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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 인식 체계/ 백두대간

류지미 2024. 2. 11. 15:58

국토 인식 체계/ 백두대간

 

1. 백두대간

한반도에 정착하여 부족국가를 형성한 우리민족은 벼농사를 중심으로 한 농경사회를 이루어 왔다.

그래서 하천을 중심으로 마을을 이루고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농경사회에서 농사를 짓는데 물을 끌어대고 그 흐름을 파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었다.

이 때문에 일찍부터 하천의 발원지와 하구, 주요 하천 유역을 밝히고,

상류의 많은 지천과 계곡들을 정리하고 분류하는 일에 관심을 가졌다.

이 과정에서 자연 그대로의 지형을 인식하게 되었고,

능선들의 연결인 산줄기에 의해 계곡이나 하천들이 나누어진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우리 조상들은 산을 물줄기처럼 끊이지 않는 하나의 줄기로 보았다.

산은 강과 대립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공존하며 조화를 이루는 것으로 인식하였다.

그래서 산은 물을 낳고 물은 산을 가르지 않는다고 여겼다.

 

1. 우리 산줄기를 인식하는 기본개념은 山自水分嶺의 원리이다.

산줄기는 물을 건너지 않고 산이 물을 나눈다는 뜻이다.

이러한 산자수분령의 원리에 입각하여 우리 산줄기를 집대성한 것이 백두대간이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에 이르는 산줄기가 한 번의 끊어짐도 없이 한 줄기로 이어지며,

산과 강이 거기에서 뻗어 나오고 있음을 밝힌 한반도 산줄기에 대한 총체적 체계이다.

 

우리나라 산줄기는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하나로 이어진 백두대간과,

하나의 正幹, 열세 개의 正脈으로 이루어져 있다.

1,470km에 달하는 백두대간은 백두산을 뿌리로 하여 남쪽으로 내려가면서 마치 나무의 뿌리와 가지, 줄기처럼 장백정간과 정맥들을 펼쳐놓고 있다.

 

백두대간과 1개의 정간, 13개의 정맥들은 산줄기뿐만 아니라 水界를 구분짓는 분수령을 구성한다.

또 백두대간에서 갈라져 나온 14개의 산줄기를 따라 열 개의 큰 강이 펼쳐진다.

 

전체 길이는 약 1,400, 남한 쪽에선 약 680에 이른다.(지도상의 거리는 전체 1625km, 남한은 640km) 한반도의 주요 산을 아우르는 산악 지형으로 한반도 10대 강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2. 신라말 도선국사는 “우리나라는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지리산에서 끝난다.”라 하여,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하나의 산줄기로 연결되어 있다고 했다.

이것이 백두대간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그는 국토를 음양의 관점에서 풍수적으로 해석하였다.

 

고려 중기 이인로는 <파한집>에서,

“지리산은 두류산이라고도 한다. 북쪽 백두산으로부터 일어나서 수많은 봉우리와 골짜기를 아우르고 면면히 이어온다.”라 하여 신라말부터 이어오는 인식체계를 계승하였다.

 

15세기에 이르면 백두대간이 국토의 기본 개념으로 정립된다.

1402년에 제작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지도 <혼일강리역대국도지도>에는,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뻗어내린 산줄기를 그렸다.

 

또 1425년에 편찬된 <세종실록-지리지>에는 백두대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우리나라의 지세는 장백산(백두산)이 만 리를 뻗어 기복을 이루어 마천령 · 철령 · 금강산 · 오대산 · 치악산이 되고,

경상도의 경계에 이르러 태백산과 소백산이 되었다. 그 산줄기는 다시 빙 돌아서 속리산이 되었다.

속리산의 산줄기는 계속 이어져 지리산이 되었으나, 바다가  곁에 있어 넘지를 못하였다.”고 하였다.

 

16세기에 오면 백두대간은 국토 전체를 이해하는 중심 개념으로 자리잡는다.

