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叟 늙은이 수 白雲叟, 漫浪叟, 杜陵叟 白居易

류지미 2023. 1. 27. 15:04

叟 늙은이 수

① 늙은이 ② 쌀 씻는 소리 ③ 여윈 노인 ④ 장로(長老)

1. 늙은이. 2.여윈 노인. 3.장로(長老).

  • 叟不遠千里而來  孟子 
  • 수불원천리이래

I. 씻는 소리.

  • 釋之叟叟 蒸之浮浮  詩經 
  • 석지수수 증지부부

 

傳奇叟, 曲園(兪樾), 白雲叟, 杜陵叟(白居易)

漫浪叟

자유롭게 사는 늙은이,  漫浪는 얻은 바의 실상(도달한 경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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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식蘇軾 [1037~1101]은 구양수歐陽脩의 뒤를 이어 북송北宋의 문단을 이끌었고, 

부친 소순蘇洵 및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세 부자父子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자리를 차지하며

가문의 문풍을 날렸다.

 

 

 

 

遊武昌寒溪西山寺

무창 한계 서산사로 놀러 가서

 

蘇軾

소식

 

 

連山蟠武昌 연산반무창

翠木蔚樊口 취목울번구

我來已百日 아래이백일

欲濟空搔首 욕제공소수

坐看鷗鳥沒 좌간구조몰

夢逐麕麚走 몽축균가주

今朝橫江來 금조횡강래

一葦寄衰吼 일위기쇠후

高談破巨浪 고담파거랑

飛屨輕重阜 비구경중부

去人曾幾何 거인증기하

絶壁寒溪吼 절벽한계후

風泉兩部樂 풍천양부악

松竹三益友 송죽삼익우

徐行欣有得 서행흔유득

芝朮在蓬莠 지출재봉유

西上九曲亭 서상구곡정

衆山皆培塿 중산개배루

却看江北路 각간강북로

雲水渺何有 운수묘하유

離離見吳宮 이리견오궁

莽莽眞楚藪 망망지초수

空傅孫郞石 공부손랑석

無復陶公柳 무부도공류

爾來風流人 이래풍류인

惟有漫浪叟 유유만랑수

買田吾已決 매전오이결

乳水況宜酒 유수황의주

所須修竹林 소수수죽림

深處安井臼 심처안정구

相將踏勝絶 상장답승절

更裹三日糗 갱과삼일구

 

이어진 산들이 무창을 둘러싸고

번구는 짙푸른 나무들이 울창한데

이곳에 와 백여 일이 지나는 동안

강을 건너고 싶어도 망설이면서

물가에 앉아 물새들만 바라보다가

꿈에서 달리는 노루 쫓는 것을 본 뒤에

오늘 아침 마침내 강 건너려고

작은 배에 쇠약해진 몸을 실었네

높은 담론으로 큰 파도를 깨트리고

발걸음 가볍게 높은 산 연거푸 넘던

지난날 영웅호걸 모두 떠나고

한계만 흐르다 절벽에 부딪치며 소리 내네

바람소리 물소리 양부의 악장과 같고

솔과 대와 매화 셋은 벗이 됐는데

풀더미 속에서 영지와 백출 찾아낼 때는

천천히 걷다 얻은 것에 기분까지 좋아지네

서쪽으로 서산 위 구곡정에 오르면

높은 산들이 하나같이 살집 좋은 작은 언덕 같고

고개 돌려 장강 북쪽 길을 멀리까지 바라보면

물과 구름 아득한 너머로 또 무엇이 있는 건가

오나라 옛날 궁전 보일 듯 말 듯하고

초나라 호수 풀들이 우거져 묻혀버렸는데

손권이 보검을 자랑한 거석만 남아 있을 뿐

도간이 심은 버드나무 다시 볼 수 없네

그 시절 이후 시를 읊는 풍류인으로

오직 하나 낭만노인 내가 있으니

밭을 사기로 마음을 정한 마당에

유천의 물 마땅히 술 빚어야 하겠네

지금 해야 할 일은 대숲을 손본 뒤에

깊은 곳에 우물 파고 돌절구를 놓는 거라

벗과 함께 경치 좋은 곳을 찾으러

또 한 번 사흘치 건량 마련해야 하겠네

 

▶ 武昌: 지명. 북송北宋 때는 악주鄂州 관할이었다. 

