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istory & Human Geography 411

이인규 "검찰 출석한 盧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 말해"

사회 검찰・법원 이인규 "검찰 출석한 盧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 말해" 중앙일보 업데이트 2023.03.17 03:15 김수민 기자 박현준 기자 이창훈 기자 이인규 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 중앙포토 2009년 대검찰청 중수부장을 지내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를 지휘했던 이인규(64‧사법연수원 14기) 변호사의 회고록을 중앙일보가 사전 입수했다. 이 변호사는 회고록에서 노 전 대통령 수사과정에서 벌어진 비화(秘話)를 털어놨다. 이 변호사는 17일 발매되는 회고록 『나는 대한민국 검사였다-누가 노무현을 죽였나』에서 노 전 대통령이 2009년 4월 30일 대검 중수부에 출석했을 때의 일을 자세히 묘사했다. 노 전 대통령은 이 변호사에게 “이 부장! 시계는 뺍시다, 쪽팔리잖아”라고 말했다고 한다. ..

이인규 “文, 노무현 전 대통령 변호때 의견서 한장 안냈다”

사회법조 이인규 “文, 노무현 전 대통령 변호때 의견서 한장 안냈다” 송원형 기자 유종헌 기자 입력 2023.03.16. 21:31업데이트 2023.03.16. 23:04 161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조사한 이인규 전 중수부장/주완중 기자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을 수사했던 이인규(65) 당시 대검 중수부장(현 변호사)이 회고록에서 당시 노 전 대통령을 변호했던 문재인 전 대통령이 변호인으로서 무능했으며 노 전 대통령을 사실상 방치했다는 취지로 주장했다. 이 회고록에서 이인규 변호사는 “(당시) 문(재인) 변호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극단적 선택을 한 (2009년) 5월 23일까지 일주일 동안 아무런 변호 활동을 하지 않았고, 그의 곁을 지키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 변호사가 쓴 회고록은..

서울과 워싱턴의 갈등, 미국의 '이승만 제거 작전'

남기고] 서울과 워싱턴의 갈등 (245) 미국의 '이승만 제거 작전' 유광종입력 2011. 1. 5. 01:27수정 2011. 1. 5. 01:33 [중앙일보 유광종] 한국전쟁 휴전 무렵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석방된 북한군 반공 포로가 태극기를 흔들며 환호하고 있다. 이승만 대통령의 일방적인 반공포로 석방은 공산진영뿐 아니라 서방 세계에 엄청난 충격을 줬다. [미 국립문서기록보관청] 휴전협상 과정에서 극도로 민감했던 것이 반공(反共) 성향의 포로들을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문제였다. 특히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 포로에 기울이는 관심은 아주 대단했다. 그는 한국에 남거나 제3국으로 가려는 반공 포로들을 석방해 자유를 찾도록 하는 일에 남다른 애정과 열정을 보였다. 이승만 대통령이 다시 꺼내든 것은 그 문제였다...

세계가 놀란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 포로 석방

세계가 놀란 이승만 대통령의 반공 포로 석방 --이승만 현대사. 위대한 3년--에서 반공포로 수용소 시찰 1953년 6월 6일 오후, 이승만은 원용덕 헌병총사령관을 경무대로 불러들였다. 바로 1년 전 부산 정치파동 때 부산·경남 계엄사령관으로 직선제 개헌을 성공시키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 원용덕은 그 후 이승만의 두터운 신임을 받아 부산과 서울의 경무대 출입이 잦아져 있었다. 이날도 포로 송환 타결로 긴장된 판이라 틀림없이 무슨 중요한 지시를 받을 것 같은 예감으로 달려간 원 사령관이 대통령 앞이 앉았다. “원 장군, 미국 사람들이 또 우리 의사와 관계없이 우리 애국 청년들을 죽음의 땅으로 보낸다니 큰일이야, 나로서는 단 한 명도 북한으로 보낼 수는 없어, 원 장군, 저 북한에 안 가겠다는 우리 동포 청..

한미 상호방위조약 70주년(2023.10.1)

.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외국인으로서 전례 없는 백만 군중의 환영을 받는 카퍼레이드 - 6.25전쟁이 끝난 1954년 7월 26일, 아이젠하워와의 정상회담을 위해 워싱턴에 도착한 이승만 대통령은 8월 2일에 뉴욕시가 주최한, 다운타운 브로드웨이 일대에서 하는 티커테이프 퍼레이드에 참석했다. 이 퍼레이드는 일명 '영웅행진'이라고 불리우는 퍼레이드로 역사적으로 인류를 위해 큰 공헌을 한 인물들을 위해 베풀어지는 영광의 카퍼레이드였다. 아이젠하워 대통령부터 시작해서 맥아더 원수, 드골의 프랑스 대통령을 비롯해 달착륙 우주인들이 이 퍼레이드의 주인공이 되었는데, 한인 최초의 뉴욕시 영웅행진의 영광을 누린 사람이 바로 이승만 대통령이었다. 그 뒤에 2번째로 한국인으로서 영웅행진을 할 수 있었던 인물은 1965년 5..