1530에 나온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지리산은 산세가 높고 웅대하여 수백 리에 웅거하고 있다. 백두산의 산줄기가 뻗어내려 여기에 이른 것이다. 그 때문에 지리산을 두류산이라 부른다.”라 하여,

산줄기의 머리에 해당하는 백두산이 흘러 내려와 머문다는 뜻으로 ‘頭流’라 이름지었다.

 

18세기 영 · 정조 때에 이르면 백두대간이란 용어가 사용되었다.

이긍익(1736~ 1806)은 <연려실기술>에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의 주요 산과 고개를 구체적으로 언급하였다.

이밖에도 이익의 <성호사설>,

이중환(1619~ 1756)의 <택리지>,

신경준의 <산수고> 등의 책에서 백두대간을 언급하였다.

 

3. 백두대간이 본격적으로 정리된 것은 영조 때 나온 <산경표>라는 책이다.

이 책은 여암 신경준(1712~1781)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나 분명하지 않다. 모두 102쪽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백두대간, 장백정간, 13정맥의 계통을 정리하였다. 이 책에서는 산맥을 ‘산줄기’라 표현하였으며, 산의 내력과 높낮이, 산이 치닫다가 생긴 고개, 산이 굽이돌며 사람 사는 마을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를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김정호(1804?~ 1866?)의 <대동여지도>는 백두대간의 지리적 과학성을 완전히 입증하였다.

 

조선 후기까지 모든 지리 인식의 근원은 백두산이었다.

모든 산줄기는 백두산으로 연결되어 있다. 백두산은 단군신화부터 민족의 시원지이며, 언제나 높고 성스러운 산이었다.

<택리지>에는 백두산을 “나라의 빛나는 陽傘”이라 하고, 김정호는 “조선 산줄기의 근원”이라 하였다.

 

 

 

백두대간과 장백정간, 13개의 정맥

 

 

 

2. 백두대간과 인간의 삶

 

백두대간은 그 개념이 실제 지형과 부합되는 정확성에서 산맥 개념과는 비교가 안 된다.

백두대간은 인간의 삶이 산줄기를 따라 어떻게 변하고 영향을 주고받았는가를 설명할 수 있다.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남한측 행정구역은 강원도, 경상남북도, 충청남북도, 전라남북도 등 일곱 개의 도와 열 개의 시, 열여덟 개의 군으로 갈라진다. 또 지리산, 설악산, 오대산, 태백산, 소백산, 월악산, 속리산, 덕유산 등 여덟 개의 국립공원과, 문경새재 도립공원이 남한측 백두대간에 포함된다.

 

강원도를 둘로 나누는 영동과 영서는 바로 백두대간의 동쪽이냐, 서쪽이냐를 기준한 것이다. 여기에 등장하는 각종 들은

백두대간의 고개를 기준으로 하는 말이다. 경상도를 뜻하는 영남은 경상도 전체가 백두대간의 남쪽에 있다는 뜻이다.

 

 

  은 높은 산의 어깨를 지나는 통로를 뜻하며 사전적 의미는 같다.

 에 비해 비교적 높고 험한 고지를 넘나드는 통로이며,

은 영보다 작은 뜻으로 쓰이고 있다.

는 길이 나 있는 높은 산의 고개로 영과 같은 의미로 쓰인다.

의 사전적 의미는 높이 치솟은 지세가 가파른 고개를 의미하며,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가파른 통로(고개)를 뜻한다.

 

 

 

1. 기상관측의 기준도 백두대간을 비롯한 주요 산줄기에 두고 있다.

식생활과 주거 양식의 차이도 백두대간을 비롯한 산줄기에서 비롯되었다.

 

김치의 재료나 담그는 방법, 발효 시기 등이 주요 하천의 유역에 따라 나누어진다.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의 김치 맛이 지금의 행정 구역으로 구분되기보다는,

한남정맥, 금북정맥, 호남정맥 등 각 지역을 경계 짓는 주요 산줄기에 따라 나누어진다.

