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野 '비명횡사' 꼭 닮은 조선 北人의 거침없는 숙청…결말은

류지미 2024. 3. 17. 12:09

野 '비명횡사' 꼭 닮은 조선 北人의 거침없는 숙청…결말은

중앙일보

입력 2024.03.17 09:00

업데이트 2024.03.17 14:01

 

조지 오웰의 소설 '카탈로니아 찬가'는 스페인 내전 당시 파시스트 정권에 맞서던 반파시스트 세력이 스탈린주의파의 공화주의파 숙청이라는 '내부 총질'로 무너지는 과정을 생생하게 그린 작품입니다. 작가의 경험을 살린 이 작품은 권력의 배타적 속성을 잘 보여주는 소설로 꼽힙니다.


붕당정치가 활발했던 조선 시대에도 이와 유사한 상황이 여러 번 펼쳐졌는데, 그중 북인의 집권과 몰락은 가장 극적인 사례로 꼽힙니다.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의 한 장면. 중앙포토

 

한 지붕 두 가족, 남인과 북인
선조 집권 시 붕당이 시작됐을 때 먼저 주도권을 잡은 건 동인입니다. 주요 관직 수나 세력 규모에서 라이벌 서인을 압도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동인은 퇴계 이황을 따르는 세력(남인)과 남명 조식, 화담 서경덕을 따르는 세력(북인)의 연합체였습니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동인이라는 간판을 같이 내걸었지만 양측은 이질성도 적잖았습니다.

 

이황은 정통 성리학의 세계를 파고들었던 반면 조식과 서경덕은 불교나 도교는 물론 병법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다른 당파들은 조식과 서경덕의 그룹을 "학문이 얕다"라거나 "이단"이라고 무시했고, 같은 동인 그룹인 퇴계학파(훗날 남인)도 남명·화담학파(훗날 북인)를 얕잡아봤습니다.

 


서로 딴 살림을 차리는 건 시간문제. 결국 1589년 '정여립의 난'을 계기로 갈라서게 됩니다. '정여립의 난'의 진압 책임자였던 정철을 놓고 대립하면서입니다. 서인의 영수였던 정철은 무리한 조사로 악명이 높았는데 그 결과 동인 측 희생자가 다수 발생했습니다. 이때 희생이 컸던 북인계는 강경론을, 희생이 적었던 남인계는 온건론을 내면서 충돌하다 결국 딴 살림을 차렸습니다. 이때 남인 측 주요 인물인 우성전은 남산에 살았고, 북인 측 이발은 북악산에 살아 각 당파의 명칭이 됐습니다.

 

 

학맥의 지역적 기반을 살펴보는 것도 두 세력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동인 세력의 주요 기반은 영남, 그중에서도 TK(대구·경북)입니다. 선산, 대구, 안동 등 낙동강 상류입니다.


이 지역은 원래 산지가 많아 농지가 별로 없었는데 조선 전기 유력 사대부 가문이 적극적으로 개간하면서 세를 크게 불렸습니다. 부유한 지주가 된 사대부들이 교육에 투자하면서 김종직·김굉필·유성룡·김성일 등 조선을 대표하는 정통 성리학자들이 대거 배출됐고, 성리학적 질서도 어느 곳보다 강했습니다.

 

 

 
 

반면, 조식 문하를 따르는 북인의 기반은 진주·의령·고령·합천 등 낙동강 하류 서쪽으로 지금의 경남 서부입니다.

 


이곳은 낙동강 수운을 따라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했고, 토지도 비옥했습니다. 사람들은 이재에 눈을 떴고 상업자본도 다른 지역에 비해 넉넉한 편이었습니다. 이런 곳에서는 인간의 심성을 파고들며 도(道)의 실천을 논하는 형이상학적인 학문(성리학)이 곧이곧대로 자리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공자왈 맹자왈'보다는 병법과 풍수지리까지 포용하는 실용적이고 실천적인 북인의 학문이 세를 얻었습니다.

조선시대 동인과 서인의 분화.

 

 

임진왜란과 북인의 부상


'정여립의 난' 등으로 마이너리티 처지였던 북인이 빛을 본 것은 임진왜란 때입니다. 북인이 추종한 조식은 “티끌 먼지가 오장에 남았거든 바로 배를 갈라 흐르는 물에 보내리라”는 시를 쓸 정도로 무사의 면모가 있었습니다. 임종 때는 후계자 정인홍에게 책이 아니라 자신이 평생 차고 다니던 칼, 경의도(敬義刀)를 건네줬을 정도입니다.


북인은 정인홍·곽재우 같은 스타 의병장을 배출했고, 화의론을 꺼내 든 남인에 맞서 강력한 주전론을 펼치며 입지가 커졌습니다.


여기에 정권을 창출하는 '대어'까지 낚으며 결정적인 전환점을 맞이합니다. 차기 왕위를 두고 조정이 광해군파와 영창대군파로 나뉘어 있을 때 이이첨·정인홍이 이끈 대북 세력이 광해군을 지지한 것이죠. 선조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광해군이 왕위에 오르자 북인은 마침내 정계의 주류가 됐습니다.

 

 

거침없는 숙청, 빠른 몰락 
여당이 됐지만, 그간 소수파였던 북인은 맺힌 응어리가 많았습니다. '정여립 반란사건'으로 다수의 희생자가 나왔고, 조식과 서경덕의 학맥이라는 이유로 이단아로 취급받는 좌절도 겪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북인은 집권하자마자 이전 어느 당파보다도 폐쇄적이고 일당독주 분위기를 조성했습니다. 심지어 북인 내부에서도 분열과 숙청이 이어지면서 결국엔 북인 내 강경파인 대북 외엔 대부분 정계에서 소외됐습니다.


