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Story from Me

국화 옆에서/ 서정주

류지미 2023. 12. 26. 09:22

국화 옆에서/ 서정주 시, 이수인 곡~

류지미 2023. 9. 8. 10:44 
 

봉암초등학교 선운 분교를 개보수하여 2001년 11월 3일 개관한 미당 시문학관

시인의 고향마을이며  마을 뒷산 소요산이 솟아 있고  좌우로  생각와  묘소가 있다.

 

 

서정주(徐廷柱, 1915 ~ 2000)

 

1915년 5월 18일 전라북도 고창군 부안면 선운리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서당에서 공부를 하다가 1924년 인근의 줄포로 이사하여 줄포공립보통학교에 입학해 1929년 졸업했다.

 

시인.  호는 미당(未堂). 1936년 “동아 일보” 신춘문예에 ‘벽’이 당선되어 등단하였다. 초기에는 악마적이고 원색적인 시풍으로 인간의 원죄 의식을 주로 노래하였으나, 후에 불교 사상과 샤머니즘 등 동양적인 사상을 노래한 작품을 썼다. 시집으로 “화사집”(1941), “신라초”(1960), “질마재 신화”(1975) 등이 있다.

 

 

 

국화 옆에서

이 시는 국화가 개화하는 자연 현상과 국화의 아름다움을 인간의 성숙한 삶의 아름다움과 연관지어 표현하고 있는 작품이다.
1, 2, 4연에서는 한송이 꽃이 피어나기까지의 아픔과 온갖 어려움을 노래한다. 생명 탄생의 힘든 과정을 상징하는 봄에 처절하게 우는 소쩍새, 여름의 천둥, 가을밤의 무서리는 화자 자신의 잠 못 이룸과 더불어 한 송이 국화꽃과 신비스런 인연을 맺으며, 국화꽃이 피어나는 데 영향을 미친다.
3연은 이렇게 피어난 국화꽃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국화의 아름다움은 젊음의 시절을 다 지나 보내고, 거울 앞에서 자신을 돌이켜 보는 누님의 모습과 일치된다. 이 부분에 나타난 누님의 모습은 그리움, 아쉬움 등과 같은 온갖 젊음의 시련을 거쳐 지니게 된 성숙한 삶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느끼게 한다. 국화에서 발견한 아름다움은 곧, 이러한 성숙한 삶의 아름다움인 것이며, ‘국화 옆에서’ 바라보고 있는 화자가 지향하고자 하는 삶의 이상이기도 한 것이다.
*수록교과서 : (문학) 미래엔/(국어) 신사고

 

 

말년에는 친일행위와 여러 정치적인 행보로 인해 살해협박과 스토킹에 시달려야만 했다. 특히 그의 아내와 그에 대한 모욕적인 헌사도 서슴치않는 연락이 매 시간 단위로 걸려왔다고 한다. 실제로 집 앞에 외부인이 칼을 들고 한 참 동안 머물다가 간 적도 있다고 한다. 결국 이러한 협박과 스토킹에 회의를 느꼈는지 미국으로 피난하다시피 떠났고, 아내와 함께 장기간 머물게 채류하게 된다.이 후 90년 중반에서야 귀국할 수 있었다.

 

2000년 10월 아내가 사망하자 충격을 받고 쓰러졌으며 나중에는 곡기를 거부한채 만 마시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입원하게 된다. 이후 산소호흡기를 쓰고 투병하다가 11월에 "잘 봐달라고 말씀하더라고 해."라는 최후의 인터뷰를 남겼으며 12월 22일부터 혼수 상태에 빠졌고 2000년 12월 24일에 향년 85세로 세상을 떠났다. 정부에서는 금관문화훈장을 추서했는데 생전 1,000여 편에 달하는 문학 작품을 남겼다.