김치 맛에 차이가 나는 것은 생활권이 하천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데다가,

김치 재료로 쓰이는 농산물이나 젓갈류가 모두 하천 유역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남해안의 한옥에는 대청마루에 반드시 덧문이 있는 데 반해 내륙의 집에는 없다.

그 분포는 전라도와 경상도를 가르는 산줄기인 호남정맥, 낙남정맥과 일치한다.

 

말씨는 도별로 각각 다르지만 같은 도내에서도 산줄기의 경계에 따라 다르다.

전라도의 경우 호남정맥을 기준으로 서쪽인 광주쪽과 동쪽 산간인 곡성, 구례 말은 상당히 다르다.

그러나 속초부터 부산 해운대까지는 크게 보아 방언의 뿌리가 같다.

 

판소리 동편제와 서편제도 호남정맥을 기준으로 나뉜다.

주화산에서 시작하여 내장산, 무등산을 지나는 호남정맥을 중심으로 동쪽은 동편제서쪽은 서편제로 구분된다.

동편제는 선천적인 성량에 많이 의지한다.

광주, 나주, 보성 등지의 서편제는 성량보다는 기교와 수식이 많아 감칠맛이 있고, 정교하다.

 

2. 백두대간은 생태계의 구심점이 된다.

옛날 백두산 호랑이가 지리산까지 갔다고 한다. 중국, 러시아의 동물들이 백두대간을 타고 한반도로 이동하였다.

 

백두산의 가문비나무가 지리산 천왕봉에도 있다. 이것은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타고 분포했기 때문이다.

설악산 저항령 고개마루를 기준으로 영동쪽과 영서쪽이 몇백 미터 차이가 나지 않는데도 꽃 피는 시기가 다르다.

영동쪽은 해양성기후대에 의해 식물의 개화가 내륙 산간기후대인 영서쪽보다 10여 일 빠르다.

 

대간을 중심으로 남북으로는 남방계 식물과 북방계 식물이 어우러지며,

동서로는 해양성기후대와 산간기후대에 있어 다양한 식물 생태계가 형성될 수 있었다.

식물의 분포, 꽃의 개화일수, 농사지을 때의 씨뿌리는 시기와 거두는 시기까지도 모두 백두대간의 산줄기를 기준으로 차이가 난다.

 

 

3. 남한의 백두대간

 

1. 남한의 백두대간은 지리산에서 시작하여 설악산을 지나 진부령의 향로봉에서 끝난다.

 684km이다. 백두산까지 남은 716km는 다음날을 위해서 남겨두어야 할 형편이다.

 

2. 향로봉에서 지리산까지 주요 지점을 짚어 보기로 한다.

2-1, 남원과 운봉을 잇는 24번 도로가 지나는 고개를 내려오면 고남산이 보이고, 뒤로는 작은 고리봉과 큰고리봉이 있다. 두 고리봉의 줄기가 남원시에 닿아 있는데, 이것이 배를을 잡고 있는 고리 형상이어서 남원을 명당으로 꼽는다.

 

지리산에서 시작한 백두대간은 육십령을 지나 덕유산을 따라 오른다.

무룡산은 남덕유(1507m)와 향적봉(1614m)의 중간에 위치한다.

 

2-2, 속리산에서 내려온 백두대간은 덕유산 향적봉을 빚어내고,

금남 · 호남정맥과 종착지 지리산으로 갈라지는 기점인 영취산에 이른다.

 

2-3, 바람재(813m)는 충북 영동과 경북 김천을 나누는 경계이다. 골바람이 센 곳이다.

이 고개를 따라 정상에 오르면 송신소가 있다.

김천쪽으로는 소와 염소를 기르는 대규모 목장이 있다.

바람재를 지나는 백두대간은 대덕산, 덕유산으로 이어진다.

