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성서 평론] ‘철의 입술을 가진 사나이’작곡가 겸 트럼펫터 김인배 Story
2014년 02월 11일 (화) 11:59:23 뉴스메이커 webmaster@newsmaker.or.kr
‘KBS 관현악단장 2대 탄생’에 이어 펼쳐지는
‘음악가(家) 3대’, 그 환희의 ‘팡파르(fanfare)’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트럼펫 연주음반을 발표한 명성에 걸맞게 ‘철(鐵)의 입술을 가진 사나이’라 불리어지는 작곡가 겸 트럼펫터 김인배 (82, 金仁培)선생. 연주인으로 활동을 시작해 KBS, TBC 라디오 악단장을 거치는 동안 ‘빨간 구두아가씨’ ‘보슬비 오는 거리’ ‘그리운 얼굴’을 비롯한 작곡 4백여 곡, 그리고 그의 손을 거친 편곡 작품은 무려 2천5백여 곡에 이른다. 밤낮 없이 진행되어온 연주인 겸 작곡가로써의 60 여년 음악인생과 지금 만나본다.
글l 박성서(대중음악평론가, 저널리스트)
음악인생 60여 년, 현재도‘김인배 악단’ 이끌어
▲ 작곡가 겸 트럼펫터 김인배
음악인생 60여 년간 트럼펫을 손에서 놓지 않은 인물. 현재까지도 김인배 악단을 이끌며 ‘복고클럽’ 등 공연으로 전국을 누비고 있는 김인배 선생의 발길은 여전히 힘차게 무대를 향하고 있다.
‘이제는 잘하려고 하기보다 잘못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는 선생은 특히 지난 2005년, 장남 김대우씨(58)가 KBS 관현악단장으로 내정되자 ‘KBS 관현악단장 2대 탄생’으로 화제가 되었고 아울러 손자, 외손자들 또한 음악도의 길을 걷고 있어 어느덧 3대 째의 음악家를 일구고 있다.
1932년 9월25일, 평북 정주에서 4남 중 장남으로 출생한 그는 특히 유년시절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놀기를 좋아했다. 더 나아가 각양각색의 빈병 꼭지를 자유자재로 이용해 갖가지 소리를 찾는 놀이에 몰두했다. 점차 신기한 소리의 매력에 빠져 들어가던 중, 당시 매우 귀했던 나팔을 조부로부터 선물 받는다. 정주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으뜸화음 중심의 단순한 음계, ‘도-솔-도-미’ 음만 겨우 구사할 수 있는 4음 신호나팔이었지만 이내 선생들에게 발탁, 학교 운동장에서 ‘집합’이나 ‘행진’ 때 구령을 대신했다. 이것이 훗날 화려하게 펼쳐지는 그의 음악행로의 시작이었다.
‘나팔신호 하나하나에 온 운동장의 학생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이 놀라운 체험이 이후 오랜 연주 생활 동안 ‘당당한 자신감을 갖게 만든’ 신념이 되어주었고 그렇게 키운 강심장에 점차 굳은살까지 박혀 그는 연주도중 ‘단 한 번’의 실수도 하지 않은 일화로도 유명하다.
음악활동 위해 열일곱 살에 사선을 넘어 단신 월남
함흥 영생중 시절, 밴드부에 들어가 처음 트럼펫 연주를 시작한 그는 정주중 4년 때 더 넓은 곳에서 제대로 된 음악활동을 해야겠다는 일념하나로 사선을 넘어 단신 월남한다. 48년, 그의 나이 불과 열일곱 살 때였다.
서울 큰고모집에서 기거하며 안한 일 없이 온갖 모진 일을 감수해야했다. 어느 날 경복고 안에서 막노동 일을 하던 중 브라스밴드의 연주소리를 듣는다. 이내 밴드부 연습장소로 향한 그는 트럼펫을 집어들고 ‘러시아행진곡 1번과 2번’을 연주했다. 순간 밴드부원 사이에서 탄식과 박수소리가 교차했다.