▶ 西山: 무창에 있는 산으로 옛이름은 번산樊山이었다. 산 위에 동진東晉의 고승 혜원慧遠이 창건한 서산사가 있다. 

▶ 寒溪: 서산에 흐르는 계류溪流의 물이 차서 붙여진 이름이다. 

▶ 蟠: 사리다. 빙빙 감돌다. 구불구불하다. 

▶ 樊口: 번계樊溪가 강으로 들어가는 입구를 가리킨다. ⟪여지기승輿志紀勝⟫에서 ‘樊溪東爲樊口, 入於江(번계 동족을 번구라고 하는데 이곳에서 강으로 들어간다).’이라고 했다. 

▶ 搔手: 손으로 머리를 긁다. 초조해하거나 생각이 깊은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 鷗鳥: 갈매기. 물새. 

▶ 麕麚: 노루. ‘麕’을 ‘麏’으로 쓴 자료도 있다. ⟪說文⟫에서 ‘麚, 牡鹿, 以夏至解角(가는 수사슴인데, 하지에 새 뿔이 나기 위해 묵은 뿔이 빠진다).’이라고 했다. 

▶ 橫江: 장강長江을 건너다. ‘一葦’는 작은 배를 가리킨다. 

▶ 飛屨: 나는 듯 빨리 걷는 것을 가리킨다. 아주 급하게. 

▶ 重阜: 산과 언덕이 겹으로 중첩되어 있는 것을 가리킨다. 

▶ 三益友: 당일 함께 유람에 나선 벗을 가리킨다. 원결元結은 ⟪개론丐論⟫에서 ‘古人鄕無君子, 則與雲山爲友; 里無君子, 則與松竹爲友; 坐無君子, 則與琴酒爲友(옛 사람들은 큰 마을에 군자가 없으면 구름과 산을 벗으로 삼고, 작은 마을에 군자가 없으면 솔과 대를 벗으로 삼고, 앉아 있는 어떤 곳에 군자가 없으면 금과 술을 벗으로 삼았다).’라고 했다. 

▶ 蓬莠: 풀덤불. 풀숲. 

▶ 九曲亭: 동오東吳의 손권孫權이 산을 뚫어 길을 낸 병사들의 공을 기려 세운 것으로 전한다. 악주鄂州 서산西山 풍치지구 안에 있다. 

▶ 離離: 어렴풋한 모양을 가리킨다. ⟪상서대전尙書大傳⋅약설略說⟫에서 ‘昭昭如日月之代明, 離離若參辰之錯行(환하기기 해와 달을 대신한 것처럼 밝고 / 정연하기는 별들이 교차로 운행하는 것과 같네).’이라고 했다. 

▶ 吳宮: 손권의 피서산장避暑山莊을 가리킨다. ⟪輿志紀勝⟫에서 ‘避暑宮, 在武昌寒溪上. 世傳西山寺卽故基(피서궁이 무창 한계 위에 있었다. 세상에 전하기를 옛 피서궁 터에 서산사가 있다고 했다).’라고 했다. 

▶ 楚藪: 초나라 땅을 가리킨다. ‘藪’는 풀이 우거진 습지濕地를 가리킨다. 

▶ 孫郞石: 손권이 유비 앞에서 보검을 시험해보았다는 거석을 가리킨다.

▶ 陶公柳: 진晉나라 때 도간陶侃이 무창태수武昌太守로 있을 때 병사들을 시켜 군문 앞에 심은 버드나무를 가리킨다. 《진서晉書⋅도간전陶侃傳》에서 ‘侃嘗課諸營種柳, 都尉夏施盜官柳植之於己門. 侃後見, 駐車問曰: 此是武昌西門前柳, 何因盜來此種, 施惶怖謝罪. (도간이 일찍이 관영마다 버드나무를 심게 했는데 도위 하시가 관청에 심은 버드나무를 훔쳐다 자기 집 문 앞에 심었다. 도간이 나중에 보고 수레를 세우고 물었다. “이것은 무창 서문 앞에 있던 버드나무인데 어떤 연유로 훔쳐다 이곳에 심었느냐?” 하시가 어쩔 줄 몰라 하며 죄를 빌었다).’라고 하였다. ‘武昌柳’라고도 한다. 