 

2-4, 충북과 경북에 걸친 속리산은 문장대(1033m)에서 천왕봉(1058m)까지를 <택리지>에서는,

산봉우리가 불꽃처럼 타오르는 돌산이라 표현하였다.

주능선은 겹겹의 바위들로 이루어져 있다. 사람 하나 겨우 빠져나갈 정도의 암릉을 따라 백두대간은 이어진다.

 

2-5, 태백산의 사길치 언저리에 산령각이 있다.

옛 보부상들이 동쪽의 태백에서 이 고개를 지나 춘양으로 넘나들었다.

산세가 으슥하고 인적이 드물어 지나던 보부상들이 호랑이 밥이 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음력 4 15일에 이곳에서 제를 올렸다.

 

2-6, 금강산, 설악산, 오대산을 빚은 백두대간 줄기가 남동쪽으로 두타산(1350m)과 청옥산, 덕항산을 향한다.

두타는 범어로 큰 깨달음을 의미한다. 두타산은 동해안을 굽어보는 형세로 동서를 가르는 분수령이다.

 

2-7, 소황병산은 백두대간 중 가장 광활한 초지를 이루고 있다.

대관령부터 대규모 낙농단지가 조성되어 이국적인 경치를 이루고 있다.

백두대간은 선자령을 지나 고루포기산을 넘어간다.

 

2-8, 미시령(767m)은 인제와 속초를 잇는 56번 지나면 이르게 된다.

이곳을 넘으면 설악산 울산바위와 속초 앞바다를 만난다.

 

 

 

남한의 9게 정맥

 

 

 

4. 산맥

 

4-1. 일제는 국권강탈 전인 19세기 후반부터 우리나라 지질, 토지 소유 관계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를 실시하였다.

이 과정에서 식민지에서 수탈해 갈 주요 광물 자원에 대한 조사의 필요성을 느꼈다.

 

그래서 1900~1902년까지, 당시 동경제국대학 교수였던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가 중심이 되어,

 14개월에 걸쳐 조선 전체의 지질 조사 작업을 실시하였다. 조사 결과를 1903 <조선의 산악론, An Orographic Sketch of Korea>이라는 논문과 지질구조도로 발표되었다.

이 논문은 이후 독일을 통해 국제사회에 발표하면서 한반도의 지질구조와 산맥개념이 왜곡되기 시작하였다.

 

 

小藤文次郞가 한민족을 비하하기 위해 토끼 모양으로 한반도를 형상화한 모습

 

 

 

4-2. 일제강점기 이후 산맥체계에서는 생태계를 전체적, 입체적으로 보지 못하고 개별적이고 병렬적으로 바라보았다.

산 하나하나의 땅속에 이루어진 지질 성분이나 암석층만으로 우리의 산하를 설명하려 하였다.

다시 말하면 산줄기를 지질구조선에 입각하여 정리하였다. 땅속의 암맥 줄기가 산맥의 기본 개념을 이룬다.

 

산은 산만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다른 산과의 연결, 강의 내림, 마을의 형성 등 유기적인 맺음이 있기 때문이다.

산맥 개념에는 산과 관련된 문화, 역사, 즉 자연과 교류한 인간의 삶이 빠져있다.

 

 

 

槿域江山猛虎氣象圖

최남선이 한반도를 포효하는 호랑이 모습으로 형상화한 지도

 

 

 

4-3. 일제강점기 단절된 백두대간은 1990년대 초 젊은 산악인들에 의하여 다시 등장한다.

이들은 백두대간 등반대를 꾸렸고, 지리산에서 출발하여 산줄기를 밟아가면서 백두대간이 단 한번의 물길로도 끊어지지 않고 계속 능선으로만 연결되었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1995년부터는 환경보전이라는 차원에서 관심을 모으게 되었다.

국토의 보전과 관리 차원에서 백두대간은 주요한 개념이 되었다.

 

4-4, 그러나 아직도 한국 지리학계는 여전히 지질구조를 근간으로 하는 산맥체계를 따르고 있다.

