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榮州浮石寺 기행 2

류지미 2023. 9. 19. 19:33

榮州浮石寺 기행 2

榮州浮石寺 

 

 

조사당   (국보 제19호)

조사당은 의상대사의 초상을 모시고 있는 곳으로 고려 우왕 3년(1377)에 세웠고, 조선 성종 21년(1490)과 성종 24년(1493)에 다시 고쳤다.

앞면 3칸· 옆면 1칸 크기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를 기둥 위에만 설치한 주심포 양식이며,  건물 자체가 작은 크기이기 때문에 세부양식이 경내에 있는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국보 제18호)보다 간결하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출입문을 두었고 좌우로는 빛을 받아들이기 위한 광창을 설치해 놓았다.

 

단청 없이 연한 빛으로 칠해 단아하고 수수한 국보 19호 조사당 벽에선 수채화를 연상한다.

조사당은 절을 창건하고 중창한 옛 고승들을 기리는 곳인데 중앙에 모신 이 분이 의상대사가 아닌가 생각한다.  의상대사는 702년 입적할 때까지 부석사에 머물렀다고 한다.

 

향 조사당 불단 왼쪽 벽화가 있던 자리에는 근래에 조성된 신중탱과  좌우로 다른 고승들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조사당 벽화 (국보 제46호)

부석사에 전하는 벽화 6점은 원래 조사당 벽면에 그려졌던 것이다.  일제 시대에 벽체에서 분리하여 무량수전에 보관하다가 현재는 보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들은 현재 남아있는 우리나라의 사원 벽화 가운데 가장 오래 된 작품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범천과 제석천 그리고 사천왕상을 그린 것인데 이 절의 창사주인 의상대사를 기린 조사당에 그린 점으로 미루어 보아 이를 외호하려는 의도로 제작한 듯하다 . 크기 : 205.0 X 75.0 cm

향 조사당 불단 오른쪽 벽화가 있던 자리

따로 보관하고 있는 부석사 조사당 내부에 있던 의상대사 진영

조사당 벽화   (국보 제46)

조사당은 또 하나의 국보을 품고 있었는데 좌우 벽면에 사천왕과 제석천을 그린 고려 불화이다 국보 46호인 이 벽화들은 1916년 조사당을 수리하면서 떼어내 보장각에 따로 보관하고 있다.

범천은 오른쪽(향좌)을 향한 측면관으로 서있는 자세이다.  머리에는 화관을 쓰고 ‚ 얼굴 뒤로 원형의 두광이 희미하게 보이며 앞으로 약간 내민 배 위에 두 손을 맞잡고 있다.   넓적한 얼굴에 긴 눈과 작은 입에서 위엄이 느껴지며 굵은 목 ‚ 넓고 듬직한 어깨 등이 전체적으로 풍부한 양감과 함께 건장한 인상을 풍긴다.  가슴께에 요대를 한 곤룡포 모양의 옷을 입고 있으며 소매 속으로 맞잡은 듯한 양팔 위로 드리운 천의가 발끝까지 늘어져 있다.  허리 아래 는 박락이 심하고 후대에 색을 다시 입혀 정확한 묘선과 채색을 살필 수 없지만 풍만한 얼굴에 작은 이목구비 ‚ 옷단의 화려한 장식 문양 등 귀족적인 모습으로 고려시대에 제작된 존상으로 여겨진다.

건물 처마밑에는 의상대사가 꽂아 놓은 지팡이에서 잎이 났다고 전해지는 골담초가 있는데 의상대사가 이 지팡이를 꽂으며 이 지팡이가 살아 있으면 내가 살아 있는줄 알라고 했다는...   이 골담초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보호막이....

 

취현암은 조사당 동쪽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데 1997년도에 복원되어 2002년까지 선원으로 활용되고 있다가 지금은 부석사 산내암자로서 쓰이고 있다. 조선시대 사명대사의 수도처로 유명하고 부석사 경내에서 가장 좋은 곳 에 위치하고 있다.

