 Military World Games, Wuhan, Chi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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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ct 19, 2019

https://www.youtube.com/watch?v=vv3JCx-Lgp8

Nov. 18th, 2019. Wuhan Sports Center, Hubei Province, Chi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