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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지(劉廷之)의 ‘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류지미 2023. 10. 25. 06:50

 유정지(劉廷之)의 ‘대비백두옹’(悲白頭翁)

 

洛陽城東桃李花낙양성동도리화        낙양거리 동쪽에 피는 꽃은 연붉은 복숭아꽃 살구꽃,

飛來飛去落誰家비래비거낙수가        날아오고 날아가서 어느 집에 떨어지는가?

洛陽女兒惜顔色낙양여아석안색        낙양의 아가씨들은 용모의 아름다움을 빼앗겨 아쉬워하며,

行逢落花長歎息행봉낙화장탄식        길을 가다 떨어지는 꽃잎을 만나면 길게 한숨짓는다.

今年花樂顔色改금년화락안색개        금년에도 봄 지나 꽃 지고 아가씨의 아름다움도 사라져 가는 것이다.

明年花改復誰在명년화개부수재        내년 꽃필 무렵에는 누가 살아 있을까?

已見松栢摧爲薪기견송백최위신        소나무와 잣나무가 잘리어 장작이 된 것을 본 적이 있고,

更聞桑田変成海갱문상전변성해        뽕밭이 변하여 바다가 되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古人無復洛城東고인무복락성동        옛날 낙양의 꽃을 본 사람은, 이미 이 거리 동쪽에서 사라져 버렸고,

今人還對落花風금인환대낙화풍        이제 사람은 역시 꽃을 떨구는 바람 속에 서 있다.

年年世世花相似연년세세화상사        해마다, 해마다 피는 꽃은 비슷해도,

世世年年人不同세세연년인부동        해마다, 해마다 사람은 자꾸 바뀐다.

寄言全盛紅顔子기언전성홍안자        들어라, 한창나이인 소년들이여!

應憐半死白頭翁응련반사백두옹        지금 죽음을 눈앞에 둔, 머리 센 늙은이의 마음을 알아주게나.

此翁白頭眞可憐차옹백두진가련        이 늙은이의 센 머리를 동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伊昔紅顔美少年이석홍안미소년        이 사람이야말로 옛날 홍안의 미소년이었느니라.

公子王孫芳樹下공자왕손방수하        귀공자들과 어울려 꽃피는 나무 아래서 봄을 즐기며,

淸歌妙舞落花前청가묘무낙화전        낙화 속에서 아름다운 노래와 멋진 춤을 보기도 했더니라.

光祿池臺開錦繡광록지대개금수        광록대부의 저택 같은 멋진 집, 수놓은 비단휘장에서 놀았고,

將軍樓閣畵神仙장군누각화신선        양기장군의 신선을 그린 누각처럼, 화려한 집에서 논일도 있다.

一朝臥病無相識일조와병무상식        그런 어느 날 병들어 눕게 되자 친구조차 발길 뜸하고,

三春行樂在誰邊삼춘행락재수변        봄날의 행락 어디로 갔는지 그 흔적조차 남지 않았다.

宛前娥眉能幾時완전아미능기시        젊은 아가씨의 아름다움이 어이 영원히 계속되리오.

須臾鶴髮亂如絲수유학발난여사        눈 깜박할 사이에 센 머리되어 헝클어지고 마는 것이다.

但看古來歌舞地단간고래가무지        보라! 예로부터 노래와 춤으로 흥청거리던 곳을!

惟有黃昏鳥雀悲유유황혼조작비        지금엔 오직 황혼에 새들만이 슬프게 지저귈 뿐이다.

 

        - 劉希夷(초당)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머리 센 노인을 보고 슬퍼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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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비백두옹(代悲白頭翁) 
유정지(劉廷芝/유희이 劉希夷, 651~678))
 
洛陽城東桃李花 飛來飛去落誰家 

洛陽城東桃李花 낙양성동도리화

飛來飛去落誰家 비래비거낙수가


 
洛陽女兒惜顔色 行逢落花長歎息

洛陽女兒惜顔色 낙양여아석안색

行逢落花長歎息 행봉낙화장탄식


今年花落顔色改 明年花開復誰在 
已見松柏摧爲薪 更聞桑田變成海

今年花落顔色改 금년화락안색개

明年花開復誰在 명년화개부수재

已見松柏侍爲薪 이견송백시위신

更聞桑田變成海 갱문상전변성해


古人無復洛城東 今人還對落花風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
寄言全盛紅顔子 應憐半死白頭翁 

