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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예봉文藝峰, 1932년 <임자 없는 나룻배>

류지미 2023. 11. 6. 19:29

출생 1917, 서울

사망 1999. 3. 26

국적 북한

 

1930년대 인기 여배우로 활동하다 월북해 북한 영화계를 움직인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 북한 최초의 공훈배우이다. 1931년 조직된 극단 ‘연극시장’에 참여하는 등 연극배우로서 활동했고, 1932년 <임자 없는 나룻배>에서 주인공인 뱃사공의 딸 역으로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인기배우로 발돋움했다. 최초 발성영화인 <춘향전>, <아리랑고개>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해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1930년대 말부터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군국주의를 고취하는 선동영화에 출연해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1946년 남조선영화동맹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 월북했다. 월북 후 주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활동했다. 김일성이 사망했을 당시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장례식에 참석했다.

 

문예봉(文藝峰)

 

 

한국 영화 초창기인 1930년대 인기 여배우로 활동하다 월북해 북한 영화계를 움직인 대표적인 인물 가운데 한 사람이며 북한 최초의 공훈배우였다.

 

연극인인 아버지를 따라 서울 배우 양성소에 입학하고 15세의 어린 나이에 연기자 생활을 시작했다. 1931년에 조직된 극단 '연극시장'에 참여하는 등 처음에는 연극배우로서 활동했으나 목소리에 자신이 없어 영화에 관심을 두었다고 한다.

 

1932년 이규환 감독의 〈임자 없는 나룻배〉에서 주인공인 뱃사공(나운규 분)의 딸 배역으로 영화계에 데뷔하면서 인기 배우로 발돋움했다. 최초의 발성영화인 이규환의 〈춘향전〉(1935)과 홍개명의 〈아리랑고개〉(1936)·〈장화홍련전〉(1937), 나운규의 〈나그네〉(1937), 안종화의 〈인생항로〉(1937), 김유영의 〈애련송 愛戀頌〉(1939) 등 다수의 작품에 출연해 일제강점기 대표적인 영화배우로서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1930년대말부터 일제의 탄압이 거세지면서 한국 영화는 암흑기를 맞게 되었고, 문예봉은 일본 군국주의를 고취하는 선동영화인 〈지원병〉(1941)·〈신개지〉(1942)·〈망루의 결사대〉·〈조선해협〉(1943)·〈사랑의 맹서〉(1945) 등에 출연해 오점을 남기기도 했다.

 

해방 후 1946년 남조선영화동맹 위원으로 활동하다가 1948년 봄 남편 임선규, 4명의 자녀와 함께 월북했다. 그녀의 남편 임선규는 극작가로서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창작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월북 후 그녀는 줄곧 북한의 대표적인 영화제작소인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배우로 활동했다.

 

 

1949년 북한 최초의 극영화인 〈내 고향〉에서 주역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수십 편의 주요 영화에 출연했다. 1952년 영화 〈빨치산 처녀〉로 공훈배우 칭호와 함께 국기훈장 3급을 받았고, 1958년 북한-소련 친선협회 중앙위원, 1961년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중앙위원으로 활약했다. 문예봉은 1965년 잡지 〈조선영화〉를 통해 당시 북한에서 '사상성이 없는 퇴폐적인 예술지상주의자·투항주의자이자 기회주의적인 영화감독'으로 분류되어 있던 나운규를 '천재적인 인물'로 묘사한 필화사건 때문에 '반혁명·반동'으로 몰려 1967년 안주 협동농장으로 추방당했다.

 

 

복권되어 1980년 〈춘향전〉에 월매역으로 출연하면서 다시 영화계에 모습을 나타내 〈생명수〉·〈은비녀〉·〈위대한 품〉 등에 출연했다. 1982년 4월 북한배우의 최고 영예인 인민배우가 되었고 국기훈장 1급을 받았다. 평양영화대학 교수로 출강한 외에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밀입북한 남한의 대학생 임수경의 단식 현장을 위문하는 등 사망하기까지 정치적인 활동도 활발했다.

 

김일성이 사망했을 때는 문화예술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장례식에 참석했으며, 1995년 자신의 활동 수기 〈대를 이어 충성을 다하렵니다〉를 발표했다. 저서로 〈라운규와 그의 예술〉(1962)이 있다.

 

[유행가 재연] 임자 없는 나룻배(1932년 영화 주제가)

https://www.youtube.com/watch?v=-EpRpeC4cxc

 

 

80년전 한국영화 잠시 엿보기..(30년대 히로인 문예봉)

https://www.youtube.com/watch?v=HnTRuCNioLk

 

 

1932년 '임자없는 나룻배' 에서 나운규 선생의 딸로 데뷔했고, 1935년 국내 최초의 유성영화 '춘향전'의 여주인공이였다.

무성~유성영화 시대에 모두 인기를 얻었고 1930년대 히로인이라고 할수 있다.

 

1940년대에는 김신재와 인기경쟁을 했고 8.15 해방전까지 전성기를 이끌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