 

단하각

자인당과 응진전

응진전은 무량수전 영역의 북편 위쪽에 떨어져 있다.  자인당과 함께 거의 일렬로 남향하여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응진전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제자인 나한을 모신 전각이다.  정면 3칸 ‚ 측면 2칸의 익공계 맞배집으로 1976년에 번와 보수하였다. 이 건물의 공포에서 20세기 초에 유행한 장식 적인 익공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현재는 내부에 석고로 만든 석가삼존불과 고졸한 십육나한상이 안치되어 있다.

향 불단 좌측

향 불단 우측

조사당에서 다시 50m쯤 더 올라가면 전각 두 채가 서 있고 그중 안쪽 건물이 자인당이다.  옛날에 스님들이 수도하던 선방으로 썼던 곳인데 지금은 보물 220호 석불 한 쌍과 보물 제 1636호 중앙의 석조 석가여래좌상을 모시고 있다.

 

자인당은 선방의 용도로 사용되던 건물이다.  부석사에서 동쪽으로 약 1.5킬로미터 떨어진 폐사지에서 옮겨 온 석불을 이곳에 이안했다. 자인당은 정면 3칸 ‚ 측면 2칸의 맞배집이다. 공포가 건물 규모에 비하여 너무 크고 측벽에 여러 가지 형태의 옛 부재가 섞여 있는 것으로 보아 19세기 후반경에 해체 부재를 재사용하여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자인당 내부에는 원래 부석사 동쪽 폐사지에 있던 세 석불을 옮겨 놓았다.  현재 실내에는 석조 삼존여래 좌상을 모셨는데 가운데는 석조석가여래좌상으로 보물 제 1636호이고  좌우는 석조 비로자나불로 보물 제220호 이다.

중앙의  석조석가여래좌상으로 보물 제 1636호

불상 역시 부석사 동쪽의 절터에서 옮겨 온 것이다. 여러 형식들이 9세기 신라 하대 불상들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전각  좌우는 자인당 석조 비로자나불 좌상 2구 (보물 제220호)

이 2구의 불상은 처음부터 부석사에 있던 것이 아니라 부석사 동쪽의 폐사지에서 옮겨 온 것이다. 양손이 깨어졌고 얼굴과 대좌 일부가 파손되었으나 광배와 대좌를 모두 갖추고 있다. 자인당의 두 비로자나불 좌상들은 세부 조각만 약간 다를 뿐 형태와 조각 양식이 거의 동일하여 같은 조각가의 작품으로 생각된다. 양감이 없는 경직된 신체와 형 식화한 옷주름을 지닌 불상이나 다양한 무늬로 화려하게 장식된 광배와 대좌는 모두 9세기 후기 불상의 전형적인 특징들이다.

 

 

 

자인당과 응진전

단하각

최근세에 지은 정면 1칸 측면 1칸의 남도리 맞배집으로 응진전 뒤쪽에 위치하고 있다.  정면에 걸린 현판의  ‘단하 ’ 가 무엇을 뜻하는 지는 확실하지 않다.  사리를 얻기 위하여 목불을 쪼개 땟다는 단하소불의 고사로 유명한 중국 육조시대의 단하 천연 선사를 모신 것이라면 선종과 연관이 있는 전각이다.  그러기에 도량에서 다소 떨어져 있는 선방 근처에 지었는지도 모른다.

현재 건물 내부에는 손에 쥐를 들고 있는 작은 나한상을 모시고 있다.

 

 

시 돌아와 무량수전 앞에 서 본다...

 

안양루를 내려서서

범종루각도 지난다...

소위 기승전결(起承轉結)의 구성인데 부석사도 예외는 아니다. 사찰 입구에서 천왕문까지의 도입 공간이 기(起) 라면 대석단 위 범종각까지가 전개해 나가는 공간인 승(承)에 해당되고 여기서 축이 꺽여 전환점을 맞는 안양문까지가 전(轉)의 공간이다.

 

금강문도 지나고

천왕문도 지나면

 

 

이제 일주문을 나선다...

 

부처님의 세계인 불법의 세계를 벗어나 이제 사바 세계의 번잡한 세상 속세로 나선다.

잠시라도 내 혼탁한 영혼을 정화하고 마음을 내려 놓을수 있었던 부석사를 마음에 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