대북파는 자신을 '군자당(君子黨)'이라 칭했고, 그 외 세력은 '소인당(小人黨)'으로 깎아내리면서 다른 당파를 배제하는 데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학자들은 이런 대북의 강경노선이 마이너리티라는 불안함, 그리고 다른 목소리를 막아야 한다는 조급함에서 기인했다고 해석합니다.

 

광해군 시대 이후 북인의 분화. 강경파인 대북을 제외하고 대부분 정계에서 소외됐다.

 

이런 폐쇄성은 빠른 몰락을 불렀습니다. 인조반정 때 서인이 동원한 병사는 불과 500명. 그런데도 쿠데타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서인뿐 아니라 대북파에 의해 정계에서 퇴출당한 세력들이 합세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북인은 영창대군을 지지했던 소북이 축출되고, 인목대비 폐비 과정에서 다시 대북(찬성)-중북(반대)으로 나뉘는 등 '뺄셈의 정치'를 거듭하며 세력이 급격히 약화했습니다.
결국 고립무원의 처지가 된 북인 정권은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무너졌습니다. 고립을 자초한 결과였습니다.

 

2016년 '진박감별사'와 2024년 '비명횡사'


2016년 총선 당시 새누리당은 연초만 해도 과반에서 180석까지 가능하다고 예상했지만, 뚜껑을 열자 결과는 달랐습니다. 122석에 불과해 123석을 거둔 더불어민주당에 1당 자리마저 내줬습니다.


패배 원인으로 가장 많이 거론된 것이 친박계의 전횡입니다. 일부 친박계 의원들이 '진박감별사'를 자처하며 청와대와 다른 의견을 낸 김무성·유승민 등 한때 친박이었던 인사들을 압박하자 중도층 민심이 이탈했다는 것이죠. '우리 편'만 남기려다 선거를 내준 전형적인 '뺄셈의 정치학'의 교본으로 회자합니다.

 

김무성 자유한국당 의원이 당대표 시절이던 2016년 3월 부산 영도구 자신의 사무실에 갔다가 영도대교에 올랐다. 대표 직인을 가지고 갔다는 소문 탓에 소위 ‘옥새 파동’이 벌어졌다. 송봉근 기자

 

 

올해 총선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의 '비명횡사'가 단연 화제입니다. 연초만 해도 여권의 총선 악재로 꼽히던 김건희 여사의 '디올백' 논란은 '비명횡사'에 묻혀버렸습니다.


역대 선거마다 공천 잡음은 늘 있었습니다. 현역 교체율이 30~40%에 달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난 총선에서 비례정당(더불어시민당)을 포함해 180석을 차지한 대승을 거두다보니 공천에 탈락 의원도 많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민주당의 공천 파동이 크게 불거진 것은 현역이라도 친명계는 생존 확률이 높았고, 친명계 신인이 비명계 현역을 꺾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라는 게 정치권의 시각입니다. 이런 가운데 현역 평가 하위 10~20%로 통보받은 국회부의장 김영주 의원(4선)은 국민의힘으로, 설훈 의원(5선) 등은 이낙연 전 총리가 이끄는 새로운미래로 합류하며 총구를 민주당으로 돌린 상황입니다.

 

민주당 일각에서는 '비명횡사' 공천 배경에는 과거 당의 주류였던 친문계에 쌓인 앙금과 '소수파'라는 불안함이 작용한 것이라는 해석도 나옵니다.


문재인 정부 행정안전부 장관 출신으로 대표적 친문계인 전해철 의원(3선)이 2018년 경기지사 경선에서 '혜경궁 김씨' 논란을 주도한 것처럼, 친문계와 친명계는 문재인 정부 시절부터 껄끄러운 장면을 몇 차례 연출했습니다. 한 친명계 인사는 "지난 대선 때 친문계가 조금만 더 도왔어도 승리했을 것"이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586으로 상징되는 학생운동권의 주류로 활동하지 않았던 이 대표의 경력은 비주류로 분류되는 기준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배경이 친명계로 하여금 보다 확실한 '우리 편'에 공천을 주게 한다는 것이죠.

2024년 1월 10일 더불어민주당 비명계 모임인 '원칙과 상식' 이원욱(왼쪽부터), 조응천, 김종민 의원이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탈당 기자회견을 하기 위해 회견장에 들어서고 있다. 뉴스1

 

어쨌든 기준은 국민의 눈높이입니다. 이 대표가 말하듯 민주당의 공천이 '비명횡사'가 아닌 '공천혁신'이라면 2016년 새누리당과는 다른 결과를 쥐게 되겠죠.


참고로 한국갤럽의 정기 조사 결과 공천이 본격화한 2월 넷째 주 이후 민주당의 지지율은 35%(2월 4주), 33%(2월 5주), 31%(3월 1주), 32%(3월 2주)로 같은 기간 국민의힘(37%, 40%, 37%, 37%)보다 낮습니다.

 

 

  • dhk2**** 7분 전

    당원과 국민이선택한후보를 폄훼하는것은 옳지않다. 검찰독재는비난하지않고 당대표만비난하는수박은 퇴출이맞다. 민주당은 야당답게 개혁되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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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ia**** 9분 전

    형수 찢보 막말은 수천억원 막처먹고 수많은 사람이 죽은 죄명이 놈은 그만 두고 ... 돈 받은 사람 부패하고 21살 때 한 소설 막말이라고 그만 두라... 장난들 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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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aia**** 13분 전

    전라도엔 도덕시간이 없어서 도둑질 많이 하는 홍어변호사들 만 ㅈ너라공산당 국견의원 돈처먹는 자리 께차게 생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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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개 댓글 전체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