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hil Coulter (필 쿨터) 아일랜드가 낳은 자랑하는 세계적인 피아니스트 겸 작곡가. 1942년 2월 19일 북아일랜드 데리에서 출생한 Phil Coulter 1960년대 아일랜드가 배출한 가장 위대한 음악가이자 작곡가입니다 Phil Coulter의 음악세계는 아일랜드의 역사와 개인적인 가정사 그리고 종교적인 내용을 위주로 서정적이고 감미로운 뉴에이지 음악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Phil Coulter/ A Bunch Of Thyme
https://www.youtube.com/watch?v=PtyPpyi_0tI
Foster & Allen (Bunch of Thyme) Live in 1995
https://www.youtube.com/watch?v=8BNE7gIerwg
A Bunch Of Thyme(백리향 한 다발) -
Foster & Allen (영어, 한글자막 English & Korean captions)
https://www.youtube.com/watch?v=J3rOvdPXeE4
Creeping Thyme (Thymus serpyllum)
Careless Love 1961 - CONNIE FRANCIS - Lyrics
https://www.youtube.com/watch?v=lVGt6Q9b0VU
Connie Francis, 1937년 12월 12일 ~ )는 미국의 여성 가수, 작사가, 연극배우, 영화배우, 뮤지컬 배우이다
1960년대에 '팝(Pop)', '발라드(Ballad)', '칸초네(Canzone)'등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섭렵하며수많은 '히트(Hit)' 곡을 탄생시켰던 미국 가수 '코니 프란시스(Connie Francis)'는미국의 '뉴저지(New Jersey)'주 '뉴어크(Newark)'에서 태어났습니다.
그녀는 다섯살의 어린 나이에 처음으로 사람들 앞에서 노래를 불러 자신이 가지고 있던 끼를마음껏 발휘하였으며 11살 때에는 텔레비전의 어린이 노래 자랑 대회에 참가하기도 하였습니다.
'뉴어크 예술 고등학교(Newark Arts High School)'에 입학한 '코니 프란시스(Connie Francis)'는 집이 '벨빌(Belleville)'로 이사함에 따라 '벨빌 고등학교(Belleville High School)'로 전학하여 1955년에 졸업하게 됩니다다.
고교 시절에 '코니 프랜시스'는 노래 잘하는 소녀로 주위에 알려져 있었으며 가끔 나이를 속이고클럽 무대에서 노래를 부르기도 하였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해에 '엠지엠(MGM)'과 음반 계약을 맺고 '싱글(Single)' 음반 '프레디(Freddy)'를 발표하면서 정식 가수로 '데뷔(Debut)'하게 됩니다. 장학금을 받으며 '뉴욕 대학교(New York University)'에 진학해서도 '싱글(Single)' 음반 발매를 통해 학업과 가수 활동을 병행하던 '코니 프랜시스(Connie Francis)]는 1958년에 발표한 '싱글(Single)' '후 이스 소리 나오(Who's Sorry Now)'가 '빌보드 싱글 차트(Billboard Single Chart)' #4위에 오르며 '히트(Hit)'를 하게 되자자신감을 얻고 가수 활동에 전념하게 됩니다.
탁월한 가창력과 아름다운 목소리로 다양한 갈래의 음악을 시도했던 '코니 프랜시스(Connie Francis)는 1974년에 불행한 사고를 겪기도 하였고. 그 사건은 1974년 11월 8일에 벌어졌던 일로써 투숙했던 모텔에서 외부 침입자로 부터 강간을 당하는 사고였습니다.
이 사고로 '코니 프랜시스(Connie Francis)'는 모텔 측에 보안상의 문제를 제기하여 3백만달러의배상금을 지급받기도 하였으나 이때의 충격으로 1981년 까지 7년 동안 무대에 서지 못하였답니다.
Anita Carter - Careless Love (1950).
https://www.youtube.com/watch?v=b2D7UqKOkoc
(Traditional - 1st. Published 1911
Composer Credit poss. Buddy Bolden).
Recorded 1925 by Bessie Smith
Also Recorded 1933 by Frank Luther Trio
NOTE : W.C.Handy's 1926 Song "Loveless Love"
Same Melody as "Careless Love"
Anita Carter * Careless Love (1950년)
Love oh love oh careless love
사랑, 아 사랑이여 경솔했던 사랑이여
Love oh love oh careless love
사랑, 아 사랑이여 경솔했던 사랑이여
Love oh love oh careless love
사랑, 아 사랑이여 경솔했던 사랑이여
Oh see what love has done to me
사랑은 과연 내게 무엇을 가져다주었는가
(Oh sorrow sorrow to my heart) to my heart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져야만 했을 때
(When me and my true love have to part) we have to part
내 마음에는 슬픔만이 남게되었죠
Oh mama mama don't you cry for I'll get another by and by
엄마, 엄마 제발 울지마세요 나는 또 다른 사람을 만나게 될 거니까요
What oh what will mama say (what mama say)
아~ 내가 방황하곤 할때면 엄마는
When she learns I've done astray (I've done astray)
내게 무어라 말씀하시곤 했던가
I love my mama and my papa too
엄마를 사랑하고 아빠 또한 사랑하고 있지만
I'd leave them both to go with you
두 분을 떠나서 그 사람에게 갈 거라고 할 때마다
Love oh love oh careless love
사랑, 아 사랑이여 경솔했던 사랑이여
Love oh love oh careless love
사랑, 아 사랑이여 경솔했던 사랑이여
Love oh love oh careless love
사랑, 아 사랑이여 경솔했던 사랑이여
Oh see what love has done to me
사랑은 과연 내게 무엇을 가져다 주었는가
Anita Carter. 미국 1933~1999년.
