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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rth Korea - Yeonback 延白郡米

류지미 2024. 3. 11. 18:46

 

끊임없이 편안하다는 연안(延安) 은 고려 태조 왕건이 후삼국을 통일한 후 지은 이름이란다.

연안의  진산  비봉산(飛鳳山 282m , 일명 )은 연안 팔경의 하나이며  넓은 들 연백평야는 호남평야, 김해평야와 더불어  한국의 3대평야의 하나이다. 

 

질 좋은 쌀로 유명한 연백평야의  연백미(延白米 ) 와  연백평야의 토탄(土炭) ,  연안 온천과   사금의 고장... 넓은 염전의 소금으로 살기 좋고 인심 좋은 고장  황해도  연안(延安) 이다.

 

황해도의 동남 경기만에 면하고, 북부는 구릉성 수양산맥이 동서로 뻗어 목단산(牧丹山)·운두봉(雲頭峯)·황의산(黃衣山, 479m) 등이 있으며, 그 지맥이 남쪽 해안 쪽으로 뻗어 중앙에 해성반도를 돌출시켜, 해안의 단조(單調)를 깨뜨려 서쪽에 용도만, 동쪽에 호남만으로 분리시켰다. 군의 남반부는 광활한 해안 평야로 동서의 군계를 이루는 례성강·화양강의 2대 강과 옥산강(玉山江)·라진포천(羅津浦川)·풍천(楓川) 등 하천의 퇴적 작용과 해저 융기로 이루어지고, 해안은 넓은 간석지가 있어 대규모 간척사업이 이루어졌다. 연안 도서로는 역구(驛鷗)·신·구 증산 등 7개 도서가 있다.

 

연안(延安)은 본래 고구려 때 동음홀(冬音忽) 시염성(豉鹽城)으로 불리다가 신라 때 해고군(海皐郡)으로, 고려 초에 염주(鹽州)로 개칭되었다. 이 후 영응(永膺)·석주(碩州)로 불리다가 충렬왕 때 온주목(溫州牧)으로 승격되었으며, 충선왕 때 연안부(延安府)가 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조창 중 하나인 금곡포창이 설치되었고, 조선 태종 13년(1413) 도호부가 되면서 경기도에서 황해도로 이관되었다. 1895년에 다시 군이 되었고, 1914년 배천군 평산군의 괘궁(掛弓)·목단(牧丹) 2면을 합하여 연백군으로 개칭했다.

 

배천(白川)은 고구려의 도납현(刀臘縣) 치악성(雉岳城)으로 불리다가 신라 때는 구택으로 고치고 해고군(海皐郡)의 영현(領縣)이 되었다. 고려 초부터는 배천으로 고치고 조선 태종 13년(1413)에 군이 되었으며, 1914년에 연안군과 합쳐졌다.

  • 1945년 9월 2일 : 미국과 소련이 한반도를 분할 점령함으로써 연백군의 대부분 지역이 미군정 관할 아래, 38선 이북인 목단면·금산면 전부, 운산면·화성면 대부분이 소련군정 관할 아래 들어갔다. (1읍 19면 → 1읍 15면)
  • 1945년 11월 4일 : 황해도의 38선 이남 지역이 경기도에 편입되었다. 이에 따라 황해도 연백군은 경기도 연백군이 되었고, 38선 이남의 벽성군 4개면(내성면·추화면·일신면·청룡면)이 연백군에 편입되었다. (1읍 19면)

 

교동도 (喬桐島) : 인천광역시 강화군 교동면( 물이 빠지면 걸어서 연백에 닿는 연백 생활권으로 휴전 이전 연백군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수군 수영인 경기수영의 본영이 있던 곳이기도 하다.

고려 말~조선 초 대문호였던 목은 이색(1328~1396) 선생이 매력을 느껴 독서를 하고 시를 쓰며 수양을 했던 곳이기도 하다.

 

  • 교동읍성
    1629년(인조 7년)에 경기수영을 설치하면서 같이 만든 것으로, 둘레는 870m였다고 한다. 과거에는 동/남/북쪽에 성문을 세웠으나, 현재는 남문(홍예문)만 남고 나머지 문과 성곽 모두가 사라졌다. 그나마 남은 남문(홍예문)도 문 주변의 석벽과 입구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사라져 사실상 껍데기만 남았다가 2018년에 홍예문 위 문루를 복원하였다.

2014년 7월 1일 교동대교가 개통되면서 강화도와 육지까지 자동차로 갈 수 있게 되었다. 

2020년까지의 국토 개발 계획에 따르면 서해안고속도로는 이 섬을 지나 황해남도 해주시 방향으로의 연장이 계획되어 있다.

 

연백평야(延白平野)

 

황해도 동남부 해안 지역에 펼쳐진 평야.

예성강 서쪽에서 해주에 이르며, 연백·벽성의 두 군에 걸쳐 있다. 멸악산맥의 여맥들 사이로 흐르는 예성강·한교천(漢橋川)·나진포천(羅津浦川)·풍천(楓川)·화양천(花陽川) 등의 유역에 발달된 평야이다. 

 

 

한편, 연백평야의 10개 면에 걸친 지역에서 토탄(土炭)이 나는데 이것은 연안주(沿岸洲) 안쪽에 있었던 석호 부근에 무성하였던 식물이 하천과 조류의 퇴적작용으로 석호와 함께 매몰되어 오랜 기간을 지나는 중에 탄화(炭化)된 것이다.

 

 

 

 

 

 

 

 

 

 

 

 

 

 

 

 

 

延白郡

 



황해도 동남부에 있던 군(郡). 면적은 약 935.6㎢. 광복 당시 1읍 19면으로 되어 있었으며, 군청은 연안읍 연성리에 있었다. 1944년 당시 인구가 20만 명이 넘을 정도로 큰 군이었다.

