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411

端宗 子 規 詩 (단종.자 규 시 )

국모가 관비로 급전직하… 슬픈 사연의 왕릉과 단종의 자규시(子規詩) By 나일정 봄이 왔으니 머잖아 진달래가 피고 그러면 자규(두견새)가 울 것입니다. 자규, 두견새, 진달래, 귀촉도, 그에 대한 글은 내가 이 곳에 얼마전 소월시 진달래 등과 관련지어 "詩人 小月의 사랑 이야기."를 올린바 있으니 살펴 보셔도 좋겠습니다. 난 1994년에 영월 청령포의 단종 유배지를 가서 자규시(子規詩)를 본적이 있습니다. 당시에 나는 이런 시(詩)를 쓴 단종을 세조에게 왕자리를 빼앗겼다하여 어리고 유약하였다고만 할 일은 아니라고 생각하였었습니다. 그 단종의 아내 정순왕후에 대한 기사가 눈에 띠어 이 글을 씁니다. 단종은 17살 이른나이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정순왕후는 82세까지 살면서 세조 예종 성종 연산군 중종 때까지 ..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자규[子規], 두견(杜鵑)새는 울음소리가 ‘不如歸去(불여귀거)’라고 들리기 때문에 불여귀[不如帰] 라는... 신하에게 쫓겨난 촉나라 임금 두우가 슬피 울며 죽어 새가 되었으니 '촉나라로 돌아가고 싶어' 우는 귀촉도 [歸蜀道] , '돌아가지 못한 혼"이라하여 불여귀(不如帰)라~... 아무튼 두견(杜鵑)새, 뻐꾸기는 뱁새 집에 알을 낳고 가 버리는데 알에서 깬 뻐꾸기 새끼는 뱁새의 알이나 뱁새 새끼를 둥지에서 밀어 내 버리고, 뱁새 어미가 하루종일 날라오는 먹이(벌레)를 다 차지하여 드신다는... 그 작은 뱁새가 그 큰 뻐꾸기 새끼의 그 큰 배를 채우노라 하루종일 .... https://www.youtube.com/watch?v=UhOaLUWDAtE 이화(梨花)에 월백(月白)하고 은한(銀漢)이 삼경(三更)인..

성주에는 태종과 단종의 태실지가 있다?

성주에는 태종과 단종의 태실지가 있다? 김희태 이야기가 있는 역사문화연구소장 입력 2020.03.12 14:00 수정 2020.03.20 08:00 태실(胎室)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게 되는 장소는 단연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사적 제444호)이다. 그런데 이러한 성주에 세종대왕자 태실 이외에도 태종과 단종의 태실지가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현재까지 성주에서 확인되는 태실은 크게 ▶성주 세종대왕자 태실 ▶성주 태종 태실지 ▶성주 단종 태실지 등이 있다. 비교적 온전하게 보전된 세종대왕자 태실과 달리 태종 태실의 경우 일제강점기 당시 서삼릉으로 이봉된 뒤 태실지에는 민묘가 들어섰으며, 단종의 태실지는 세조가 즉위한 이후 당대에 훼손돼 현재 민묘가 들어섰다. 그 결과 태종..

Queen Elizabeth II's Platinum Jubilee/ On February 6, 2022

On 6th February this year Her Majesty The Queen will become the first British Monarch to celebrate a Platinum Jubilee, marking 70 years of service to the people of the United Kingdom, the Realms and the Commonwealth. On 6th February of 2022, Her Majesty The Queen will become the first British Monarch to celebrate a Platinum Jubilee 2022년 2월 6일, 여왕폐하 재위 70주년(플래터넘 쥬벌리)축제 , 영국 첫 군주 *the Queen's Pla..

크림 전쟁과 나이팅게일

흑해를 둘러싼 러시아와 열강들의 각축전 크림 전쟁 유럽의 강대국이 되고 싶었던 러시아의 남하 정책 최후의 종교 전쟁이었던 30년 전쟁 이후 17세기 말부터 유럽의 열강들은 자국의 세력을 확장해 나가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특히 경제적 이권을 차지하기 위한 영토 분쟁이 잦아지면서 군사력을 더욱 강화하기 시작하였다. 이 과정에서 일찌감치 중상주의(16세기 말부터 18세기에 걸쳐 유럽에서 지배적이었던 경제 정책. 나라의 부를 늘리려고 상업을 중히 여김) 정책을 앞세워 절대 군주제(군주가 국가 통치의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정치 체제)를 완성한 영국이나 프랑스에 비해 아직도 중세 봉건적 농노제가 기반인 러시아는 후진성(일정한 수준을 기준으로 할 때 그보다 뒤떨어진 상태)을 면하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1..

