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달밤 김태오 시 나운영 곡

류지미 2024. 4. 1. 17:11

 

[가곡의 밤] 소프라노 박미자 - 달밤 ♪

김태오(金泰午, 1903~1976) 시

https://www.youtube.com/watch?v=wcIwJe6-g0g

 

Nov 16, 2022 예술의전당

2018 SAC 가곡의 밤: 3부 가곡의 향수

 

달밤 -김태오 시, 나운영 곡 -정영자 노래 -한국가곡100선

https://www.youtube.com/watch?v=wvgTaob8FdE

 

등불을 끄고 자려하니 휘영청 창문이 밝으오

문을 열고 내어다 보니 달은 어여쁜 선녀같이

내 뜰 위에 찾아오다

 

달아 내 사랑아 내 그대와 함께 이 한밤을

이 한밤을 얘기하고 싶구나

 

어디서 흐르는 단소 소리 처량타 달 밝은 밤이오

솔바람이 선선한 이 밤에 달은 외로운 길손같이

또 어디로 가려는고

 

달아 내 사랑아 내 그대와 함께 이 한밤을

이 한밤을 동행하고 싶구나

 

달밤 (김태오/나운영) - 메조 소프라노 백남옥

https://www.youtube.com/watch?v=1s2xO5cyHR0

  백남옥TV

Sep 27, 2023 #한국가곡 #가곡 #달

 

달밤 - 소프라노 강혜정 [제3회 창원신춘가곡제]

김태오 작시, 나운영 작곡

https://www.youtube.com/watch?v=ZJhs9GJTytE

 

 
Feb 1, 2024

경남오페라단 제3회 창원신춘가곡제

2023.3.23(목) 19:30 창원성산아트홀 대극장

 

 

 

가곡-달밤

https://www.youtube.com/watch?v=0ibobT3F2nw

Aug 6, 2022 #김태오 #나운영 #성남의조수미

 

 

 
달밤은

* 작곡가 나운영(羅運榮,1922~ 1993) 이  1946년에 처음 작곡했고 1976년에 수정한 곡이다.

 

나운영은 1922년 서울에서 출생. 미동보통학교,중앙중학교 졸업.  17세에 동아 일보에서 주최한 신춘문예에서 가곡 '가려나'로 수상을 하며 작곡가의 길을 걸었다.

 

1943년 일본 제국고등음악학교(帝國高等音樂學校)를 졸업했다.서울대, 이화여대, 덕성여대, 연세대, 세종대, 목원대, 전남대 등에서 교편을 잡았고, 교회에서 성가대를 지휘하고, 여러 합창단의 지휘를 맡았다. 서양음악과 우리 전통음악의 조화를 이루는 한국적인 음악을 작곡했다.  1993년에 사망했다.

 

달밤은 작곡가 나운영이  1945년에 중앙여자전문학교 교수로 부임했다가 부학장인 시인 김태오를 만나서 시집 ‘초원’을 선물 받고 그 안에 실려 있던 달밤에 마음이 끌려서 24세 되던 1946년에 작곡을 했다고 한다.

노래를 작곡한 나운영은 당시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모두 핍박하던 시기에 그런 시대적인 절박감이 오히려 작곡에 대한 욕구에 불을 지펴서 이 노래를 만들게 되었다고 한다.

 

이 곡은 1946년8월19일 경성중앙방송국에서 부인인 유경손(1921~2011)의 목소리로 초연되었으며 이관옥 선생(성악가)의 추천으로  서울대학교 예술대학 음악학부 주최 전국 중등학생 음악경연대회의 지정곡으로 선정되었다. (자료출처 : www.launyung.co.kr)

음역이 넓고 선율의 굴곡이 심한 아리아풍의 가곡으로 시대적인 혼란에서 오는 지식인들의 좌절감을 씻어주는 호방감이 담겨 있다. 가사는 달빛에 비친 고독감을 낭만적인 선율에 얹어 표현하고 있다.

 

작곡자의 어둡고 심각한 작풍과는 달리 낭만적인 향취를 풍기며, 시와 음악이 잘 부합된 아리아풍의 예술가곡이다.

