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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대의 욕망

류지미 2023. 11. 9. 04:12

우리 시대의 욕망 [신동욱 앵커의 시선]

https://www.youtube.com/watch?v=K7NRv3QhXJw

 

 

Nov 8, 2023 #전청조 #남현희

 

돛을 단 수레가 바람을 안고 달려갑니다. 높은 자리에 꽃의 여신 플로라가 앉아 있습니다. 네덜란드 부자들에게 명품으로 각광받은 줄무늬 튤립을 안고 있습니다. 수레에 탄 광대들은 튤립 광풍을 일으킨 탐욕과 허풍을 상징합니다. 이 허영의 수레를, 서민들이 생업도 팽개친 채 뒤쫓고 있습니다.

 

17세기에 네덜란드에서 유행했던 정물화를 '바니타스(Vanitas)' 라고 부릅니다. 허무와 허영을 뜻하는 라틴어지요. 정물화는 비싸고 진귀한 물건들을 늘어놓아 부를 과시합니다. 썩은 음식이나 해골도 그려 넣어 이렇게 경고합니다.

 

노파가 하녀들의 치장을 받으며 거울을 들여다봅니다. 화려한 화장과 장식들은 그림 제목처럼 허영을 뜻합니다. 그리고 거울은, 자신을 세상에 드러내는 허영의 쇼윈도 입니다.

 

그렇듯 사람들은 거울에 비친 자기 모습과 남들의 평가에 사로잡히곤 하지요. '사람들은 행복하기보다, 남에게 행복하게 보이려고 애를 쓴다'는 잠언처럼 말이지요.

 

오늘 이 시대 허영의 쇼윈도가 바로 SNS입니다. 그리고 이건 국가대표 펜싱 선수였던 남현희 씨가 지난 몇 달 SNS에 올렸던 명품들입니다. 3억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차의 열쇠와 함께 이런 메모도 보여줍니다. 희대의 결혼 사기극을 벌인 전청조 씨가 차를 선물하며 보냈다지요.

 

사기라고 경고하는 댓글이 잇달자 남 씨는 "강력 대응 하겠다"고 했다가 진실을 알고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 씨가 선물 사진들을) 좀 올리라고, 그러니까 사줬는데 왜 안 올리냐고 서운해했어요."

 

남 씨의 SNS는 자신뿐 아니라, 전 씨가 사기 행각을 벌이는 쇼윈도였던 겁니다.

 

뒤늦게 경찰 수사에서 전 씨가 남 씨를 내세워 사기친 금액이 26억 원에 이르고, 피해자도 스무 명이나 되는 걸로 드러났습니다. 결국 남 씨도 사기 공범 혐의로 경찰 조사를 받았고, 출국 금지까지 당했습니다. 난 전혀 몰랐다고 극구 부인했지만 설사 그렇다 해도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모로코에서 제일 비싼 리조트는 어때?"

 

부호의 상속녀를 사칭했던 애나 소로킨 역시 '허영의 시장' SNS를 통해 뉴욕 사교계의 별로 떠올랐습니다. 반짝반짝 빛나는 부유층 이른바 '글리터 라티(Glitterati)' 행세를 하며 동경을 자극하고 신뢰와 인맥을 쌓았지요. 하지만 꼬리가 밟혀 21세기형 정신병 이른바 '관종'의 극단적 종말을 고했습니다. 그 행각을 그린 드라마가 크게 성공했습니다만, 한국판 '글리터 라티' 사기극은 그보다 진화했고 더 극적입니다.

 

거기에 들러리를 섰던 남현희 씨 역시, 적어도 그동안 누린 허영과 과시, 자기 기만의 대가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더구나 그가 일반인이 아니라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로서 많은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건 국민에 대한 배신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그에게 들려주고 싶은 또 하나 잠언이 있습니다.

 

'허영과 진실은 결코 부부가 될 수 없다.'

 

11월 7일 앵커의 시선은 '우리 시대의 욕망' 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