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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방의 등불

류지미 2023. 8. 12. 08:11

cafe.daum.net현진건 학교

 

1941년 8월 7일 동양인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 문인 타고르가 세상을 떠났다. 그는 조선 민족에게 보낸 짧은 시로 우리나라 사람들과 널리 친숙해진 시인이다. 타고르는 1929년 3월 28일 동아일보 기자에게 6행의 매시지를 써 주었다. 동아일보는 주요한의 번역에 〈조선에 부탁〉이라는 제목을 붙여 4월 2일치 신문에 게재했다.

일찍이 아세아의 황금 시기에
빛나던 등불의 하나인 조선
그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
너는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

동아일보는 4월 3일치 신문에 6행의 영어 원문도 실었다.

In the golden age of Asia
Korea was one of its lamp-bearers
And that lamp is waiting
to be lighted once again
For the illumination
in the East.

우리나라와 배달겨레는 과연 타고르에게서 ‘동방의 등불’이라는 찬사를 들을 만한 존재일까? 1861년 8월 7일 태어난 민영환과 1855년 12월 11일 출생한 황현은 “충분히 그렇다!”라는 긍정을 받을 만한 민족정기를 보여주었다.

평생 동안 벼슬을 하지 않은 황현은 전남 구례 작은 서재에서 두문불출로 글을 썼다. 중국 망명을 시도했다가 뜻을 이루지 못한 황현은 후대에 역사의 진실을 전해야겠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혀 있었다. 이때는 이미 동학농민운동, 청일전쟁, 갑오경장이 연이어 일어나는 등 망국 위기 상황이었다.

전 참정대신 민영환이 1905년 11월 29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이 황현에게 들려왔다. 그가 피를 쏟으면 분사한 마루를 뚫고 대나무가 솟아났다는 말도 들었다. 황현은 피눈물을 삼키며 〈혈죽血竹〉을 썼다.

竹根於空不根土
대나무가 흙 아닌 허공에 뿌리를 내렸네
認是忠義根天故
하늘이 이 충의를 알아 그렇게 한 것이네
山河改色夷虜瞠
산천이 놀라고 오랑캐도 놀랐네
聖人聞之淚如雨
임금도 소식 듣고 비 오듯 낙루했네 (중략)
精靈所化現再來
공의 정신 살아나 대나무로 다시 오셨으니
驚天動地何奇哉
경천동지가 무에 이상하랴 (중략)
百回拂眼看是竹
눈 비비며 백 번 봐도 분명 대나무로다 (중략)
分明碧血噴未乾
틀림없이 푸른 피 치솟아 마르지 않고
點點灑作靑琅玕
점점으로 뿌려져 대나무가 되었구나 (하략)

1910년 8월 29일 기어이 나라는 일제에 병탄되고 말았다. 이윽고 9월 8일, 황현은 방을 쓸고 자리를 깨끗하게 정돈했다. 그리고 지필묵을 꺼내어 반듯하게 앞에 놓고 마주 앉았다. 그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허공을 응시하며 심호흡을 가다듬었다. 〈절명시絶命詩〉가 천천히 종이 위에 검은 흔적을 남겨갔다.

亂離潦到白頭年
어지러운 세상 머리만 백발이 되었구나
幾合捐生却未然
몇 번이나 이승을 떠나려다 실행치 못했네
今日眞成無可柰
오늘은 진정 어쩔 도리가 없도다
輝輝風燭照蒼天
바람에 흔들리는 촛불이 푸른 하늘을 비추네

〈절명시〉 중 한 구절인 “오늘은 진정 어쩔 도리가 없도다!”라는 대목은 읽는 이를 눈물짓게 한다. 사람은 누구나 살면서 ‘오늘은 진정 어쩔 도리가 없다’면서 무엇인가를 실행에 옮긴다. 그것이 범죄인 자도 드물지 않고, 권력남용인 정치가도 흔하며, 고문과 구타인 공무원도 상당하고, 부도덕인 일반인은 비일비재하다.

민영환과 황현 같은 인물 덕분에 우리나라가 “등불 한 번 다시 켜지는 날에 / 동방의 밝은 빛이 되리라”는 희망을 가질 수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오늘이 비록 기일인 9월 8일과 11월 29일은 아니지만, 민영환 공이 태어난 축일이니 그 날을 기념해 한 잔 술을 들어도 좋으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