▲ 동양방송(TBC) 라디오 악단장 시절 ‘TBC 파노라마’ 출연 장면.
이때부터 그는 오로지 밴드부에 들어가고픈 일념으로 경복고에 편입하기 위해 열심히 돈을 모았으나 한 학기 수업료와 교복, 교재값이 무려 2만원. 그동안 아껴 모은 돈이 턱없이 부족하자 대신 광신상고을 택해 4학년에 편입한다. 광신상고는 7천원이면 입학할 수 있었다.
이후 과일장수, 상점 점원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고학을 했으나 급여를 번번이 떼이기 일쑤, 학비는 고사하고 먹을 것조차 여의치 않게 되자 군 입대를 결심, 1950년 4월 수도경비사령부 군악대 입대시험을 쳐 통과하는데 입대하자마자 6.25가 발발한다.
낮에는 육군교향악대, 밤에는 미8군 쇼 무대 활동
후방으로 밀린 국방부 정훈국 군악대는 대구를 거쳐 부산에 주둔하게 되고 이 때 피난 내려온 문관들이 조직한 심포니(교향악단, 지휘 안병서)와 함께 생활하게 된다. 당시 그의 증언을 들어보자.
▲ 육군교향악단 시절 정기연주회장 간판 앞에서.
“1950년 5월 초하루에 군악대에 입대했는데 곧바로 6.25가 터졌어요. 이때 부대가 세 군데로 나뉘어지면서 우리 부대는 대전을 거쳐 대구에 도착했죠. 국방부 정훈국 군악대 소속의 일등병 때지. 그때 대학교수들이 전부 후퇴해 군악대 문관으로 들어오면서 안병서씨가 지휘하는 국방부 정훈국 교향악단이 생겼어요. 그래서 심포니를 처음 하게 되었죠. 그러다가 부대가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동해 초량에 잠시 있을 때 육군 교향악단(지휘 김판기 대령)이 창단했고, 아울러 이곳 부산에서 해군 군악대가 중심이 된 해군 교향악단도 생겼어요. 이후 해운대로 부대가 이동해 해운대 바닷가에 천막을 치고 주둔하게 되었죠.”
▲ KBS악단장 시절 장병위문공연 중
그는 당시 낮에는 육군교향악대, 밤에는 후생사업의 일환으로 스윙밴드를 조직해 미8군 무대에 나섰다. 이 때 안병서, 김동진 같은 현대음악가들로 부터 개인적 사사받을 수 있었고 동시에 스윙음악도 접했다. 이렇게 6년간의 복무기간 중 특별히 외출할 곳이 없는 휴일에는 내무반에 남아 홀로 트럼펫만을 불곤 했다.
1957년 제대 후 ‘하우스밴드’에 들어가 연주 활동을 시작하며 동시에 부인 장영희(79)여사와 백년가약을 맺는다. 이어 김호길악단에 입단, ‘LCI’에서 연주활동을 하며 최초로 ‘방랑시인 김삿갓’ 등 대중음악 연주를 시작했다. 58년부터는 레코딩에도 참여, 특히 박시춘 선생의 영화음악연주에 주로 참여했다.
이어 김광수 악단에 스카우트되어 활동하던 중 61년, KBS에서 주최한 ‘제1회 악단경연대회’에 참가한다. 이때 직접 스윙조로 편곡한 ‘아리랑’을 특히 ‘뮤트(mute, 弱音器)’를 사용해 진동을 제어, 음질을 변화시킨, 일명 '왕왕뮤트‘로 변주한 트럼펫 솔로로 편곡상을 수상하며 연주인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고등학교도 나팔수로 입학할 수 있었고, 군대도 나팔로 인해 들어갔다. 방송국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처음 정동방송국이 창단한 KBS 교향악단원으로 입단해 활동을 시작한 그는 63년, KBS 라디오악단장을 맡는다. 특히 라디오가 전 국민의 귀를 사로잡던 시절이었지만 악단원들은 연주로 생활을 꾸리기가 쉽지 않았다. 때문에 작곡에도 손을 대기 시작한다.