한국 3대 평야 중 하나인 연백평야가 이 군뿐만 아니라 이웃 벽성군의 동쪽까지 펼쳐져 있다. 따라서 이 지방의 특산물로는 이 있으며, 바다에서는 조기·새우, 땅에서는 토탄(土炭)이 있다.

 

1914년 연안군 (延安) 배천군(白川)이 통합되어 만들어졌다. '연백(延白) '이란 군명 역시 두 군의 앞글자에서 따온 것. 따라서 같은 연백군이라도 연안 지역과 배천 지역의 특성이 달랐다고 한다.

 

광복 후 38선이 그어지자 연백군 역시 남북으로 분할되었다.

연백군 대다수 지역이 남한에 속했지만 38선 이북의 일부 지역은 북한에 넘어갔다. 이때 북한은 일부만 남은 연백군을 폐지하지 않고 평산군 적암면과 금천군 예성강 서안 지역인 산외면과 서북면을 편입시켜 그대로 존치하였다. 이 때문에 한동안 2개의 연백군이 공존하는 상황이 지속되었는데 북한쪽 연백군에 저수지와 관개시설 다수가 위치한 관계로 전쟁 직전인 1950년에는 농번기에 북한이 물을 통제해서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었다.

 

광복 후 38선이 그어지자 미군정의 임시조치로 38선 이남에 위치한 벽성군 동부 지역을 편입한 다음 황해도에서 경기도로 이관되었다. 또한 면 대부분은 38선 이북에 있고 일부만 이남에 위치한 연백군 화성면과 운산면, 구 벽성군 영천면은 각각 석산면과 은천면, 내성면에 편입되었다. 6.25 전쟁 전까지는 옹진군과 함께 남한지역이었기 때문에, 연백 출신 황해도 실향민들도 상당히 많다.

여담으로 6.25 이전까지 연백군에 경찰서가 셋이나 있었다. 연안경찰서 (연안읍 소재) 배천경찰서 (유곡면 소재) 청단경찰서 (추화면 소재)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북한 치하에 점령된 후 북한은 38선 이남지역에 남연백군을 설치했다가 군면리 대폐합을 단행하면서 1952년 12월에 연안군 배천군으로 다시 분리되었다. 다만 연백군을 연안군과 배천군으로 재분할한 뒤에도 북한은 이 일대의 평야인 연백평야는 새 명칭을 만들지 않고 평야만 벌로 고쳐서 연백벌이라 부르고 있다. 애초에 연안평야 배천평야가 따로 있었던 게 아니었기 때문.

철도 노선으로는 토해선이 있었으나, 한국전쟁당시 예성강철교로 인해 엄청난 피해를 본 북한이 예성강철교를 파괴하고 노선 일부를 끊어놓은 다음, 일부 구간을 북쪽으로 이설하여 현재는 배천선이 군 내부를 가로지른다.

 

광복 당시 1읍 19면이다.

 

 구 연안군 

    • 연안읍(延安邑)
      • 관할 리 : 관천(館泉), 단산(丹山), 모정(模井), 미산(美山), 봉남(鳳南), 봉무(鳳舞), 산양(山陽), 연성(延城), 오주(梧珠), 자양(紫陽), 장곡(長谷)
      • 인구 29,743명(1949년). 읍사무소는 관천리, 군청은 연성리에 있었다. 북쪽 비봉산(282m) 아래 시가지가 전개되어 있으며, 남쪽에는 자봉산(151m)이 있다. 연안향교, 비봉서원, 연안읍성 등의 고적이 있으며, 과거 읍내 남쪽에는 남대지라는 큰 저수지가 있었으나, 일제 말에 식량증산을 한다고 메워 버렸다. 철도시설은 토해선 연안역이 있다.
      • 봉북면(鳳北面) 봉서면(鳳西面) 송봉면(松逢面) 해성면(海城面, 평야. 최남단인 해남리에 있는 연백염전은 한반도 최대 소금 산지 ) 호남면(湖南面) 호동면(湖東面,  온정역이라고 부르는 연안온천역 )

구 배천군 

금산면(金山面, 남쪽에 예의 (禮義) 저수지가 있다 ) 도촌면(道村面) 석산면(石山面)

온정면(溫井面, 면소재지인 금성 (錦城) 리에 연안온천이 있다. )

운산면(雲山面) 유곡면(柳谷面, 학 도래지가 식현 食峴) 리에 있다. )

은천면(銀川面, 배천향교, 문회서원 외에 영천 (潁川) 리에 조선 세종 때에 발견된 배천온천이 있다. )

해월면(海月面,  벽란리에 고려시대 무역항이었던 벽란도(碧瀾渡)가 있다.) 화성면(花城面)

 

 평산군

1906년에 월경지  땅거스러미를 정리할 때 연안군에 편입

괘궁면(掛弓面) 목단면(牧丹面) 용도면(龍道面) 해룡면(海龍面)  

 

 

North Korea - Yeonback (North Koreans) By Nicon P1000, which was pulled from South Korea

https://www.youtube.com/watch?v=a4Vc9pP5kGM

 

 

 

North Korea's Largest Grain Zone in South Korea - Nikon P1000

https://www.youtube.com/watch?v=lsfXeCweewM

 

 

최북단 스카이워크 교동도 여행 /국내여행 /8월에 가볼만한곳 /강화도 여행 /인천 여행 /서울근교 가볼만한곳 /당일치기 국내여행 /화개정원 /화개산 전망대

https://www.youtube.com/watch?v=7ztew6Y2K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