古人無復洛城東 고인무부낙성동

今人還對落花風 금인환대낙화풍

年年歲歲花相似 년년세세화상사

歲歲年年人不同 세세년년인부동

奇言全盛紅顔子 기언전성홍안자

應憐半死白頭翁 응련반사백두옹


 
此翁白頭眞可憐 伊昔紅顔美少年
公子王孫芳樹下 淸歌妙舞落花前 
 
光祿池臺開錦繡 將軍樓閣畵神仙
一朝臥病無相識 三春行樂在誰邊 

此翁白頭眞可憐 차옹백두진가련

伊昔紅顔美少年 이석홍안미소년

公子王孫芳樹下 공자왕손방수하

淸歌妙舞落花前 청가묘무낙화전

光祿池臺開錦繡 광록지대개금수

將軍樓閣畵神仙 장군누각화신선

一朝臥病無相識 일조와병무상식

三春行樂在誰邊 삼춘행락재수변


 
宛轉蛾眉能幾時 須臾鶴髮亂如絲
但看古來歌舞地 惟有黃昏鳥雀悲

宛轉峨眉能幾時 완전아미능기시

須臾鶴髮亂如絲 수유학발난여사

但看古來歌舞地 단간고래가무지

惟有黃昏鳥雀悲 유유황혼조작비


 
낙양성 동녘에 핀 복사꽃 바람에 흩날려 뉘 집에 지는가
낙양의 큰애기들 늙기 한되어 지는 꽃 바라보며 탄식하네
지는 꽃 따라 늙는 이 얼굴 내년에 피는 꽃엔 누가 남으리
보았노라 송백은 땔나무 되고 들었노니 상전은 벽해된다고
낙성엔 옛사람 자취도 없고 지는 꽃 서러워하는 젊은 사람들
해마다 피는 꽃은 같으나 사람의 모습은 해마다 같지 않네
사랑하는 나의 청춘들이여 서럽지 않은가 늙은 이 몸이
늙은이의 쇤 머리 가련하구나 이래뵈도 옛날엔 홍안의 소년이었다오
나무 아래 모여서 춤추는 귀공자 지는 꽃도 모르고 노래만 부르네
지대엔 비단에 수놓아 걸고 누각엔 신선화 붙이던 장군
하루아침에 병상에 누우니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구십춘광도 즐길길 없어
아름다운 얼굴 얼마나 갈까 어느새 흰머리 흡사 실낱같구나
예부터 노닐던 터전엔 밤들자 새들만 서글피 우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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代悲白頭翁 대비백두옹

劉希夷 유희이

* 대비백두옹 : 흰머리를 슬퍼하는 노인을 대신하여.

 

제1절

洛陽城東桃李花 낙양성동도리화

飛來飛去落誰家 비래비거낙수가

 

낙양성 동쪽의 복숭아꽃과 오얏꽃은

날아오며 날아가 뉘 집으로 떨어지는가?

 

제2절

洛陽女兒惜顔色 낙양여아석안색

行逢落花長歎息 행봉낙화장탄식

 

낙양의 여아들은 얼굴색을 아끼고 자랑하는데

길 가다가 낙화를 만나면 길게 탄식하네

 

제3절

今年花落顔色改 금년화락안색개

明年花開復誰在 명년화개부수재

已見松柏侍爲薪 이견송백시위신

更聞桑田變成海 갱문상전변성해

 

금년 꽃이 떨어지면 내 얼굴색도 달라지니

명년에 꽃이 피면 또 누가 남아 있을까?

소나무 잣나무도 베어져 장작이 됨을 이미 보았고

뽕밭이 변하여 바다가 됐다는 이야기도 들었네

 

* 3행 '侍爲薪'이 2007년 국학자료원 발행 《한시작가작품사전》에는 '모실, 가까울 시'가 '꺾을 최'인 '催爲薪'으로 되어 있다는 네이버 검색이다.