한국의 전통 지리학, 조선시대 자연지리학적 성과를 공식적으로 수용하지 않고 일본인들의 연구 결과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최근 무분별한 개발로 인해 백두대간이 심하게 훼손되어 가고 있어 커다란 문제점으로 대두하고 있다.

 

4-5. 북한은 1955년까지 이름만 산맥 대신 산줄기라 표현했을 뿐 지리교과서의 기본개념은 남한과 거의 같았다.

그러나 1996 1 6일부터 친일잔재 청산이라는 명목으로 한반도의 기본 산줄기를 백두대산줄기로 확정 발표하였다.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두류산, 태백산, 지리산을 거쳐 남해에 이르는 총 1,470km의 백두대산줄기를 우리나라 산의 근간으로 정했다. 이 백두대산 줄기를 중추로 하여 우리나라 산줄기를 모두 약 80개의 지맥으로 분류하고 있다.

북한은 6,500개에 달하는 하천과 3,600개의 산봉우리를 80여 개의 산줄기와 함께 해설하고 정리하여 백두대산줄기를 정립하고 있다.

 

(이 글은 <지오> 통권 제74(1999 4)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하고 그밖의 몇 권의 책을 참고하여 요약 정리한 것이다.)

 

 

무궁화수지도

남궁억이 1910~1918년까지 배화학당에 재직할 때,

학생들에게 민족정신을 일깨워주려고 만들었다 한다

 

 

5 산경표

 

1. <山經表> 1800년경 우리 옛 지도에 나타난 산맥들을 정리한 것이다.

旅庵 申景濬(1712~1781)이 동국지도류의 산줄기 흐름을 토대로 하여 <문헌비고> 山水考를 집필한 내용을 가지고 누군가가 표로 만든 것이다.

 

대표적인 책으로는 규장각의 <海東道里譜> 중의 산경표, 정신문화연구원 장서각의 <輿地便覽> 중의 <산경표>,

朝鮮光文會 최남선이 1913년에 영인한 <산경표> 등이 있다. 내용은 모두 같다.

 

2. 전국의 산줄기를 하나의 大幹, 하나의 正幹, 13개의 正脈으로 규정하고 여기서 다시 가지쳐 뻗은 岐脈을 기록하였다.

모든 산맥의 연결은 자연지명인 산 이름, 고개 이름 등으로 하고, 족보 기술식으로 하였다.

 

산맥의 이름과 순서는,

1. 白頭대간, 2. 長白정간,

3. 洛南정맥, 4. 淸北정맥, 5. 淸南정맥, 6. 海西정맥, 7. 臨津北禮成南정맥, 8. 漢北정맥, 9. 洛東정맥, 10. 漢南錦北정맥,

11. 한남정맥, 12. 금북정맥, 13. 錦南湖南정맥, 14. 금남정맥, 15. 호남정맥 등이다.

 

3. 백두대간이라는 산맥 이름은 도선의 <玉龍記>, 李瀷(1681~1763) <星湖僿說>, 이중환의<擇里志, 1751> 등에도 보이는 것으로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뻗어내린 우리 땅의 중심산맥이다.

모든 산맥은 중심산맥인 백두산에서 다시 가지 치고 있는데, 북쪽과 남쪽의 연결 산맥인 장백정간과 낙남정맥을 그 순서에서 우선하고 나머지는 북쪽에서부터 차례로 정하고 있다.

 

이들 산 이름의 특징은, 산 이름으로 된 것이 백두, 장백 두 개이고, 그 지방 이름으로 된 것이 해서, 호남 두 개이고,

강 이름과 관계된 것이 11개이다. 전체적으로 산맥 이름을 강 이름에서 따와 강의 방위로 위치를 표시하였다.

