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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남조(金南祚,1927~2023)/『情念의 旗』

류지미 2023. 10. 16. 06:04

김남조(金南祚,1927~2023)

생애

1927년 9월 26일 경상북도 대구부(현 대구광역시)에서 태어났다. 일찍이 일본 후쿠오카시로 유학하여 규슈여자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귀국 후 1951년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어교육과를 졸업했다.


서울대학교 재학 중이던 1948년 <연합신문>에 시 <잔상(殘像)>, <서울대학교 시보>에 시 <성수(星宿)> 등을 발표하며 등단하였다. 6.25 전쟁 중에는 경상남도 마산시로 피난하여 성지여자고등학교 마산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1953년 이화여자고등학교에서 교사로 근무하다가 서울대학교·성균관대학교·숙명여자대학교 등에 강사로 출강하였다.
 


1955년 숙명여자대학교 전임강사가 되었고, 1958년에는 조교수에 정식으로 채용되었다. 1961년 부교수로 승진하였고, 1964년에는 정교수가 되었다.
 


1981년 가톨릭문인회 회장에 취임하였으며, 1984년에는 한국시인협회 회장, 교육개혁심의회 위원이 되었다. 1986년 한국여성문학인회 회장, 1987년 방송위원회 위원, 1988년 한국방송공사 이사 등을 역임하고, 1990년 대한민국 예술원 회원에 선출되었다. 1991년 서강대학교로부터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으며, 1993년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정년퇴임하여 명예교수가 되었다.


2000년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에 취임하였고, 2020년에는 등단 71년차인 93세의 나이에 마지막 시집을 발간했다. 대표작 '겨울바다'가 2020 수능특강 문학편과 2023 수능완성 국어에 수록되었다.

2023년 10월 10일 오전 향년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60년대를 대표하는 한국 문학가

 김남조
金南祚

1927~2023

신을 향한 사랑을 노래하다

 

 

『정념의 기 『情念의 旗』

여성시의 선각자들은 흔히 불행과 파국의 삶을 견디다 간다. 그들은 삶의 불행과 파국이라는 비싼 값을 치르고 상처와 환멸의 ‘시’를 얻는다. 개화기에 태어나 식민지 시대에 활동한 탄실 김명순이 그렇고, 일엽 김원주와 정월 나혜석이 그렇다. 시대를 너무 앞지른 그들의 자유 지향적인 삶의 태도는 기질에 따른 방종으로 매도되기 일쑤다. 그들은 ‘작품 없는 문학 생활’을 영위했다는 험담을 듣곤 한다. 그들의 개체적인 삶은 으레 불행에 차압당한다. 그들은 유교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라는 당대 사회의 지배적 윤리와 규범의 완강한 새장 속에 갇힌 가엾은 새들이었다. 새장 속에서 퍼덕이던 그들의 날개는 이내 찢기고, 날카로운 울음 소리만 반향 없는 남성 중심주의 시대 속으로 길게 퍼져 나간다.

 

뒤를 잇는 노천명과 모윤숙은 극단적인 남성 중심주의에 따른 몰이해의 벽을 넘어서기는 하지만 식민지 시대의 부역이라는 원죄를 뒤집어쓴다. 그들의 삶에는 영욕이 교차하며 지나간다. 그러나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김남조(金南祚, 1927~ )의 경우는 선각자들과 다른 길을 걷는다.

에로스의 향기 속에서 영원하고 절대적인 신을 향한 사랑을 노래한 김남조

 

그는 제도와 인습이 강요하는 불행으로부터 비켜나 있으며, 친일 부역자라는 원죄를 뒤집어쓰지도 않는다. 1960년 네 번째 시집 『정념(情念)의 기(旗)』를 펴낸 김남조는 가부장제의 억압 밑에서 한과 슬픔의 정서를 정갈하게 내면화한 여성성에서 자신의 시적 상상력을 길어올린다. 그의 시는 지고 지순한 사랑과 욕망의 시다. 그의 시는 짙은 에로스의 향기로 가득 차 있다. 그럼에도 시인은 거기서 육욕의 사랑을 탈색시키고 그 빈 자리를 영원하고 절대적인 신을 향한 사랑으로 대체하려고 한다. 바로 그 접점에 김남조 시의 매혹이 있다.