 

제4절

古人無復洛城東 고인무부낙성동

今人還對落花風 금인환대낙화풍

年年歲歲花相似 년년세세화상사

歲歲年年人不同 세세년년인부동

奇言全盛紅顔子 기언전성홍안자

應憐半死白頭翁 응련반사백두옹

 

옛 사람은 다시는 낙양성 동쪽에 없고

지금 사람 또 다시 낙화 바람을 마주하네

오가는 해마다 꽃은 서로 같은데

해마다 오가는 사람은 같지 않네

말하노니 한껏 붉은 얼굴 젊은이들이여

반죽은 흰머리 늙은이를 가련히 여기시라

 

제5절

此翁白頭眞可憐 차옹백두진가련

伊昔紅顔美少年 이석홍안미소년

公子王孫芳樹下 공자왕손방수하

淸歌妙舞落花前 청가묘무낙화전

光祿池臺開錦繡 광록지대개금수

將軍樓閣畵神仙 장군누각화신선

一朝臥病無相識 일조와병무상식

三春行樂在誰邊 삼춘행락재수변

 

이 늙은이 백발이 진질로 가련하나

옛날에는 붉은 얼굴 미소년이었네

공자 왕손들과 함께 아름다운 나무 아래에서

멋진 노래 부르며 교묘한 춤을 낙화 앞에서 추었네

광록대부의 못가에 비단을 깔아놓고

장군의 누각에 신선을 그렸다네

하루아침에 병들어 누우면 서로 알지 못하니

봄철 행락을 누가 함께 하는가?

 

제6절

宛轉峨眉能幾時 완전아미능기시

須臾鶴髮亂如絲 수유학발난여사

但看古來歌舞地 단간고래가무지

惟有黃昏鳥雀悲 유유황혼조작비

 

보기좋게 굽은 눈썹 과히 얼마나 갈까?

잠깐 사이 흰머리가 어지러이 실타래 같네

다만 보이나니, 옛날 노래하고 춤추던 곳

오직 황혼에 참새들만 슬피 지저귀네

 

 

♧ 유희이 (651~679 추정) : 初唐 汝州 사람. 姿容이 아름답고 담소 나누기를 좋아했으며 비파를 잘 연주한데다 주량이 대단했다. 자유로운 태도로 일상에 얽매이지 않았다.

歌行을 잘 지었고, 閨情을 노래한 작품이 많다. 시상이 부드럽고 婉麗했으며, 感傷的 人情調를 띠었다.

 

☆ 감상

제1절은 눈앞의 풍경을 묘사하여 전시 전개의 무대를 열었고, 제2절은 한 여인을 등장시켜 인생의 문제를 제기시켰으며, 제3절은 앞의 여인이 탄식하는 내용을 나타냈다. 제4절은 인생무상의 대표적인 예인 노옹을 등장시켰고, 제5절은 인간의 호화도 찰라라는 무상감을 거쳐 제6절에서 인생도 다시 공으로 끝나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결론을 내리고 있다.

 

여설이 시는 재래로

'今年花落顔色改 明年花開復誰在'와 '年年歲歲花相似 歲歲年年人不同'이라는 명구 때문에 유명하고 또 이 뒷구 때문에 스무여덟 젊은 나이로 일찍 죽어야 하는 詩讒의 시로도 유명하다. (*시참(詩讒)은 무심코 지었던 시가 훗날 예언이 되는 경우를 말한다.) 유희이는 유정지 劉廷芝로 많이 알려져 있다. 675년 진사에 급제했다고도 하나, 관직을 지내지 않아 사서에는 기록이 없고, 《唐才子傳》이나 《全唐詩》에 짤막한 기록이 있을 뿐이다.

 

이 시의 배경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들어 있다.

유정지는 송지문의 사위라고도 하고, 또는 생질이라고도 한다. 송지문이 이 시가 하도 좋고 그 중에서도 '년년세세화상사 세세년년인부동'이란 구절이 마음에 들어 유정지에게 자기의 작품으로 하자 하니 유정지가 면전에서는 대답하고, 후에는 후회하고 자작품으로 공포해 버렸다. 이에 송지문의 체면이 말이 아니게 되자 화가 난 송지문은 종을 시켜 유정지를 土囊(흙푸대)으로 눌러 죽였다 한다. 그래서 그는스무여덟  젊은 나이로 죽었으므로 사람들이 매우 애석해 하였다 한다. 그러나 이 시는 당시 매우 유명하여 널리 유행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전당시》에 보면 송지문 작품에도 '유소사'라는 제목으로,  이 시와 여섯 자만 틀리고 완전히 같은 작품이 실려 있고, 송지문의 친구 가증의 작품이라 하여 이 직품의 전반부가 몇 자만 틀린 채로 기재되어 있다.