 

 

 

 

 

갑이누나(1908생~1927혼인~1985년?미상 ) * 타계소식을 알지 못함,

순갑누나(1912생~1930혼인~1981년 사망, 향년69세),

순이누나(1922추정~1940혼인~1997사망, 향년 75세),

희분누나(1928생~1943혼인~1958년 사망추정, 향년 30세)*국민학교 4학년경 전보 받음,

희연누나(1931년생~ 1934년경  병사)

선연누나(1937생~1958혼인~ ),춘자누나(1945생~1968혼인~)

 

 

나의 이승에서는 누나가 일곱분이다. 형님은 세분....

나는 그분들의 막내동생이다.

(*2023년 현재 형님 세분과 누님 다섯분은 이승을 떠나가셨다.)  

 

내가 태어난 1948년 이전에 출가한 누나들중에서

어린 나이로 타계한 희연누나는 당연히 얼굴을 모르고

희분 누나도 내 기억에ㄴ 한번도 본 적 없는, 얼굴 모르는 누나로 이 세상을 떠났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하여
천둥은 먹구름 속에서
또 그렇게 울었나 보다
 
그립고 아쉬움에 가슴 조이던
머언 머언 젊음의 뒤안길에서
인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
 
노란 네 꽃잎이 피려고
간밤에 무서리가 저리 내리고
내게는 잠이 오지 않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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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중학교에서 서정주님의 를  접한 후로  희분 누나는  한평생 내 가슴속 '국화옆에서~누님'이시다.

 

 

국화 옆에서 
서정주 시, 이수인 곡 / Ten. 엄정행,  

https://www.youtube.com/watch?v=y2A5moP44j8 

 

대전 살던  갑이 누나는 1962년 아버지가 돌아가신 1년뒤 친정을 오시어 1963년에 처음 보았고

순갑 누나는 대구, 서울에 살았는데  아주 뜸하게 친정을 와서 얼굴은 기억할 수는 있을 정도였다.

라디오를 소지하고  KBS 라디오 연속극 하숙생(1965)'을 즐겨 듣던  멋쟁이 신식 여성이었다.

 

고향 성주 거문골  순이 누나는 그 나마  내가 찾아가기도 하여 누나의 정을 깊이 받았을 것이다.

 

선연누나는 내가 국민학교 4학년 때 시집으로 떠나간 그날  엄마와 나, 춘자누나가 무척 슬펐던  기억이 선연하다.

엄마는  얼마나 보고 싶고  소식이 궁금했을까, 엄마가 불러주는 대로 대필하여 보낸 편지를 시댁 어른들이 보시고

국민학교 4학년이 어찌도 문장력이 이리도 좋으냐며 격찬을 하셨단다...

 

병약하고 문약한 나는 자연히 책 읽기나 좋아하고 누나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꽤나 감상적이었을까.

가람  이병기 시조나  초정 김상옥 시조를  즐겨 암송하면서 그리움에 젖곤 하였었지.

 

 

 

김상옥님의 봉선화는 영락없이 나와 누나의 사연을 그대로 담고 있었다.

김싱옥님의  봉선화는 이 가슴속  한평생 애련하게 그리운 내 누님이시다

 

초정(艸丁) , 봉선화(鳳仙花)

 초정의 초기 시조 <봉선화,鳳仙花 (1939년) >시비.

.

 

봉선화(鳳仙花)  -  艸丁 김상옥(金相沃) 

 

비오자 장독대에 봉선화 반만 벌어 
해마다 피는 꽃을 나만 두고 볼 것인가 
세세한 사연을 적어 누님께로 보내자. 


누님이 편지 보며 하마 울까 웃으실까 
눈 앞에 삼삼이는 고향집을 그리시고 
손톱에 꽃물 들이던 그 날 생각하시리. 

양지에 마주 앉아 실로 찬찬 매어주던 
하얀 손 가락 가락이 연붉은 그 손톱을 
지금은 꿈속에 본 듯 힘줄만이 서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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