▶ 浪漫叟: 원결元結을 가리킨다. 원결은 낭사浪士를 자칭했고 사람들은 그를 만랑漫郞으로 불렀다. 서산에 움막을 엮고 지냈다. 여기서는 시인 본인을 가리킨다. 

▶ 乳水: 유천乳泉에서 뜬 물을 가리킨다. 소식은 「杜沂遊武昌, 以酴醾花菩薩泉見餉, 二首」란 시에서 ‘君言西山頂, 自古流白泉(자네가 말하기를 서산 정상에 / 옛날부터 젖 같은 물 흐른다 했지).’이라고 했다. 

▶ 井臼: 우물을 가리킨다. 

▶ 相將: 함께. 동반하다. 머잖아. 

▶ 糗: 말린 음식, 즉 건량乾糧을 가리킨다. 

 

 

 

원우元祐 원년(1086) 동짓달에 「무창서산병서武昌西山并序」와 같은 시기에 쓴 것이다.

 

 

아래는 「무창서산병서武昌西山并序」의 서문이다.

 

嘉祐中, 翰林學士承旨鄧公聖求爲武昌令, 常遊寒溪西山, 山中人至今能言之.

가우중, 한림학사승지등공성구위무창령, 상유한계서산, 산중인지금능언지.

 

한림학사승지 등성구가 가우嘉祐 연중(1056~1063)에 무창현 현령으로 있을 때,

한계 서산으로 자주 놀러 간 것은 산중 사람들이 지금도 그 말을 한다.

*등공(자는 성구聖求, 이름은 윤보潤甫)

 

軾謫居黃岡, 與武昌相望, 亦常往來溪山間.

식적거황강, 여무창상망, 역상왕래계산간.

 

나도 유배지 황주가 무창을 마주보고 있어서 자주 산과 물을 찾았다.

 

元祐元年十一月二十九日, 考試館職, 與聖求會宿玉堂, 偶話舊事.

원우원년십일월이십구일, 고시관직, 여성구회숙옥당, 우화구사.

 

원우 원년(1086) 동짓달 스무아흐렛날 (밤),

고시관 당직을 맡아 한림원에서 등공과 함께 숙직을 하다가 옛이야기를 나눴다.

 

聖求嘗作元次山窪尊銘刻之岩石, 因爲此詩, 請聖求同賦, 當以遺邑人, 使刻之銘側.

성구상작원차산와존명각지암석, 인위차시, 청성구동부, 당이유읍인, 사각지명측.

 

등공이 일찍이 「원차산와준명」을 지어 바위 위에 새겼다는 말을 듣고

시를 지은 뒤 등공에게 글을 청해 그곳 사람에게 보내서 「와준명」 옆에 새길 수 있게 하였다.

 

 

◈ 소식蘇軾 [1037~1101]

 

북송北宋의 문학가이자 서화가로 자는 자첨子瞻, 화중和仲을 썼고 호는 동파거사東坡居士이다.

 

미주眉州 미산眉山(현재의 쓰촨성四川省 미산眉山) 사람이다.

인종仁宗 가우嘉祐 2년(1057)에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진사가 된 뒤 벼슬을 살다가 중앙에서 쫓겨나 오랫동안 변방에서 고초를 겪었다. 시詩, 사詞, 문文, 서書, 화畵에 두루 능하여 중국에서도 역사상 드물게 다방면에 걸쳐 예술적 성취를 이룬 인물이다.

 

구양수歐陽脩의 뒤를 이어 북송의 문단을 이끌었고, 부친 소순蘇洵 및 아우 소철蘇轍과 함께 세 부자父子가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자리를 차지하며 가문의 문풍을 날렸다.

 

사에서는 신기질辛棄疾과 함께 소신蘇辛으로, 시에서는 황정견黃庭堅과 함께 소황蘇黃으로 병칭되었으며, 그림에서도 황정견, 미불米芾, 채양蔡襄 등과 함께 송사가宋四家로 불렸다.

 

작품집으로 《동파칠집東坡七集》과 《동파악부東坡樂府》 등을 남겼고, 《동파전집東坡全集》 150권이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