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n Arts

나그네(박목월)

류지미 2024. 4. 30. 05:21

 

완화삼(玩花衫)

- 목월(木月)에게

 
- 조지훈
 
차운 산 바위 우에 하늘은 멀어
산새가 구슬피 우름 운다.
 
구름 흘러가는
물길은 칠백 리(七百里)
 
나그네 긴 소매 꽃잎에 젖어
술 익는 강마을의 저녁노을이여.
 
이 밤 자면 저 마을에
꽃은 지리라
 
다정하고 한 많음도 병이냥 하여
달빛 아래 고요히 흔들리며 가노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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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그네

~박목월~

 

 

박목월 조지훈 낙화[1] 에 답한 시. 실제로 이 시의 부제로는 술익는 강마을의 저녁 노을이여~지훈라는 대목이 붙어 있다. 한국 현대 문학에 길이 남을 화답시라 할 수 있겠다.

1946년 발간된 박목월·박두진·조지훈의 3인 공동시집 청록집에 수록되었다.
 

[1] 나그네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완화삼(부제:목월에게)에 대한 답시가 아니다. 완화삼에 대한 답시는'밭을 갈아'라는 작품이다. 박목월 생전에도 이미 잘못된 정보가 널리 퍼져 있어 에세이 '밤에 쓴 인생론'에서 밝힌 바 있다.

 

나그네
박목월



강나루 건너서
밀밭 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길은 외줄기
南道 삼백리

술 익는 마을마다
타는 저녁놀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나그네

 

창작 배경

이 시가 만들어진 데에는 이런 이야기가 있다.

박목월이 고향 경주 조지훈을 초대하였다. 조지훈은 경주로 찾아가자 두 사람은 문학과 사상과 시국[2]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때 경험했던 박목월의 인정과 경주의 풍물이 기억에 자꾸만 남았던지, 조지훈은 박목월에게 보내는 편지로 자신을 달래다가 완화삼을 지어 박목월에게 편지 삼아 보냈다.

이 편지를 받고 박목월 역시 조지훈과 같이 자신과 뜻을 함께할 수 있는 문학적 동지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쳤던 듯 한동안 통곡하고는 답하는 시를 적어 부쳤으니, 바로 '나그네'이다.

박목월이 완화삼에서 인상 깊게 읽었던 구절이 바로 "술익는 강마을의 저녁놀이여."였다. 그래서 시제 밑에 그 구절을 집어넣고 시구 속에도 술 익는 마을마다/타는 저녁놀 하는 싯귀를 넣었다.
 
[2] 이때는 일제 말이었다. 사실상 등단하자마자 절필한 것이나 다름없던 두 사람이 하였을 대화는 미루어 짐작 가능하리라.
 

 비판

시로서는 드물게 창작 배경이 만천하에 드러났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 자체는 당대의 시대상황을 외면했다는 비판을 자주 받는다. 이런 비판에서는 일제에 의한 수탈이 절정에 이르렀던 1940년대에 이 시에서와 같이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시골 풍경이 어디 있느냐는 말이 일반적으로 언급된다. 게다가 '강나루 건너 밀밭 길'이라는 시어를 통해 이 시의 배경이 늦봄임을 알 수 있는데, 추수 직후에도 수탈 때문에 먹을 것이 없었던 당시의 농촌에서 보릿고개에 술을 빚는다는 것은 현실을 외면한 수준이 아니라 도피나 왜곡이라는 극평도 있다. 이러한 비판은 이 시의 창작동기나 다름없는 완화삼에도 비슷하게 적용되고, 나아가 청록집 수록 작품들 전체에 두루 해당된다.[3]

이에 대해 고등학교 참고서나 각종 해설서에서는 '주인이 집을 잃고 나그네가 된 심정'을 묘사했다고 하거나, 아예 시대상황을 언급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다.

박목월의 시를 두고 심사가 뒤틀린 고은은 기어이 만인보에다가 육영수의 선생 노릇을 한 이력을 섞어 "달에 구름 가는가 구름에 달 가는가"라고 조롱하였다. (<박목월> 전문은 고은 문서 참조.)
 
[3] 박두진의 대표작 중에는 <해>(후에 마그마의 <해야>라는 노래에 영향을 준 시)가 있어 좋은 새날에의 갈망을 드러내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에 시인에 대한 인신공격은 조금 덜한 편이지만, 정작 <해>는 청록집에 수록된 시가 아니다.

반론

하지만 시에서 화자와 시인이 꼭 같을 필요는 없다. 예를 들면 2018년에 어떤 사람이 '학생들이 행복한 세상'을 주제로 시를 썼다고 하자. 그렇다면 이 시인은 청소년 행복지수이 OECD 하위권인 대한민국의 현실을 왜곡했기 때문에 비판받아 마땅할까? '술 익는 마을'이 현실을 표현한 구절이라는 말은 어디에도 없다. 작가가 만들어 낸 상상의 세계라는 해석도 충분히 할 수 있다. 작가가 본인이 사는 시대상황과 다른 시를 쓴 것이 비판받을 일이라면, 판타지 소설들은 모두 불쏘시개고 김소월이 남자인데도 시에 여자 화자를 등장시켰다고 비판받아도 이상하지 않다. 이러한 비판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은 독자의 몫이다.

 

 

블로거 탄> : 이쯤에서  불현듯 생각나는 불쾌한 그 쪽 흉상이...

 

비판은 자유다.

자유라고서 제 입맛대로 편향성에 따라 편 따라 달라지는 이상한 비판이나 반론은 이미 더러운 악담, 막말일 뿐이다.

 

특히 자칭 진보라는 좌파 진영의 삐딱한 사시적 외눈팔이 막말설사는 차마 들어줄 수가 없다.

성추행 성도착자 고은을 보라. 이런 자는 문학을 더럽히는 하질 불량품,  인간 등외품에 지나지 아니한다.

 

앞서 가신  선대나 지난 역사, 그리고  인생 선배들에 대한

후대의 비판, 반론은 가능한한  삼가하고 지극히 신중하고 조심할 일이다. 적어도 볼성사납지는 않아야 인륜에 적당하다 하겠다.

 

사회의 철퇴를 맞고 "머리카락 보일라 꼭꼭 숨어라"  고은 같은  막가판 인간  말종들의 짓거리는 논급 가치조차 없기에 내 생각만 잠시 지저분하고 어지러울 뿐이다. 이 인간  억수로 설치더니 머리칼도 안 보이니 세상이 아름답다.

 

어느 유명한 문인을 이상한 무리가 광견처럼 달라 붙어 짖어대면 ...은근히 좋아 미치겠다는듯 광견류  대표 문인도 있더라..이상한 그 쪽 두상들...

 

그게 문인인가?

아름답지 못한 생각과 언동에 은근히 웃음 짓는 그 불량심.... 그게 어디 사람이기나 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