우리에겐 젤렌스키보다 위대한 대통령 이승만이 있었다

[김순덕 칼럼]우리에겐 젤렌스키보다 위대한 대통령 이승만이 있었다 김순덕 대기자 입력 2023-02-16 00:00업데이트 2023-02-16 08:25 우크라 대통령부인 “6·25 후 성장 배울 터” 이승만 대통령이 한미동맹 쟁취했기에 강한 안보 있어 경제성장도 가능했다 좌파가 폄훼한 대통령 이제는 재평가해야 이승만 전 대통령.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제공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에 침략당한 지 24일이면 1년이다. 반만년 유구한 역사를 간직하고도 전략적 요충지에 위치해 러시아 독일 폴란드 같은 주변 강대국에 시달린 나라가 우크라이나다. 1991년 소련이 붕괴되면서 간신히 독립했는데 파시즘 철학자 이반 일린에 심취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는 없다”며 침공했다. “중국은 대국, 우리는 소..

단두대에서 죽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비극적인 삶! ~1

단두대에서 죽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비극적인 삶! Stars Insider별 스토리 • 2023년 3월 1일 단두대에서 죽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비극적인 삶! 틀림없이 가장 유명한 스코틀랜드 왕족인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는 역사에 그녀의 흔적을 남겼다. 1542년에 태어나 1568년까지 스코틀랜드의 여왕이었던 그녀는 잠시 프랑스의 여왕이기도 했다. 헨리 7세의 증손녀인 그녀는 또한 영국 왕위에 대한 강력한 주장을 가지고 있었고, 특히 가톨릭 신자들에게 인정받았다. 하지만 여러 번의 잘못된 결혼과 정치적 실수로 그녀는 스코틀랜드에서 도망쳐야 했다. 그 후 메리는 그녀의 사촌인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포로가 되었다. 태어나자마자 아버지를 잃다. 갤러리의 2/30 사진 메리 스튜어트라는 이름의 그녀는 아..

단두대에서 죽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비극적인 삶!~2

단두대에서 죽은 스코틀랜드 여왕 메리의 비극적인 삶! Stars Insider별 스토리 • 2023년 3월 1일 그녀는 골프를 좋아했다. 갤러리의 16/30 사진 종종 골프를 친 최초의 여성이라고 여겨지는 메리는 프랑스에 있는 동안 어린 나이에 골프를 배웠다. 하지만, 그녀의 골프에 대한 사랑은 혹독하게 비난을 받았다. 남편 헨리가 죽은 지 며칠 만에 골프를 즐기는 것이 목격된 이후,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그를 죽이려고 음모를 꾸몄다고 생각했다. 새로운 사랑 갤러리의 17/30 사진 메리는 보트웰 백작 제임스 헵번과 사랑에 빠졌고, 그녀가 임신했다는 소문이 퍼졌다. 그는 헨리의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지만,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메리와 제임스는 결혼했다. 첫 수감 갤러리의 18/30 사진..

김만철일가탈북[金萬鐵一家脫北]

김만철 일가는 1987년 1월 15일 배를 타고 북한을 탈출했다. 엔진 고장으로 표류하던 김만철 일가의 배는 일본 해상 순시선에 발견돼 20일 일본으로 예인됐다. 그 후 김만철 일가 처리 문제를 놓고 남북한과 일본, 나중에는 대만까지 밀고 당기기를 계속했다. 관계국들은 북한 송환, 한국행, 일본 망명, 제3국 망명 등 다양한 방안을 놓고 줄다리기를 거듭했다. 북한은 김만철 일가를 무조건 돌려보내라고 요구했다. 반면에 남한은 김만철 일가의 한국행을 일본에 공식 요청한 것에 더해, 협조를 당부하는 대통령 전두환의 친서까지 일본 수상에게 전달했다. 그러면서 김만철 일가를 적극적으로 설득했다. 이와 관련, 2017년 1월 20일 한겨레는 "당시 전두환 대통령은 남조선으로 오기만 하면 서울에 일등급 병원을 차려주..

Daily life in North Korea - “My Brothers and Sisters in the North” (Full awarded documentary)

Daily life in North Korea - “My Brothers and Sisters in the North” (Full awarded documentary) https://www.youtube.com/watch?v=IBqeC8ihsO8 Award-winning documentary filmmaker Sung-Hyung Cho was the first South Korean filmmaker to ever receive an official permit to film in North Korea. Traveling the country, she accompanies ordinary people during their everyday life and work routines, talking to 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