▲ 가수 오기택(왼쪽), 이길남(오른쪽) 등과 함께.
드라마주제가 ‘삼별초’로 작곡 데뷔, 직접 음반사 TELL STAR 설립
처음 작곡한 데뷔작품이 HLKA 드라마 주제가 ‘삼별초(이석정 극본, 한명숙 노래)’, 특히 ‘삼별초’는 사극의 주제가였지만 팀파니나 관현악을 동원, 노래에 접목시키는 새로운 시도를 한 작품. 이어 ‘너는 말했다(최요안 극본, 한명숙 강수향노래)’, ‘하늘 끝 바다 끝(성동준 극본, 신경욱 노래)’을 통해 연주의 다양한 기법을 멜로디에 접목시켰던 이러한 시도는 결국 가요의 폭을 한층 넓힌 것으로도 평가받는다.
▲ ‘황금의 눈(배호)’, ‘그리운 얼굴(한명숙)’의 김인배 친필악보
점차 작곡실력을 인정받은 그는 당시 방송 프로그램들의 시그널, ‘즐거운 한나절’ ‘KBS 그랜드쇼’ ‘노래의 메아리’ ‘가요콩쿠르’ ‘이 밤을 즐거이’ 등 시그널 뮤직을 비롯해 드라마 주제가 ‘진달래꽃은 봄이면 핀다(조애희)’ ‘딸이 좋아(한명숙 강수향)’를 잇달아 발표, 당시 라디오를 틀면 하루 종일 그의 음악이 흘러나왔다. ’순수한 멜로디에 경쾌한 맛이 담겨 있어 누구나 쉽게 따라 부르게끔 하는 노래‘, 이것이 당시 월간지 ’아리랑‘에 실려 있는 그의 음악에 대한 평가다.
이렇게 작곡가로 두각을 나타내던 64년, 드디어 ‘부인 결혼반지까지 팔아’ 직접 '텔스타(TELL STAR)레코드사를 설립, 두 장의 자작곡음반을 발표한다. 이 두 장의 음반을 통해 발표한 곡들이 ‘빨간 구두 아가씨(태명일, 이후 남일해 재취입)’, ‘사랑해봤으면(조애희)’, ‘그리운 얼굴(한명숙)’, ‘소쩍새 우는 마을(박재란)’, ‘내 이름은 소녀(조애희)’ 등으로 모두 작사가 하중희와 콤비를 이뤄 만든 작품들. 이 노래들은 방송가에서 제법 히트했으나 음반은 제작과정의 미숙으로 재킷이 휜 채 제작, 판매엔 실패했다.
1965년 오아시스 전속작곡가로 스카우트 될 무렵 KBS악단장 생활을 접는데 공교롭게도 당일 천지나이트클럽에서 계약을 제의해와 쉴 틈도 없이 곧바로 연주활동을 계속한다.
이후 천지에서의 활동은 10년 간 이어졌고 아울러 오아시스에 전속되자마자 텔스타에서 발표한 노래들을 재출반함과 동시에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김상국)’ ‘보슬비 오는 거리(성재희)’ 등을 잇달아 빅히트시킨다. 당시 신인가수 김상국, 조애희, 성재희, 이금희 등이 모두 그의 작품으로 첫 음반을 취입한 가수들로 특히 그 해 65년에는 TBC에서 ‘사랑해봤으면’의 조애희가, 그리고 타 방송국 연말 신인상은 ‘보슬비 오는 거리’의 성재희가 수상, 신인작곡가 김인배 선생의 돌풍을 예고했다.
