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전쟁, 백두인가, 장백인가? 2012. 7. 11. [SBS 스페셜] 역사전쟁, 백두인가, 장백인가? 1677年, 병사만 2백 명이 넘는 대규모 무리가 그들이 장백산이라 부리는 산을 향하고 있었다. 1684年, 지방 현령 늑초 일행이 만주 일대에서 지형조사를 겸한 지도 작성을 하고 있었다. 1712年, 오랄총관(烏喇摠管) 목극등(穆克登)이 조선 조정에 백두산 일대 사계를 요구하고 있었다. 공통점은 이들 모두 청 강희제의 명을 받았으며 현 백두산과 관련된 일이었다는 점이다. 청나라 강희제. 그가 젊었을 때부터 만주 특히 자신들의 발상지와 백두산 일대의 지리 정보에 보인 관심은 남달랐다. 무려 30년이 넘는 시간 동안에 집요할 정도의 집착이었다. 1677년에 무묵놀(武默訥) 일행은 청조의 발상지 장백산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