 

산맥의 순서를 정하고 이름을 강 이름과 관계한 것은 모든 정맥은 관계한 강의 경계능선인 분수령으로 정의하였기 때문이다. 이와같은 정의는 그 강의 위치, 유역의 넓이, 모양, 그리고 그  세력을 쉽게 읽어 국토의 전체적 경영과 활용에 있어 정보적 입장에 있게 한 것이다.

산맥의 이름을 강 이름과 관련하여 부여한 것은 산이 곧 물과 관계된 자연의 이치로서 그 강을 이룬 물의 産地라는 의식을 포함하고 있다.

 

5. 산경을 정리하면,

5-1. 대간은 백두에서 지리산까지 백두대간으로 이 땅의 중심 산맥이 되며 모든 물줄기를 크게 동서로 양분한다.

 

5-2. 정맥은 대간에서 가지를 쳐 나온 2차적인 산줄기로 큰 강의 유역능선 곧 原水分 능선이다.

따라서 정맥은 산줄기의 높이, 규모, 또는 명산, 진산 등과 관계하지 않고 아무리 낮고 미약한 산줄기라도 정맥의 산맥이기 때문에 끝까지 표현한 것이다. 예들들면 김포평야의 낮은 구릉이 바로 한강 유역을 가름하는 한남정맥의 줄기이므로 다른 산줄기에 우선해 뚜렷이 표시한 것이다.

 

정맥들로 형성된 강은,

우리나라 10대 강의 압록강, 두만강, 청천강, 대동강, 예성강, 임진강, 한강, 금강, 섬진강, 낙동강 등이다.

 

5-3. 기맥의 이름은 부여하지 않았다. 대간 · 정간과 정맥에서 다시 갈라져 나온 산맥으로 내[]를 이룬 능선이다.

 

6, 우리의 산맥개념은 현대의 산맥개념과는 다르다

 

6-1. 모든 산맥은 큰 강과 내, 그리고 골의 분수령으로 그 하나하나의 경계선인 분수령이다.

 

6-2. 산줄기의 시작과 끝남의 지점이 명확하다.

따라서 정맥의 시작은 특정한 산이고 그 끝남은 대체로 강 하구의 해안선까지 연결되어 있다.

 

6-3. 물줄기를 경계한 산맥이므로 지도사에서 전국토의 지형지세를 보다 쉽게 읽고 활용할 수 있다.

수계 중심으로 발달된 도시형성과 그 생활권역을 그 유역과 함께 파악할 수 있을 뿐아니라 골짜기까지의 수계 파악도 용이하게 하여 생활과 직결되게 하였으며 가장 중요했던 내륙 산골까지의 조운 영역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이같은 산맥 개념은 인간주의를 기본으로 한 자연지리를 바탕에 둔 것으로,

그 땅과 더불어 살아온 그 땅 사람들의 지리관인 地理心性(Geomentality)에 기본한 것이다.

 

7. 산경원리는 세분화되어 발달한 지역의 문화지리적 권역을 분계하고 있다.

예를들어 북부지방은 해서정맥의 이북지역, 중부지방과 남부지방은 백두대간의 태백산, 속리산 지역과 한남금북정맥,

그리고 금북정맥으로 이어지는 선에서 그 경계가 선명하며, 자연 · 인문 · 식생 · 기후 등 자연지리적 측면에서도 분명하다.

 

7-1. 취락의 발달로 인한 권역도 쉽게 파악되며 식생활, 주거양식의 구분과 분포도 이들 산맥의 선과 일치한다.

7-2. 북부 · 중부 · 남부의 음식문화가 다르다. 황세기젓문화권, 새우젓문화권, 멸치젓문화권으로 대별된다.

7-3. 주거양식에서도 남해안의 한옥에는 대청마루에 반드시 덧문이 있는데, 낙남정맥 북쪽에는 이런 구조의 집이 없다.

 

7-4. 방언도 경상도 말은 강원도 속초에서 전라도 여수지방까지 분포된다.