 

 

1939년 어느 가을의 깊은 밤이었다.

일본의 폭압이 떨치던 시대에 세상은 황막하고 위태로웠다.

시인 김태오(金泰午)는 밤늦도록 촛불에 의지하여 서울 흑석동의 자택에서 책을 읽고 있었다.

그는 문득 책이 하얗게 밝아지는 느낌이 들어 무심히 창 밖을 보았다.

창을 열고 보니 밖은 마치 선녀들이 하얀 드레스 자락을 펴서 깔아 놓은 듯이 눈부시게 희었다.

그는 밖으로 나가 뜨락을 거닐다 시상(詩想)이 떠올라 한 편의 시를 읊었는데,

바로 그 시가 달밤이었다. (이형숙 저, <가곡의 고향>)

 

일제의 암운(暗雲)은 물러났으나 아직 여전히 세상은 안개와 구름 속이었다.

남의 힘으로 되찾은 이 강산의 백성들은 정처없이 떠도는 달마냥 방향을 잃고

남으로 북으로 떠돌아다니던 시절이었다.

나운영이 해방 직후 보았던 달은 일제 강점기 김태오가 보았던 달과 다름이 없었다.

여전히 백성은 고통받고 지식인들의 고뇌 또한 깊어갔다.

한 줄기 달빛만 이 고난받는 세대를 위로해 줄 뿐이었다.

 

김태오와 나운영이 시와 노래로 그려낸 달은 민족의 한과 슬픔을 삭여주는 살풀이이자

외로운 지식인들을 품어주는 인자한 길손이었다. 그리고 그 달빛은 오늘날까지

하늘에 떠올라 달동네와 어촌, 산막(山幕)과 쪽방촌에 그 형형(炯炯)한 광채를 드리워 줄 것이다.

 

달밤 - 테너 박홍섭-John Hong Park

https://www.youtube.com/watch?v=Oh8PLFEHB3g

 

 

* 시인 김태오(金泰午, 1903~1976)

1903년 7월 16일 서울에서 출생하였고 가족과 함께 광주로 이주하여 숭일학교에서 공부하였는데, 3.1운동 때 독립선언서를 배포하고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나 다시 광주로 내려와서 문필활동과 민족운동을 하였다. 1929년 일본으로 유학하여 일본대학 법문학부 문학과를 졸업하였으며 금정교회 집사로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1931년 광주YMCA의 총무로 일하였다.

 

 

현대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그는 1926년에 동아일보에 동화 ‘황금생선’을 발표하고 또한 동요 ‘입분달’을 발표하면서 왕성한 문필활동을 전개하였다. 1927년 방정환 등과 조선소년연합회를 조직하고 중앙집행위원으로 활약하였으며, 1928년에는 신간회 광주지회간사, 광주청년동맹 소년부 집행위원으로 전남소년동맹의 창립을 준비하다가 체포되어 금고 4월에 처해지는 등 세 번이나 옥고를 치루었다.

 

그는 직접 동요와 동화를 썼고 외국 문학 작품을 한글로 번역하는 등의 일을 했다. 시집 ‘초원(1939)’을 발간하였는데, 그의 시 ‘달밤’은 나운영이 작곡하여 널리 회자되었다.  대표작으로 ‘봄맞이 가자’, ‘달밤’ 등이 있다.

 

 

한편 김태오는 처형인 임영신과 함께 1934년 중앙보육학교를 인수하여 교원으로 재직하면서 부교장에 취임하였다. 1945년 중앙여자대학, 1948년 중앙대학으로 개편하면서 교수 겸 부학장, 1953년 중앙대학교로 발전하자 부총장으로 봉직하다가 1954년 은퇴하여 명예교수가 되었으며, 1976년 7월 25일 별세하여 중앙대학교장으로 장례를 거행하였다.

 

그의 저서로 ‘미학개론(1955)’,‘민족심리학(1950)’이 있으며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어 1994년 건국훈장을 받았다.

 

아호는 정영(靜影), 또는 설강(雪崗), 김태오는 민족운동가요, 문필가요, 교육자로 일생을 살았다.  1976년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