 

*토낭[土囊]; 모래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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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의 시를 자기 작품으로 하고 싶어 달랬다가 안 주자 사람을 죽인 예는 우리나라에도 있다.

고려 때 김부식(1075~1152)과 정지상(미상, 1114년 과거급제 ~1135)의 관계가 그렇다. 두 사람이 문장으로 일세에 이름을 날렸는데, 정지상의 시구에,

 

琳宮梵語罷 림궁범어파

天色淨琉璃 천색정유리

 

림궁(절)에서 범어(讀經)을 파하니

하늘빛이 밝기가 유리 같도다

 

라는 구절이 있어, 김부식이 자작으로 하게 달라 했으나 정지상이 주지 않자 정지상을 묘청의 난의 주모자로 몰아 죽였다. 후에 김부식이 어느 날 봄을 읊는 시에,

 

柳色千絲綠 류색천사록

桃花萬點紅 도화만점홍

 

라고 하였다. 이때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 김부식의 뺨을 갈기면서 '천사 만점 누가 세어 봤느냐?' 하므로 '그러면 안 되느냐?' 하니, 정지상이,

 

柳色絲絲綠 류색사사록

桃花點點紅 도화점점홍

 

라고 해야 한다 하니, 김부식이 이 뒤로는 더욱 정지상을 미워했다.

그 후 김부식이 어떤 절에 갔다가 측간에 가 뒤를 보는데 정지상의 귀신이 나타나 뒤로부터 김부식의 음경을 움켜잡으면서 '술도 안 마셨는데 어째서 얼굴이 그리 붉으냐?' 하므로, 김부식이 '건너편 단풍이 얼굴에 비쳐 붉은 것이다' 하였다.

 

이에 정지상이 더욱 세차게 잡아당기면서 '꼭 가죽 주머니 같구나' 하자, 김부식이 '너의 아비 음낭은 쇠로 되었니?' 하면서 안색도 변하지 않으므로, 정지상이 그것을 확 잡아당겨 김부식이 마침내 측간에서 죽었다.

 

이는 이규보(1168~1241)의 <백운소설>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시 한 구절 때문에 사람을 죽인 예지만 매우 전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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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계무학) 감상

 

제자이자  사위인 20대 후반의  유희이를 죽인 장인 송지문(656~712)은 초당시인으로 유명하다.

이 책 《중국명시감상》에서 유희이의 앞앞에 있다. 그의 시를 읽어보니 화려한 수사로 형식미만 짙을 뿐 진실이 없다.

여설을 읽어보니 측천무후의 정부 노릇을 하며 아첨한 소인배이다. 

 

그런데 유희이 여설을 보니, 사위를 죽인 사람은  장인이 아닌가. 그것도 무슨 큰 죄가 있는 게 아니라 시 구절을 뻣으려고!

이런 만고의 간신이요 시단의 악인이다. 그런데도 그의 시가 《전당시》에 실려서 천년이 흐르다니.

그렇게 고금천하에 무도한 자가 시인이라고 대접받고, 그의 시가 인구에 회자되는 것은 인간과 시문학에 대한 거대한 모독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나라 현대시사에서도 친일부역자들이 쓴 시가 버젓이 명시로 남아 인구에 회자되고 있다.

 

유희이는 20대인데도 칠십 노인의 비애와 인생무상을 읊었다.

희로애락 영고성쇠에 대한 미려한 시구가 곳곳이지만, 역시 실제로 노인이 되어 경험한 성찰이 아니라 상상이기 때문에 화려한 종이꽃처럼 사실감이 적다. 제목대로 '代悲'의 한계다.

 

인생무상은 사유인이라면 누구나 말하거나 읊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정도 인생을 산 사람이 깊은 통찰에 의해 깨달은 바를 말하거나 읊은 것은 더 깊고 무겁다.

 

유희이가 겉늙어서 인생무상을 읊더니, 시참(詩讒)에 맞아 요절하고 말았다.

이 시를 읽고 고금을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인생무상을 다시금 느끼고 생각했을까.

그러면서 자기 인생의 태도를 다시금 추스렸을 것이니, 그것만 해도 유희이는 30년 못 살다간 값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