같은 전라도 말이지만 호남정맥을 기준하여 서쪽 광주말과 동쪽 산간 섬진강 유역인 곡성 구례말은 다르다.

경기도 수원 말과 이웃한 용인 이천 말이 다른 것은 그 사이에 한남정맥이 있기 때문이다.

 

8,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산맥은 장백, 마천령, 함령, 낭림, 강남, 적유령, 묘향, 언진, 멸악, 마식령, 태백, 추가령, 광주, 차령, 소백, 노령산맥 등이다.

 

이 산맥들은 1903년 일본의 지질학자 고토분지로[小藤文次郞]가 발표한 <조선의 산악론>에 기초를 두고,

지리학자 야스 쇼에이[失洋昌永]가 재집필한 <한국지리>란 교과서에 의거한 것이다.

이들 산맥은 지질구조선 곧 암석의 기하학적인 , 이것들의 삼차원적 배치의 층층을 기본선으로 한 것으로,

땅속의 맥줄기를 산맥의 기본 개념으로 한 것이다.

 

따라서 광주산맥이 금강산 북쪽 언저리에서 시작하여 북한강 상류를 서쪽으로 건너 북한산에 이르고,

다시 남쪽으로 한강을 건너 관악산 광교산으로 이어지고,

차령산맥은 설악산과 오대산 근처에서 시작하여 남한강을 건너 금강 하류를 끼고 돌아 대천 뒤쪽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처럼 산맥이 강이나 내를 건너뛰고 능선과 능선을 넘나들고 있으나 산맥이라는 개념이 땅 위의 어떤 線上을 기준하지 않고 땅속의 구조선을 기준하고 있기 때문이다.

 

 

7. 국토연구원의 산맥지도

 

1. 2005 1 6일 국토연구원에서 새로운 산맥지도를 제작 발표하였다.

위성 영상과 지리정보시스템(GIS) 등 첨단기법을 동원해 한반도 산맥체계를 3차원으로 재구성한 정확한 한반도 산맥지도를 완성했다.

국토연구원의 새 산맥지도는 金正浩 <大東輿地圖>의 산맥체계와 거의 일치했다.

 

2. 국토연구원은 한반도가 14개의 산맥체계로 이뤄져 있다는 기존 주장과는 달리,

48개의 크고 작은 산맥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국토의 등뼈에 해당하는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지리산까지 하나의 산맥줄기로 끊임없이 이어져 1494.3km에 걸쳐 줄기차게 뻗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3. 기존의 산맥지도에 나오는 멸악, 강남, 노령산맥 등은 구릉지이기 때문에 산맥이 아니라고 국토연구원측은 주장했다.

또 지금까지 알려진 바와 달리 낭림, 강남, 적유령, 묘향, 차령, 노령산맥 등 상당수 산맥은 사실상 노년기 상태인 구릉 형태여서 실제 산맥으로 분류하기 힘든 것으로 나타났다.

 

4. 차령산맥은 없다.

오대산에서 시작하여 치악산까지는 거친 산줄기가 이어진다. 그러나 치악산을 넘으면 산이 급격히 낮아져 남한강에서 끊긴다. 지질구조에 따라 설정하였기 때문에 외부의 모습은 다르다고 주장하지만, 지질구조도 다르다고 한다.

 

5. 현행 교과서 지도에는 백두대간인 북한의 낭림산맥과 남한의 태백산맥이 추가령 구조곡을 사이에 두고 단절된 것으로 나와 있다.

 

6. 하지만 지리학계는 이를 부정하고 있다.

기존 산맥지도는 지질구조로 분석한 것이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난 지형을 근거로 산맥을 분류한 국토연구원의 산맥지도와는 다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지리학자들은 국토연구원이 山脈의 개념을 자기들 멋대로 만들어 기존 산맥도를 틀린 것이라고 지적한 것이라며 노령산맥이 현재는 구릉지이지만 지질구조로 보면 산맥이 이어져 있다고 비판했다.

