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정부 국민연금 개편 시도는 국민 호도하고 끝낸 사기극”
[선정민이 만난 사람]
연금 개혁 연구 25년, 윤석명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
“개혁 제대로 안하면 MZ에 ‘연금 고려장’ 당할수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달 취임 후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금 개혁을 노동·교육 개혁과 함께 위기 극복을 위한 3대 선행 과제로 제시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다. 정부는 연금 개혁을 논의할 사회적 대타협 기구인 ‘공적연금 개혁위원회’를 만든다는 계획이다. 정부가 구체적인 개혁안을 발표하지 않는 대신, 전문가와 이해 관계자들이 모여서 합의하도록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노후 소득 보장을 위해 기초연금을 월 30만원에서 40만원으로 인상하겠다는 공약도 내놓은 상태다.
국민연금 개혁 방식은 2057년으로 전망된 적립금 고갈을 늦추기 위해 현행 9%인 보험료율을 인상하거나 소득대체율(생애 평균소득 대비 노후 수령액의 비율)을 40% 안팎에서 조정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매년 수조원을 국고에서 지원하는 공무원·군인연금과 사학연금 등도 개혁이 절실한 분야다.
연금 개혁은 역대 정권에 ‘뜨거운 감자’였다. 고령화 때문에 연금 수급자는 늘어나는데 출산율 저하로 경제활동인구가 감소하면서 연금 재정이 악화되는 추세가 이어져왔다. 개선이 필요하다는 것은 정권마다 잘 알고 있지만 ‘더 내고 덜 받는’ 방식의 연금 개혁이 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정치적 판단이 우선적으로 작동하곤 했다. 국책 연구기관인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윤석명(61) 연구위원은 “문재인 정부의 연금개편은 대국민 사기극이었다”며 “재정 평가 기간 마지막인 70년 뒤에 가서는 연금재정이 훨씬 더 악화되지만, (도중에) 기금 소진 시점만 몇 년 연장시킬 수 있는 꼼수를 ‘재정 안정 방안’이라 부르면서 ‘공적 연금 강화’라는 미명 아래 개악을 개혁으로 둔갑시켰다”고 했다.
그는 “그동안 일부 공무원, 교수 등 이해관계자들이 카르텔을 형성해 정보를 은폐, 왜곡하며 연금 개혁을 지연시켰다”며 “정부 재정으로 모든 책임을 지라는 식으로는 개혁이 불가능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통령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제대로 된 연금 개혁이 가능하다”며 “‘연금 개혁 팩트 보고서’를 만들고 개혁위 회의를 유튜브로 생중계해 투명성을 높이자”고 제안했다.
공무원·교수 등 연금 카르텔 깨야
-연금 개혁이 얼마나 시급한가.
“추락하는 건 날개가 없다.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충당부채가 작년 기준 1138조원에 달한다. 국민연금도 시한폭탄이다. 국민연금 적립금으로 928조원(3월 말 잠정)을 갖고 있으나 2088년까지 누적 적자가 1경7000조원에 달하는 것이 국민연금의 실상이다. 지금 연금제도를 유지하려고만 해도 국민연금은 보험료율을 9%에서 18% 이상으로, 공무원연금은 18%에서 38%로 2배 이상 인상해야 한다. 사학연금도 개혁이 시급하다. 미룰수록 급속히 악화되는데도 ‘걱정도 팔자’, ‘수십년 뒤의 일’이라는 정서가 우리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어쩌다 이런 상황이 됐나.
“일부 공무원, 특정 정권과 야합한 전문가들이 카르텔을 형성해서 제대로 정보 공개를 안 해 이 지경까지 왔다. 기획재정부나 인사혁신처는 ‘연금 충당 부채는 나랏빚이 아니다’고 희석시키는데, 다 국민 부담이다. 일부 정치권과 시민단체에서는 ‘국민연금에 국가 지급 보장 조항을 넣자’는 말이 나온다. 제도를 고칠 생각 안하고 전부 국가가 책임지라는 식이다. 전세계에 이런 나라는 없을 것이다.”
공무원·국민연금 통합이 시대 흐름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중 어느 것이 더 시급한가.
“국민연금은 도입 10년 만인 1998년과 20년이 채 안된 2007년에 두 번 개혁했다. 공무원연금은 2010년과 2015년에 개혁했지만 여전히 2007년 국민연금 개혁 수준에 못 미친다. 공무원연금 등 인구의 3~4%에 불과한 특수직역연금 가입자들을 위해 매년 100조원씩 부채가 늘어나는 상황에서 국민연금만 개혁하자면 국민이 납득하겠나. 민간 기업과 달리 공무원은 거의 정년까지 가니까 연금액이 계속 늘고, 2배 더 내는 만큼 정부도 2배를 더 내준다. 공무원연금과 국민연금은 통합 운영하는 것이 시대의 흐름이다.”
-문재인 정부의 연금 개혁 시도를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정부의 연금개편안은 대국민 사기극이었다. 연금 재정 평가는 70년 뒤의 재정 상태를 보면서 제도 개편 논의를 해야 하는데, 문 정부는 평가 기간을 40년으로 줄여서 개혁안이라고 내놨다. 수명 연장을 감안하면 최소 70년 이상 추계해야 하는데도 단순히 기금 소진 시점이 몇 년 늘어나는 걸로 국민을 호도했다.”
기초연금·국민연금 감액 폐지해야
-진보 진영에선 유럽처럼 국가가 노후를 책임질 수 있다고 한다.