김상국, 이금희, 성재희, 조애희, 조영남, 트윈폴리오, 도비두 등 김인배 작편곡집으로 첫 음반 발표
이 돌풍은 어려웠던 시절, 희망을 안겨주는 메시지를 담은 영화주제가 ‘쥐구멍에도 볕들 날 있다’를 비롯해 ‘황금의 눈(배호)’, ‘위험한 육체(한명숙)’, ‘역마(성태미)’ ‘별은 다시 빛나다(김상국, 권혜경)’, ‘큰 댁(권혜경)’, ‘임이 그리워(조애희)’, ‘소라부인(김하정)’, ‘벌레 먹은 꽃이라고(이미자)’ 등 영화주제가로 이어졌다. 특히 ‘황금의 눈’은 드러머 출신가수 배호를 오랜 무명에서 벗어나게 해준 곡이기도 하다.
이렇게 작곡과 연주활동을 병행하며 69년부터 지구, 대도레코드 전속 작곡가를 거치는 동안 번안곡 편곡에도 주력한다. 아울러 70년대 통기타 붐이 일던 포크시대에도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딜라일라(조영남)’ ‘아이 러브 유(펄시스터즈)’ ‘사랑은 기차를 타고’(케리브룩), ‘사랑하는 마음(최양숙)’을 비롯해 최안순 등과 손잡고 편곡을 잇달아 선보인다. 특히 70년대 통기타 붐의 주역들인 트윈폴리오(송창식, 윤형주), 도비두(김민기, 김영세) 또한 김인배 작편곡집 음반으로 첫 음반을 발표했다.
1973년부터 동양방송(TBC) 라디오 악단장을 맡은 후 80년 언론 통폐합과 함께 한국방송 라디오악단장(현재의 KBS 팝스 오케스트라의 전신)으로 이어진다. 특히 우리나라 연주인 중 가장 많은 트럼펫 연주음반을 낸 그는 94년 퇴임 후에도 청록회관, 영동호텔(16인조) 등에서 연주활동을 이어간다.
지난 90년 발표한 ‘사랑이 뭐길래(노왕금 작사, 한혜진 노래)’를 비롯 ‘공군전우회(2005)’, ‘복음성가(2006)’까지 작곡활동을 계속하며 노익장을 과시하고 있다.
‘KBS악단장 2대 탄생’과 함께 펼쳐진 음악가(家) 3대
▲ 김인배 선생과 인터뷰를 마치고.
현재까지도 음악단체에서 맡고 있는 직함 만큼이나 다양하고 또한 영향력 있는 음악인이었던 탓에 지난 2006년 10월 31일, 화관문화훈장을 서훈 받는 등 포상기록 또한 화려하다. 그 중 87년 방송창립 60주년을 기념해 받은 대통령 문화포상금 전액을 낙도인 전남 완도의 금당초등학교에 기증했던 미담도 전해진다. 그 스스로 이북에 두고 온 잃어버린 고향 대신 이 곳을 ‘제2의 고향’으로 정하고 싶었다고 술회했다.
사선을 뚫고 단신 월남했던 그는 현재 부인과 슬하에 2남1녀의 화목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장남 김대우(58, KBS관현악단장)씨로 인해 ‘KBS 관현악단장 2대 집안’으로 화제가 되었고 외동딸 희경(55)씨는 서울예대에서 무용을 가르치고 있고 차남 대성(52)씨는 현재 개인 녹음스튜디오를 운영 중이다. 아울러 큰 손자 김현, 외손자 김필도 음악도의 길을 걷고 있어 음악을 중심으로 한 예술가 집안의 핏줄은 3대에 걸쳐 대물림되고 있다.
‘도-솔-도-미’, 4음 신호나팔로 시작된 그의 소리는 어느덧 갖가지 선율로 파생되었고 홀로 사선을 뚫고 단신 월남했던 무서운 집념은 이제 ‘음악가 3대’라는 영예로, 그 줄기를 힘차게 뻗고 있다. N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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