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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령鐵嶺은 한양(지금의 서울)에서 원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고개

류지미 2023. 5. 30. 10:34

철령의 설경 (출처 자주시보)

 

김화평야와 민통선 DMZ를 넘으면 광삼평야와 남대천이 펼쳐진다.

 

 

입력 2020. 9. 29. 06:53

(평양 노동신문=뉴스1) = 북한 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2020년 9월  29일 다가오는 당 창건 75주년(10월10일)을 기념해 당의 역사를 돌아보고 관련 사진을 게재했다. 신문은 사진과 함께 "철령이여 길이 전하라, 위대한 장군님의 불멸의 선군영도 업적을"이라고 덧붙였다.

 

 

높이 685m. 고개  철령(鐵嶺)은.

함경남도 안변군 신고산면과 강원도 회양군(현 북한의 금강군) 하북면 사이에 있는 고개로,  군사 요새를 만들고 철령관(鐵嶺關)이라 불렀다.

 

철령관(鐵嶺關)을 중심으로

동쪽인 강원도는 관동(關東)지방,

북쪽인 함경도는 관북(關北)지방,

서쪽인 평안도는 관서(西)지방으로 불린다.

(신증동국여지승람 등)

 

철령(鐵嶺)은. 서울과 관북지방 사이, 회양과 고산, 안변을 연결하는 교통·군사상의 중요한 고개였다. 

 31번 국도로 넘을 수 있으며, 중부 지방과 관북 지방을 잇는 중요한 교통로입니다.

 

고산은 고개 북쪽, 회양은 고개 남쪽에 발달한 영하취락(嶺下聚落)이다. 

철령에는 지금도 석성(石城)터가 남아 있고 부근에 고음폭포(鼓音瀑布) ·취적5경(吹笛五景) 등이 있다.

 

서쪽의 풍류산(風流山)과 동쪽의 장수봉(將帥峰)이 천하의 난관을 이루며 북한강과 안변 남대천(安邊南大川)의 수원이다.

 

1388년(고려 우왕 14) 명나라가 철령 이북은 본래 원나라 땅이라 하며 요동(遼東) 관할하에 두겠다고 통보해오자, 고려에서는 이에 반대하고 철령뿐만 아니라 그 이북의 공산령(公山嶺)까지도 본래는 고려의 영토라 하여 요동정벌을 결의하였다.

 

 당시 실권자였던 최영은 당연히 이를 받아들이지 않고 요동정벌에 나섰는데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정권 자체가 바뀌게 되는 계기가 됩니다. 이성계의 위화도회군(威化島回軍)으로 요동정벌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나 철령 이북의 땅도 명나라에 귀속되지 않았다.
 

철령을 넘으면 삭방(朔方)이라 하였는데 비록 고개 하나에 불과했지만 이 고개를 사이로 이쪽과 저쪽의 풍물과 민정(民情)이 서로 달라 관념상의 높이는 실제보다 훨씬 높았다.

 

 
 
백사(白沙이항복(李恒福,1556-1618)은  광해군 5년에 일어난 계축옥사(癸丑獄事)와 관련되어
5년후 삭탈관직 당해 북청(北靑)으로 유배되었을 때  철령(鐵嶺)고개를 넘으면서 시 한 수 읊조리다.

 

철령 높은 봉에
- 이항복

 

철령(鐵嶺) 높은 봉(峯)에 쉬어 넘는 저 구름아 
고신원루(孤臣寃淚)를 비삼아 띄어다가 
님 계신 구중심처(九重深處)에 뿌려 본들 어떠리

 

이항복(李恒福, 1556~1618)은 조선 중기에 영의정을 지낸 문신으로 오성대감(鰲城大監)이라 한다. 호는 백사(白沙)이다. 이 시조는 인목대비 폐비론을 반대하다 유배 길에 오른 자신의 심경을 표현한 작품으로 철령의 높은 산봉우리에 걸쳐 있는 구름을 자신의 모습으로 투영하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표현하고 있으며,  고신(孤臣)이란 말은 임금의 은총을 받지 못하는 외로운 신하란 뜻으로 내침을 받은 그 서러움을 궁궐에 계신 임금님께 빗물로 뿌려 자신의 충절을 알리고픈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전편에 충절심이 면면히 흐르고 있다. 

 

철령관을 중심으로  동쪽인 강원도는 관동지방, 북쪽인 함경도는 관북지방, 서쪽인 평안도는 관서지방으로 불린다.

관동지방인 강원도는 ‘영동(嶺東)’과 ‘영서(嶺西)’로 다시 나누는데

이는 태백산맥의 대관령(大關嶺) 마루를 기준으로 동쪽 지방과 서쪽 지방을 말한다.

 

정철 선생의 관동별곡은 바로 이 지역을 유람하고 쓴 글이다.

 

 

자고 가는 저 구름아 - 위키리

 

경현철(景鉉喆) 작사/ 이인권 작곡

그랜드(LG-50029) / 1969

https://www.youtube.com/watch?v=x_zpB6MyOg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