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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양군 감천마을, 항일·애국시인 오일도 생가

류지미 2023. 12. 26. 14:45

<영양군 감천마을, 항일·애국시인 오일도 생가 >

어머니의 산, 일월산 암반을 뚫고 발원한 반변천은 영양읍의 남쪽에서 초승달처럼 굽이진다. 이곳에 낙안오씨 집성촌인 감천(甘川)마을이 들어섰다. 큰 내가 마을 앞을 흐른다고, 혹은 마을 뒤 산기슭에 단맛이 나는 좋은 물이 샘솟는다고, 또는 마을에 감나무가 많다고 감천이라 했다 한다.

감천마을  일도 (一島)  오희병(吳熙秉 1901~1946)의 생가(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48호)는 고종 원년인 1864년 오일도의 조부인 오시동이 건축했다. 약 300여 평의 대지 위에 44칸의 기와집으로 지어졌다. 주춧돌이나 기둥 하나하나가 웅장한 골격에 힘이 느껴진다.

대문에서 정면을 보면 안채로 들어가는 중문채 오른쪽에 사랑채에는 ‘국운헌(菊雲軒)’ 당호와 ‘한묵청록(翰墨淸綠)’ 편액이 걸려 있다. 임진왜란 때 학봉 김성일과 함께 의병활동을 했던 선조 오수눌의 호 ‘국헌’에 구름 ‘운’자를 더해 ‘국운헌’으로 국화와 같은 절개와 구름과 같은 높은 자유를 뜻하리라 짐작된다.

건물은 정침과 대문채로 되어 있으며, 정침은 정면 4칸, 측면 7칸의 ‘ㅁ’자형 뜰집이다. 대문에서 정면을 보면 안채로 들어가는 문을 중심으로 오른쪽에 사랑채가 있고 왼쪽에 작은 글방이 있다. 오일도가 공부했던 방이다.

시인 오일도( 一島) 는 나라 잃은 슬픔을 서정적 언어로 표현했다. 시인의 생애는 암울했던 일제강점기의 시기와 거의 일치한다. 1901년에 태어나 14살까지 영양에서 한문공부를 하고, 15세에 한양 조씨 필현과 결혼한다. 영양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상경하여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에서 공부했다. 1922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릿교대학 철학부에 입학하여 1929년 졸업했다.

귀국하여 근화학교(덕성여자중고등학교 전신)에서 1년 동안 교사로 잠시 근무했다. 고향의 맏형(오희태)으로부터 자금을 얻어 1935년 한국 최초로 시 전문잡지인 <시원(詩苑)>을 창간, 5호까지 발행했다.

"문학이 그 시대의 반영이라면 문학의 골수인 시(詩)는 그 시대의 대표적 울음일 것이다. 그러면 현재 조선의 시인이 무엇을 노래하는가? 이것을 우리는 여러 독자에게 그대로 전하여 주고자한다” 시인 오일도가 시원(詩苑)’ 창간호에 쓴 편집후기이다.

1936년 '을해명시선집(乙亥明詩選集)'을 발행하고, 1938년에는 조지훈 시인의 형인 조동진의 유고 시집인 '세림시집'을 발간했다. 해방이 되어 '시원'의 복간을 위해 사방팔방 뛰어다녔지만 이루지 못하고 깊은 시름과 우울에 빠져 폭음으로 나날을 보내다 간경화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감천마을 안쪽에는 삼천지라는 연못이 있고 주변에 오일도 시공원과 영양문학테마공원, 시원쉼터가 조성되어 있다. 특히 시공원 입구에는 선생의 젊은 날의 모습이 담긴 동상과 함께 시비가 놓여 있다. 공원에는 조형물에 그의 시가 새겨져 있고, 잔디밭이 잘 조성되어 한가로이 문학작품을 즐기기에도 최적이다.

감천마을 앞 반천변에는 깎아지른 절벽 바위틈에 뿌리를 내린 측백나무 숲(천연기념물로 제114호)이 병풍처럼 있다. 우리나라에는 측백나무 자생지가 극히 드문데, 절벽의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숲을 이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천연기념물 제1호가 대구 도동의 측백나무 숲이다

절벽 맞은편에는 소나무와 느티나무의 숲이 펼쳐져 있는데 숲은 감천마을에 살았던 침벽 오현병이 1959년경 무와 문예, 풍류의 수련도장으로 조성했다고 한다. 이후 후손들이 그의 뒤를 이어 정성으로 가꾸었다. 지금은 침벽공원 또는 감천 유원지라 불리며 매년 많은 사람이 찾고 있다.

생가를 방문한 우리 일행에게 편하게 둘러보라는 후손에게서 왠지 모르는 무심하면서도 깊은 정을 느낀다. 집안에 들어서 활활 타오르는 군불을 보는 순간 장미보다 더 붉은 저녁놀 타고 나는 간다.

탐방 팁 : 경북 영양군 영양읍 감천1길 34

 

 

 

  내 소녀 

                       오일도(  一島)

빈 가지에 바구니 걸어놓고

내 소녀 어디 갔느뇨.

 

……………

 

薄紗의 아지랑이

오늘도 가지 앞에 아른거린다.

*박사(薄紗)란 얇은 사, 즉 얇은 비단을 말한다.

 

[출처] 영양군 감천마을, 항일·애국시인 오일도 생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