 

이 학자는 국토연구원의 분류방식이 <대동여지도>와 같은 지형을 근거로 했기 때문에 당연히 유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국토연구원의 산맥지도는 산맥지도가 아니라 <산경도>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국토연구원측은 산맥은 산의 겉모양으로 분류하는 것이 세계적인 기준이라고 반박하고 있다.

 

7. 국토연구원은 새로 그려진 산맥 지도를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교육인적자원부에 교과서 지도의 수정을 요구했다.

 

 

 

 

8. 산경도외 산맥도

8-1. 산경도

1. 땅 위에 실재하는 산과 강을 그렸다.

2. 산경은 산에서 산으로만 이어지고 실제 지형과 일치하는 자연스러운 선이다.

3. 우리나라의 전통 산지체계(풍수지리)이다.

4. 백두대간을 분기점으로 1개 정간, 13개 정맥이 있다.

5. 산줄기의 연속성이 나타난다.

6. 강의 분수계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7. 생활권  문화권 파악 용이하다.

 

8-2. 산맥도

1. 현행 사회과 부도에 실려 있는 것이다. 100년 전 일본인 지질학자에 의해 처음 만들어져 지금까지 교육되고 있다.

2. 땅 속의 지질구조를 기준으로 그렸다.

3. 산맥은 강에 의해 여러 차례 끊기고 실제 지형에 일치하지 않는 인위적인 선이다.

4. 산줄기가 불연속적이다.

 

 

산경도와  산맥도

 

 

 

 

 

 

조선 9개 대로

 

 

 

 

 

 

 

차가 올라갈 수 있는 가장 높은 고게

 

 

 

은 보통 폭포 밑의 못을 뜻한다.

탕은 움직인다wash, move’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떨어지는 물이 밑으로 쏟아져 물줄기가 탕 밑으로 내려가면서 주변 물이 위로 솟구치며 탕안의 석벽에 부딪치며 돌아 물이 항시 끓는 것 같이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 준다.

오랜 세월 동안 폭포의 물줄기가 반석盤石에 떨어져 水蝕作用에 의해서 만들어진 못을 탕이라고 합니다.

의 사전적 의미는 물이 고인 깊은 못이다.

, 폭포와 연결되어 있지 않은 河飾작용에 의해 형성된 못을 지칭한다.

의 사전적 의미는 늪이나 습지를 가리키고, 땅바닥에 우묵하게 패여 물이 고인 곳을 지칭한다. 늪보다 작게 움푹 패어 물이 고인 곳은 웅덩이라고 합니다.

탕의 경우는 폭포 밑에 있는 못으로 명확하게 구분 지을 수 있으나,

 

담과 소의 경우는 사전적인 의미가 각기 다르긴 해도 현실적으로는 구분 없이 혼용하고 있습니다. 또한 폭포가 쏟아져 물이 고이는 곳을 연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보통 못의 규모나 깊이에 따라 담, , 웅덩이 순으로 구분하기도 하나 이것은 정확한 기준이 아닙니다. 어쨌든 이런 표현들은 어느 때 누가 명명했는지 지명고地名考를 풀이할 길이 없으며, 그 지역 주민들의 감정이나 느낌에 따라 정해져 전해오는 표현들입니다.

 

과 현은 높은 산의 어깨를 지나는 통로를 뜻하며 사전적 의미는 같습니다.

영은 현에 비해 비교적 높고 험한 고지를 관통하는 통로이며,

현은 영보다 작은 뜻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재는 길이 나 있는 높은 산의 고개로 영과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의 사전적 의미는 높이 치솟은 지세가 가파른 고개를 의미하며, 마을과 마을을 연결하는 가파른 통로(고개)를 뜻합니다.

 

그러나 이런 구분은 탕, , 소와 같이 현실적으로 엄격한 구분의 기준도 없고 또한 구분의 의미도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 지역 주민들의 느낌에 따라 결정되어 전해진 것일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