 

김남조는 1927년 9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난다. 대구에서 초등 학교 과정을 마친 그는 일본으로 건너가 후쿠오카의 큐슈(九州)여고를 나온다. 일본에서 돌아온 그는 서울대학교 문예과를 수료하고 다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국문과에 재학중이던 1950년 『연합신문』에 시 「성숙」과 「잔상(殘傷)」을 발표하며 문단에 나온다. 그는 1951년 피난지에서 대학을 마치고 성지여고 · 마산고 · 이화여고 교사를 거쳐 서울대 · 성균관대 강사로 활동하던 1953년 첫 시집 『목숨』을 내놓으며 본격적인 문학 활동을 펼치기 시작한다. 1955년 숙명여대 전임 강사로 있을 때 그는 시집 『나아드의 향유』를 발간하고, 조각가 김세중과 결혼한다. 1958년에는 초기 시에서 보이던 고립된 자아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교감이 가능한 보편적 정서를 담아낸 시집 『나무와 바람』을 펴내고, 이것으로 ‘자유 문학가 협회상’을 받는다.

1960년 그는 한결 더 겸허한 태도로 인간이기 때문에 갖게 되는 고독 · 고뇌 · 비애 같은 정서와, 신앙에 바탕을 둔 구도적 자세를 겹쳐 보여준 시집 『정념의 기』를 펴낸다. 여기서 ‘기’는 정념의 고독과 허무를 내면화하고 있는 시적 자아를 표상하는 이미지다.

내 마음은 한 폭의 기(旗) / 보는 이 없는 시공(時空)에 / 없는 것모양 걸려 왔더니라. //
스스로의 혼란과 열기를 이기지 못해 / 눈 오는 네거리에 나서면 //
눈길 위에 / 연기처럼 덮여 오는 편안한 그늘이여, / 마음의 기는 / 눈의 음악이나 듣고 있는가. //
나에게 원이 있다면 / 뉘우침 없는 일몰이 / 고요히 꽃잎인 양 쌓여 가는 / 그 일이란다. //
황제의 항서(降書)와도 같은 무거운 비애가 / 맑게 가라앉은 / 하얀 모랫벌 같은 마음씨의 / 벗은 없을까. //
내 마음은 / 한 폭의 기 //
보는 이 없는 시공에서 / 때로 울고 때로 기도드린다.
 
김남조, 「정념의 기」, 『정념의 기』(정양사, 1960)
인간이기에 갖게 되는 고독과 고뇌 및 비애와 신앙에 바탕을 둔 구도적 자세를 겹쳐 보여준 시집 〈정념의 기〉

 

이 기는 끊임없는 에로스의 욕망으로 흔들리고 있는 기임과 아울러 종교적 성스러움과 정결함을 지향하는 기다. 이 기의 비애가 무거운 것은 그것이 안고 있는 모순 때문이다.

 

1963년 김남조는 다섯 번째 시집 『풍림(楓林)의 음악』을 펴내고 ‘오월 문예상’을 받아 문학적 입지를 굳힌다. 1967년 시집 『겨울 바다』를 펴낸 그는 1971년 시집 『설일(雪日)』과 전 6권의 합본 시집 『김남조 시집』을 잇달아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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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바다에 가 보았지 / 미지(未知)의 새 / 보고 싶던 새들은 죽고 없었네 //
그대 생각을 했건만도 / 매운 해풍(海風)에 / 그 진실마저 눈물마저 얼어버리고 //
허무(虛無)의 / 불 / 물이랑 위에 불붙어 있었네 // 나를 가르치는 건 / 언제나 / 시간(時間)······ / 끄덕이며 끄덕이며 겨울 바다에 섰었네 // 남은 날은 / 적지만 //
기도(祈禱)를 끝낸 다음 / 더욱 뜨거운 영혼(靈魂)을 갖게 하소서 / 남은 날은 적지만······ //
겨울 바다에 갔었지 / 인고(忍苦)의 물이 / 수심(水深) 속에 기둥을 이루고 있었네