크림 반도의 역사 (6)

8. 2 차 대전 시기의 크림 반도 2 차 대전 시기에도 의심할 바 없이 크림 반도의 전략적 가치는 매우 컸다. 일단 흑해함대의 본부가 있는 곳으로써 소련의 주요 전략 기지였기 때문에 독일군이 이를 점령하지 않고는 더 동쪽으로 진출하기는 위험했다. 소련을 기습 침공한 독일군은 빠른 속도로 주변 지역을 장악했고 1941 년 겨울이 오기전 크림 반도 대부분을 장악했으나 단 한곳, 흑해 함대의 기지이자 소련이 자랑하는 요새인 세바스토폴 (Sevastopol) 을 점령하지는 못했다. 아무리 1941 년 당시의 독일군이 기세 등등하고 소련군이 공황상태였다곤 해도 세바스토폴은 워낙 요새화가 잘 되어 있어 독일군도 간단하게 점령하기는 힘들었기 때문이다. 크림 전쟁 이후 가장 격렬한 요새 포위전이 바로 이 세바스토폴 ..

크림 반도의 역사 (5)

6. 혁명기의 크림 반도 크림 전쟁이 끝나고 한동안 평화를 누렸던 크림 반도가 다시 격동의 시대로 진입한 것은 1917 년 러시아 혁명과 함께였다. 당시 볼셰비키 혁명 정권은 명칭과는 달리 러시아 내에서 소수파에 지나지 않았다. 1920 년대 스탈린이 정권을 잡고도 볼셰비키는 '러시아라는 호수에 떨어진 붉은 잉크 한 방울' 이라는 표현처럼 널리 확산되지 못한 상태였다. 이런 상태였기 때문에 차르 니콜라이 2세의 치명적인 무능함과 이후 임시 정부의 혼란 덕분에 정권을 잡은 소비에트는 초기 권력이 매우 취약했다. 결국 다양한 반혁명 혹은 혁명 세력과의 내전은 불가피했다. 이 시기에 볼셰비키 혁명 정권과 전쟁을 치른 다양한 반혁명 세력 중에는 사실 러시아 제국의 붕괴를 틈타 독립을 쟁취하려는 민족주의자들도 다..

크림 반도의 역사 (4)

5. 크림 전쟁 ​ ​크림 전쟁은 러시아에서는 동방전쟁 (Eastern War : Восточная война) 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실 전쟁 자체가 흑해와 카프카스 지방, 아나톨리아 지방, 발트해, 백해 등에서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면 크림 전쟁은 다소 정확하지 않은 명칭일 수도 있으나 가장 중요한 육상 전투가 벌어진 지역이 크림 반도 특히 세바스토폴 요새라는 점을 생각하면 적당한 명칭이다. ​ ​ 기본적으로 크림 전쟁은 러시아 남진 정책과 이에 반대하는 열강들의 전쟁이었으나 처음 시작은 매우 엉뚱하게도 흑해에서 한참 떨어진 예루살렘이었다. 1851 년 프랑스 제국의 황제인 나폴레옹 3 세는 당시 오스만 제국의 영토인 팔레스타인에서 카톨릭 교도의 특권을 인정하게 하는 내용의 조약을 오스만 제국과 맺는..

크림 반도의 역사 (3)

4. 러시아의 남하 이반 뇌제 사후 혼란을 겪던 러시아는 17 세기 후반 로마노프 왕조는 물론이고 러시아 역사상 가장 걸출한 군주인 표트르 대제 (Pyotr Alexeyevich, Пётр Вели́кий, Pyotr Velikiy) 시대에 이르러 주변으로의 강력한 팽창 정책을 수행했다. 표트르 대제의 팽창 정책이 이전의 러시아의 팽창과 가진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바로 서방과의 창을 원했다는 점과 바다의 통제권을 가지기 희망했다는 점이다. 본래 러시아는 육군 위주의 육지 국가이다. 비록 러시아가 강을 중심으로 발달했다고 해도 이점은 분명했다. 이와 같은 역사에서 변화를 시도했던 인물은 바로 이반 뇌제로 이전에 설명한 리보니아 전쟁이 바로 그 첫번째 시도였다. 즉 발트해로의 진출을 노리고 25 년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