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를 빼앗긴 못난 민족의 설움과 정처 없는 방랑, 백년설의 <나그네 설움>
https://www.youtube.com/watch?v=vl9yDhtOtac
약목을 지나 왜관을 강 건너로 두고 성주로 간다. 낙동강 중·하류는 6·25 전쟁에 있어서는 ‘피의 저지선’이었다. 칠곡 다부동 전투의 장한 위국헌신은 여전히 왜관 철교 건너 ‘칠곡호국평화기념관’에 태극기로 펄럭인다.
성주로 가는 시골길은 견고한 고정형 비닐하우스 대열이 성주 참외의 명성을 말해준다. 성주로 가는 길은 그저 백년설의 자취를 찾기 위해서다. 백년설을 소환하자면 앞선 김천사람 고려성, 나화랑 형제와의 인연을 다시 상기해야 한다. 백년설은 청년 시절, 김천 봉산 천석꾼 집안 고려성의 집에 자주 와서 기거했다. 창녕 조씨의 한마을 친척 아지매 친정이 성주였고, 백년설의 생가 동네 이웃이기도 했다. 다재다능하기도 해 가수에 영화제작자, 레코드 회사 문예부장에, 사업까지 수완을 보였으나 역시 백년설은 가수였다.
성주사람 이갑룡은 이창민으로 개명하고 당대의 작사가 박영호로부터 받은 예명이 백년설(白年雪, 1914~1980)이다. 백년설(百年雪)과 음이 같고 본래 민족의 색깔인 백색을 좋아하는 그가 영봉 백두산의 서설(瑞雪) 같이 언제나 백의민족의 기상을 지니고 싶다는 포부를 담은 이름이다. 그가 부른 노래 제목은 그대로 식민지 백성의 한탄스러운 역사이자 유랑의 세월 그 자체다. <나그네 설움> <번지 없는 주막> <알성급제> <복지 만리> <대지의 항구> <눈물의 수박등> <고향설> <산팔자 물팔자> <만포선 길손> <삼각산 손님> <일자 일루> <눈물의 수박등> <비오는 해관> <남포불 역사> <두견화 사랑> <경기 나그네> <어머님 사랑> <아주까리 수첩> <마도로스 수기> <유랑극단> <마도로스 박> <춘소화월> <천리 정처>가 그의 노래다. 노래 제목의 키워드만 모아도 그 시대의 문화·생활사다.
일제가 그의 인기를 가만 둘리 없었다. 군국가요 <모자 상봉>(1942), 지원병 선전의 <조선 해협>의 오점도 보인다. 그러나 예인들의 친일 잣대 기준을 어디다 세워야 할지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대동아공영’의 전쟁 광기로 싸여 있는 시대에 대중가수에게 군국 일본에 저항하라는 요구는 무리일지도 모른다. 이미 총칼은 목에 와 있고 무대를 빼앗기는 일이 그들의 목숨을 건 일일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강요된 행위’에 대한 무죄선고나 마찬가지의 판단이 있었기에 백년설은 김대중 정부 시절 문화훈장 보관장(2002)을 받은 게 아니겠는가. 아껴두었던 노래다. 고려성이 작사하고, 이재호, 백년설 콤비가 만든 <나그네 설움>을 들어 본다.
오늘도 걷는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국마다 눈물 고였다
선창가 고동 소리 옛 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흐를 길은 한이 없어라
타관 땅 밟아서 돈 지 십 년 넘어 반평생 사나이 가슴속엔 한이 서린다
황혼이 찾아들면 고향도 그리워져 눈물로 꿈을 불러 찾아도 보네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워라 가야 할 지평선엔 태양도 없어
새벽별 찬 서리가 뼛골에 스미는데 어데로 흘러가랴 흘러갈쏘냐
<나그네 설움> 고려성 작사, 이재호 작곡, 백년설 노래, 1940, 태평레코드
1940년 경기도 경찰국에서 밤샘 조사를 받고 풀려난 고려성은 ‘낯익은 거리다마는 이국보다 차워라’를 담뱃갑에 적어가며 노래를 만들어 그날 같이 있던 백년설에게 준 것이 대히트였다. <나그네 설움>은 2진이었던 태평레코드가 오케나 콜롬비아 레코드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만든 계기였다. 3절까지 뼛골에 스미는 가사는 2/4박자 장조 트로트의 선율에 실려서도 처연하기 짝이 없다. 사람들은 망국의 설움에다 식민의 고통으로 뼈를 깎고, 광복 후에는 전란의 참극과 인생의 허무까지를 망라하는 ‘나그네’라는 쓸쓸한 함축을 사랑했기에 오늘날까지 노인들이 술 한 잔 걸치고 나면 거나하게 부르는 애창곡이 된 것 아닐까.
성주읍 성밖숲 공원 길가에 나 앉은 <나그네 설움> 노래비는 백년설이 성주의 자랑임을 말해주면서도 푸대접이다. <번지 없는 주막> <대지의 항구>와 함께 백년설 3대 명곡에 드는 <나그네 설움>은 아쉽게도 쓸쓸하다. 2003년 제1회 백년설 가요제는 성주의 재야단체가 친일의 티끌을 잡아, 끝내 시작이자 마지막으로 틀어막아 버렸다. 살아 있는 사람의 가요제도 만드는 판에 그렇게 백년설은 단숨에 녹아내리고 말았다. 적어도 고향 땅 성주에서는 그렇다. “친일? 그건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였다. 아니면 남양군도로 끌려가야 하는….” 반야월 선생의 증언은 그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리 엄격한 잣대로 친일을 들이대면 강요된 창씨개명의 희생자인 숱한 장삼이사(張三李四)는 어쩌란 말인가. 당연히 가요제는 부활해야 한다. 반향(班鄕) 성주(星州)가 재야에 밀려 뒤로 숨을 일이 아니다.
오늘도 백년설의 노래는 ‘가요무대’에서 결 고운 미성(美聲), 가늘고 감미로운 복고의 음색으로 부르는 배금성의 옛 가요로 이어진다. 일찍 세상을 뜬 백년설의 아내가 낳은 딸의 아들이니 외손자다. 그렇게 물결처럼 일렁이는 옛 노래의 유전자가 대물림하였으리라.
백년설. 심연옥 결혼(1955)
아직도 미국에 살아 있는 아내 심연옥 여사의 <아내의 노래>와 <한강>에 얽힌 이야기는 다시 할 날이 있으리라 갈무리해 둔다. (*심연옥 여사; 2021년 10월 4일 미국 죠지아에서 별세, 향년 93세)
출처 : 자전거생활(http://www.bicyclelife.net)
대중가요의 골목길(31)-경북 김천·구미·성주
- 기자명조용연 편집위원
입력 2021.09.28 15:03
출처 : 자전거생활(http://www.bicycle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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