“그들이 좋아한다는 스웨덴·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도 2000년대 들어 연금 개혁을 통해 혜택을 상당수 축소하고 저소득 노인에게 선택과 집중하는 쪽으로 제도를 바꿨다. 핀란드에서는 ‘기대 여명 계수’를 도입해 수명이 늘어나는 만큼 연금을 깎고, 독일은 우리보다 보험료를 2배 이상 부담한다. 독일이나 일본에서 국가가 연금 지급을 보장한다는 주장도 사실이 아니다.”
-기초연금을 올리면 노인 빈곤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되지 않나.
“전체의 70%에 지급하는 기초연금은 투입 대비 빈곤 완화 효과가 크게 떨어진다. 우리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중 노인빈곤율 1위라는 건 맞지만 ‘평균의 함정’이 있다. 노인 소득 하위 25%는 우리나라 전체 인구 중에서 가장 빈곤한 집단이지만, 적게 잡아도 노인 상위 50%는 전체 연령층보다 재산이나 소득이 많다. 예컨대 공무원, 군인, 사학연금 수급자와 대기업 퇴직자 등은 젊은 층에 비해 훨씬 잘 산다. 그런데도 각종 공제가 있어서 예컨대 근로소득 월 400만원인 노인도 기초연금을 받을 수 있다. 또 고가의 부동산들을 소유하고 있어도 당장 가처분 소득이 없거나 적을 경우에는 빈곤한 노인으로 분류된다. 실제 우리나라는 OECD 회원국 중에서 이전 지출을 통한 소득재분배 효과가 제일 낮다. 기초연금 수급자 3분의 1 정도는 월 58만원 이하의 절대 빈곤층이지만, 3분의 1은 OECD의 상대 빈곤(월 97만원) 기준으로도 빈곤 노인이 아니다. 한국의 높은 노인 빈곤율의 실상이 노인 소득의 양극화에 있음에도 정치권이 이를 감추면서 노인 표를 얻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
-지난 대선에서 대부분 기초연금 10만원 인상을 공약했다.
“올리더라도 소득 하위 30%까지는 10만원, 30~50%는 5만원 정도로 차등적으로 인상해야 옳다고 본다. 공약 파기 얘기가 나와 대통령이 사과하더라도 일부 거둬들이고 역사의 평가를 받아야 한다. ‘엔(n)분의 1′로 빈곤 해소가 가능하다는 것은 유럽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 개념을 극도로 왜곡시킨 비겁한 논쟁의 부산물일 뿐이다. 2030년 기초연금 지출액 49조원은 경항공모함 33척, 중대형 항공모함 7척을 건조할 수 있는 막대한 돈이다. 미·중·러에 둘러싸인 나라에서 국방비 지출을 감안하면 OECD 평균 타령만 할 수는 없다. 과거 선거 때마다 정치권이 사고를 쳐서 결국 노인 70%에게 지급하는 기초연금을 만들어놨다. 이대로면 다음 대통령 후보는 기초연금 50만원으로 인상 공약을 할 수밖에 없다.”
-기초연금과 국민연금 연계 감액은 어떻게 해야 하나.
“국민연금이 일정 액수가 되면 기초연금을 깎는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 이로 인해 취약 계층들은 더 국민연금에 가입을 안 할 것이다. 연금제도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연계 감액 제도는 아예 없애야 한다. 성실한 국민연금 납부자가 더 받는 건 당연하고 동시에 절대 빈곤 해소를 위해서도 노력해야 한다.”
-연금 개혁의 원칙은.
“연금은 적절한 노후 보장을 해주면서 현 세대에 보편적으로 적용되고, 다음 세대까지도 지속 가능해야 한다. 세 부문에서 최대공약수를 찾는 것이 중요한데, 지금은 정치적 지속 가능성이 중요한 이슈로 떠올랐다. 현 세대에서 제대로 개혁하지 않으면 의사 결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MZ세대가 성장해서 노후 세대에 대한 연금 지급을 끊어버리는 ‘연금 고려장’을 할 가능성도 있다. 연금 제도 하나만으로 모든 정책 목표를 달성하려고 해선 문제 해결이 어렵고, 기초생활보장제도나 노동시장 개혁을 통한 고용 연장 등 여러 제도를 조합해 최선의 방안을 도출해야 한다.”
밀실 개혁 논의, 유튜브에 공개하자
-‘연금 개혁위’는 어떻게 운영해야 하나.
“과거 연금위원회와 사회적 대타협 기구에 들어가 보면 꼭두각시 위원들을 선정해 놓고 (진짜 전문가를) 끊임없이 압박, 협박한다. 팩트를 말하면 딴지 걸면서 시간을 허비하고, 대놓고 특정 집단을 대변한다. 모든 비공개 회의를 유튜브로 생중계해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이에 앞서 연금 개혁은 ‘팩트 보고서’ 발간부터 시작하자고 제안한다. 연금 담당 공단에서 보고서를 작성해 언론에 공개하고 전문가가 검증하는 방식으로 최소한의 팩트에 대한 합의부터 시작하자는 것이다.”
-연금 개혁이 가능할까.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연금 개혁할 때보다 지금 훨씬 분위기가 좋다. 정치권에서 핑계만 대는데 대통령이 조금만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가능하다고 본다. 대통령이 의지를 보이면 여론도 도와줄 것 같다. 연금 개혁이 시끄러워야지, 어떻게 조용하게 하겠느냐. 하지만 역사가 평가할 것이다.”
☞윤석명
고려대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미국 텍사스 A&M대에서 미국 사회보장제도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고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 들어갔다. 2000년 국민연금연구원으로 옮겨 연구조정실장을 지내다 2006년 보사연으로 다시 스카우트돼 사회보장연구본부장 등을 맡았다. 16년째 1급 연구위원을 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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