김남조, 「겨울 바다」, 『겨울 바다』(상아출판사, 1967)

이 시에서 두드러지는 것은 ‘그대’의 없음이다. 시적 화자가 사랑했던 ‘그대’의 부재 앞에서 감당해야 하는 것은 현실이 안겨주는 상실의 아픔이다. 그 허무를 되새기는 것은 마치 “불붙는” 것처럼 아프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그것도 사그러들 것을 화자는 이미 알고 있다. 화자는 언젠가 지금은 없는 ‘그대’와 함께 온 적이 있을지도 모르는 겨울 바다에서 그 부재의 존재를 기억 속에서 끄집어내며 조용히 반추한다. ‘그대’가 부재하는 현실을 담담하게 참고 견디며 내면화하는, 그 운명 순응적인 시적 화자의 내면에 채워지는 것은 무욕과 초연성에서 비롯되는 평화다.

 

이 무렵에 김남조의 시는 여성성에 침잠하는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체념적이고 수동적인 정서의 언어에서 한결 감각적이고 동적인 언어로 나아가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애욕에서 비롯되는 갈등과 오뇌를 조용히 삭이며, 이것을 절대자에 대한 사랑으로 승화시키려는 의지를 담아낸 시집 『사랑 초서(草書)』가 나온 것은 1974년의 일이다. 이 때 김남조는 사랑이 곧 자신의 인격이라고까지 선언해 시단과 독자들로부터 “사랑의 시인”, “신생명파 시인”으로 불리게 된다. 김남조는 같은 해에 ‘한국 시인 협회상’을 받으며 한국을 대표하는 여성 시인으로 자리매김된다.

 

이후에도 그는 1976년 시집 『동행』, 1983년 시집 『빛과 고요』, 1984년 선시집 『눈물과 땀과 향유』, 1988년 시집 『바람 세례』와 시선집 『마음 안의 마음』, 1995년 시집 『평안을 위하여』, 1998 시집 『희망 학습』 등을 내놓으며 꾸준히 시작 활동을 펼쳐나간다. 체념적이고 수동적인 정서인 고독과 허무를 삶의 인과론적 필연성으로 바탕에 깔고 들어가는 김남조의 시는 사회적 맥락이 결락된 참회와 속죄, 용서와 인내의 언어로 점철되어 있다. 이런 점은 일정한 감동과 정화력을 내장하고 있으며, 그의 시에 많은 독자를 끌어들이는 요인이기도 하다.

 

그는 시작 활동을 하는 한편 ‘한국시인협회’ 회장,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에 피선되어 문단 활동에 나서기도 한다. 문단에서 쌓은 공로로 김남조는 1985년 제33회 ‘서울시 문화상’, 1988년 ‘대한민국 문화 예술상’을 받는다. 이어 1990년 예술원 회원에 피선되고, 1993년 숙명여대에서 정년 퇴임을 한 뒤에는 같은 학교의 명예 교수가 된다.

 

1927년 9월 26일 경북 대구 출생.

1944년 일본 후꾸오까(福岡)시 규슈여고(九州女高)졸업.

1947년 서울대학교 문예과(文藝科) 수료.

1951년 서울대 사범대 국문과 졸업. 마산 성지여고, 마산고 교사.

1953년 이화여고 교사. 서울대, 성균관대, 숙명여대 강사.

1955년 조각가 김세중(1928. 7. 24. ~ 1986. 6. 24.)과 결혼, 숙명여대 교수 취임.

1984년 한국시인협회 회장.

1986년 한국여류문학인회 회장. 김세중 별세.

1988년 한국방송공사(KBS)이사.

1990년 예술원 회원.

1993년 숙명여자대학교 정년퇴임,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