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ife & Happiness

“혼자 죽으면 얼마나 듭니까?” 70대 싱글남의 ‘고독사 예약’

류지미 2023. 12. 13. 09:16

“혼자 죽으면 얼마나 듭니까?” 70대 싱글남의 ‘고독사 예약’

2023.12.05

에디터김새별

 

어느 유품정리사의 기록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의 목소리였다.
33평 아파트에 사는데 유품을 정리하려면 견적이 얼마나 나올지 묻는 전화였다.

누가 돌아가셨나 싶어 평소대로 고인의 성별이나 연령대를 물었다. 그에 따라 짐의 양이 달라지고 내 직업적 감에 따라 대략의 평균치가 있었다.
돌아온 대답이 의외였다.

 

“내가 혼자 살아요.
 나중에 내가 죽기 전에 마지막 정리에 필요한 비용을 미리 알아두고
 준비해 두려고 합니다.”

내가 당혹스러웠다.


“목소리가 아직 젊으시고 정정하신걸요.”
이렇게 말씀드렸지만 짧은 순간 온갖 상념이 오갔다.

 

 

고독사를 예약하는 이들.
요즘엔 그런 문의전화가 가끔 걸려온다.
내 유튜브채널에 업로드된 영상을 보았거나, 책을 읽고 전화하는 것이다.
모두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의 전화였다.
이혼이나 사별 또는 결혼하지 않아 가족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리고 흔히 ‘고독사’ 하면 떠올리는 안 좋은 말년들이 아니다.
하긴 ‘고독사 예약’을 하는 분들이라면, 어지간히 꼼꼼한 이들일 게다.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직했어요.
 혼자 사는 것이 좋아서 혼자 살았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언제 죽을지 모르잖아요.
 그래서 더 늙고 힘이 없어지기 전에
 미리 준비해 두려고 해요.”

 

어쨌든 나도 타인의 물건을 정리하는 사람인지라 유품이든, 살림살이든 어떻게 정돈해야 하는지는 꽤 익혀 왔다.
다소 이상한 상담이 됐지만 이런 말씀을 드렸다.

 

“한번에 하려고 하지 마시고
 조금씩 필요없는 물건들 위주로
 정리해 보시면 어떨까요?”

 

예전에 어디서 들은 적이 있다.
3개월 이상 같은 곳에 놓인 물건들 중 실제로 사용하지 않은 게 있다면 버리라고.
자신의 삶에 필요없는 짐일 뿐이니 과감히 정리하라는 것이다.

 

고독사 현장에 가보면 짐이 너무 없어 쓸쓸한 집도 있지만, 반대로 짐이 너무 많은 집도 있다.
수십 년 전부터 안 입고 버려뒀을 옷가지들부터, 본인이 기억이나 할까 싶은 오래된 물건도 많다.
아껴 먹으려고 놔뒀나 이미 유통기한이 지난 건강식품들도 있고.
냉장고 옆에 끼워둔 검은 비닐봉지 뭉치들은 어느 집에서나 볼 수 있는 흔한 광경이다.

 

 

애장품은 주인이 살아 있을 때나 소중할 뿐이다.
가족에게도 소중하지 않을 수 있다.
또 고독사가 발생한 집 안엔 시취가 심하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물건이라도 쓰레기 신세를 면치 못한다.

 

본인의 고독사 유품정리를 문의해 온 어르신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
70세가 넘도록 혼자 살았고, 퇴직 후부터 타인과의 교류도 끊었다고 했다.
사람이 싫어서라기보단 의미없는 만남들이 필요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고.
그냥 혼자 운동하고 밥 먹고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자신에게 맞는 삶의 방식이었다.

 

“실례가 되지 않는다면, 한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그럼요. 편하게 물어보세요.”
“혼자 살아오신 것에 대해 후회하지 않으세요?”
“전혀 후회하지 않아요. 저는 행복하게 살았고, 즐기며 살고 있습니다.”
한점의 티끌없이 맑은 목소리였다.

 

사람마다 성격이 다르고 삶의 방식 또한 다를 것이다.
어떤 사람은 고요와 적막을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누구에게나 마지막은 찾아온다.
노인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죽고 난 뒤를 걱정했다.

 

“죽고 난 뒤에 바로 발견되지 않는다면, 정리하는 비용이 많이 들겠죠?”
“네. 아무래도 오랜 시간이 지나면 상황이 심각해지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발생됩니다.”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것처럼 조금씩 미리미리 정리해 두어야겠네요.”
“아직 정정하시고 앞으로도 건강하실 테지만 필요하지 않은 물건들을 쌓아놓고 사는 것보단 정리해 두는 것이 좋죠.”
“감사합니다. 나중에라도 혹시 필요한 상황이 생길 수 있으니 대표님 연락처를 유서에 적어놓아야겠어요.”
“건강하세요.”

 

 

건강하시라는 말을 하고 전화를 끊었다.
노인의 전화를 받고 나서 한동안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기대하건대 내게 앞으로 20년 이상의 시간이 더 남아 있다면.
그렇게 20년을 더 살고 나면 나도 담담히 내 마지막을 위해 하나씩 정리할 수 있을까.
죽음이란 누군가에겐 닥친 현실이고, 또 다른 이에겐 먼 미래의 일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게 아니라면 누구나 자신의 마지막을 가늠하지 못한다.

 

이 일을 하면서 다행히도 나는 한 가지는 깨달았다.
아름다운 마무리는 아름다운 삶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매순간 잊어버리고 후회를 거듭하지만 또 이렇게 다시 다짐하길 반복한다.

 

 

잘 살아내겠다고.
사는 동안에는 사는 것처럼 살자고.

에디터

  • 유품정리사 또는 특수청소부라고 불린다. 2009년부터 고독사, 자살, 범죄 피해 현장의 유품 정리와 특수 청소를 하고 있다. 삶의 의지를 놓아버리거나 도태되는 많은 이들의 사연을 알리고자『떠난 후의 남겨진 것들』을 출간했다. 유튜브 채널도 운영 중이다.

 

  • capi**** 2023.12.05  13:41

    어느 50대 초반 남성이 간성 혼수로 원룸에서 사망했는데 옆에는 젊은 여자들이 홀딱 벗고 나온 AV 잡지 과월호 수십권과 야동 비데오테잎이 있었다더군요. 현실과 망상은 너무나 다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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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kym**** 2023.12.05  07:48

    오래전 뉴스지만 기억하고 있는 기사가 하나 있습니다. 홀로 나이드신 분의 부고 소식이 였는데, 집에는 수많은 책들과 깔끔하게 정리된 방만 있는 곳에서 한세상 잘 살다 간다는 짧은 편지만 남아 있는분의 죽음에 대한 기사였던걸로 기억합니다. 아픔도 고독도 기사에는 없어서 더 자세한 사정은 알 수 없으나 그 편지만으로도 삶을 알 수 있을것만 같아서 기억에 참 오래 남는거 같습니다. 정리하는 삶이라는건 참 많은 생각을 가져오게 하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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