데뷔, 1951년 싱글 앨범 'Bluebird Island'
1900년대 초반 미국의 컨트리 계열에서 활동했던 카터 패밀리가의 여성 3인조 중 막내둥이인 '아니타 카터'.
아니타 카터가 1950년에 부른 솔로 'Careless Love',
이 노래는 우리나라에서는 노사연이 '님 그림자'로 번안해 불러 히트를 기록해서 상당히 많이 알려져 있는 노래다.
우리나라에 이 노래가 처음으로 알려진 것은1950~1960년대 미국 최고의 인기를 누렸던 여자 가수
'코니 프란시스'Connie Francis. 를 통해서였다.
그러나 이 노래를 처음 부른 가수는 아니타도 코니도 아니다.
'리 와일러'Lee Wiley가 1934년에 처음으로 이 노래를 리코딩하였다고. 물론 이 노래는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는
오래전부터 불렸었고 지금도 미국 사회에서 널리 애창되고 있는 노래 중에 한곡이기도 하다고.
노사연 - 님그림자 (1983)
https://www.youtube.com/watch?v=zZ3f5W0tzZ4
https://www.youtube.com/watch?v=9YUhcUeM_qY
Album Title : 7080 그립다 그 시절
Artist : 노사연
Song Track : 님 그림자
Release Date : 2008
필 콜터(Phil Coulter)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작곡가이자 피아니스트 필 콜터(Phil Coulter)는 아일랜드 특유의 정서와 민요의 멜로디를 사용하며 켈틱 인스트루멘탈의 대표 주자로 자리했으며 또한 자연 친화적일 수 있는 뉴에이지의 형식을 따르면서도 인간적 미소와 슬픔에 큰 비중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인간 감성에 더 큰 초점을 맞추고 있는 일본식 뉴에이지의 선구자라 할 수 있다.
그의 음악은 예전 국내 가요나 포크 송의 멜로디를 듣는 듯한 단순하고 쉬운 멜로디가 친근함을 이끌어 내고, 그 단순한 멜로디 만으로도 깊은 감성과 아름다운 자연을 펼쳐 나가는 독보적인 매력을 전하고 있다.
1942년 2월 19일 북아일랜드의 데리(Derry)에서 태어난 필 콜터는 2차대전이 지배한 극도로 어려운 환경 속에서 성장했다. 원조로 살아가는 그 어려운 환경 속에서 그들은 재산목록 1호인 피아노를 통해 위안을 찾았고, 다른 가족들과 마찬가지로 필 콜터 역시 피아노가 삶에 어떤 힘을 주는지에 대해 느끼며 음악가로 성장해 나갔다.
카톨릭 대학인 데리의 성 콜룸브스(St. Columb’s) 대학의 장학생으로 공짜 대학 생활을 보낸 그는 곧 벨파스트의 퀸즈 대학(Queens University)에 재진학 하여 본격적으로 음악 공부에 매진했다. 1600년대 화성학을 공부하는 동시에 1960년대 록앤롤에도 관심을 보였던 그는 대학 재학중이던 1960년대 초반부터 작곡가로서 활동을 시작했고, 곧 런던으로 이동, 성공적인 작품들을 만들어내었다.
유러비전 송 콘테스트의 히트 넘버들을 만들어 낼 뿐더러 클리프 리차드(Cliff Richard) 등 인기 뮤지션들의 곡을 작곡하는 등 송 비즈니스의 일선에서 맹활약 한 그는 1970년대 많은 뮤지션, 여러 이벤트에서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최고의 작곡가로 성장했다.
아일랜드 출신이면서도 영국 씬에서 두각을 나타내던 그는 1970년대 중반부터 ‘아이리쉬 포크(Irish Folk)’로 음악적 방향을 돌리기 시작했고, 아일랜드 출신인 금세기 최고의 플루티스트 제임스 골웨이(James Galway)와 함께 작업하는 등 아일랜드 뮤지션으로서의 정체성을 더욱 확고히 했다.
이후 필 콜터는 아일랜드의 토속적 정서를 음악으로 표현해 냄은 물론 음악 안에 저항적 민족의식까지 담아 내는 적극적 민족성을 보여 주었으며, 이러한 자세를 통해 아일랜드의 정서를 가장 잘 표현해 내는 민족적 음악가로 굳게 자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필 콜터가 아일랜드 정서를 대표하는 켈틱 뮤지션으로서 자신을 묶어 둔 것은 아니다. 젊은 시절 가졌던 팝적 감각을 동시에 살리며 대중성에 있어서도 뒤쳐지지 않았던 그는 1980년대 뉴에이지라는 신조류의 인기와 함께 미국 시장에서도 선전했고, 자의건 타의건 뉴에이지를 대표하는 뮤지션으로 인기를 누려 나갔다.
민요풍의 단순한 멜로디이지만 피아노의 맑은 선율, 그리고 피아노의 선율을 더욱 돋보이게 하는 기타의 어울림이 오히려 고전적 멜로디를 세련됨으로 전환시켰고, 이는 이지리스닝의 편안함과 뉴에이지의 고급스러움이 공존하는 그만의 독특한 매력을 만들어 내었다.
[출처] 필 콜터 (Phil Coul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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