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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민주적 정당성을 심판하는 기관이 아니다

류지미 2022. 8. 29. 17:09

◇허 영 교수, “법원은 민주적 정당성을 심판하는 기관이 아니다”

국내 헌법학의 권위자인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는 “법원은 합법성을 따지는 기관”이라며 “국민의 힘 비대위 설치에 대한 법안의 가처분 결정은 헌법의 법리적인 관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그는 “이는 정당의 자율 영역에 속해 법원이 개입할 사안이 아니다”고 지적했다.

 

 

[시론] 법원은 민주적 정당성을 심판하는 기관이 아니다

허영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
입력 2022.08.29 03:00
 

국민의힘 비대위 설치에 대한 법원의 가처분 인용 결정은 큰 파장을 불러왔다. 여당은 혼란에 빠졌다. 국정을 책임진 집권 여당의 지도 체제 불확실성으로 생기는 국정 혼란의 피해자는 국민이다. 정치의 사법화를 보는 국민도 짜증스럽고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법원 결정의 핵심은 국민의힘이 비상 상황을 만들어 당 대표의 법적인 지위를 박탈하려는 것은 정당의 민주적 내부 질서에 어긋난다는 것이다. 법원은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 사이에 의견을 달리하는 경우 비대위 설치가 당원의 총의를 반영한다고 볼 수 없을 뿐 아니라 민주적 정당성의 크기에 비해 구성된 당 기구 사이의 민주적 내부 질서를 해할 수 있어”라고 판시했다. 다시 말하면 당 대표는 당원의 총의에 따라 뽑혀 정당 내에서 민주적인 정당성이 가장 크므로 비록 당헌상 절차적인 하자가 없는 비대위 설치라도 헌법이 정한 당내 민주주의에 위배한다는 취지다.


이 논증은 헌법의 법리적인 관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 우선 법원은 법적인 다툼이 있으면 합법성을 심판하는 기관이지 민주적인 정당성을 심판하는 기관이 아니다. 따라서 당 대표와 최고위원들의 민주적인 정당성의 크기를 따지는 그 자체가 법원의 권한을 넘어선 일이다. 당원의 총의를 대의하는 기관은 대표뿐 아니라 전국위 및 상임전국위와 최고위원회다. 대표가 징계 처분을 받아 당권이 정지된 상태에서 당원의 총의는 이들 당내 대의기구가 대표한다고 보는 것이 대의 민주정치의 상식이다. 헌법에 의해서 자율적인 활동이 보장된 정당이 합법적인 대의적인 절차를 통해 비대위를 설치하는 것은 헌법이 허용하는 정당 활동의 당연한 내용이다. 비상 상황 여부와 비대위 설치 여부를 결정하는 일은 민주적인 정당성과는 무관한 정당 내의 대의적인 사항이고 합법성의 영역이다. 법원은 합법성의 관점에서 절차적인 위법 여부만을 판단하면 된다. 그런데도 국민의힘이 비대위를 설치한 절차는 합법이지만 민주적인 정당성에 어긋난다는 논증은 월권적인 정치 개입이다.


국민의힘이 비상 상황이 아닌데도 민주적인 정당성이 가장 큰 당 대표를 몰아내려고 최고위원 사퇴 등으로 비상 상황을 만들었다고 단정한 부분도 법원의 직무인 합법성의 판단과는 무관한 정치적인 판단이다. 그 순간 법원은 금기시되는 정치의 영역으로 들어선 것이다. 과거 우리 사법부가 정당 내부 문제에 대해서 지극히 자제적인 태도를 보이면서 절차적인 합법성 판단에 국한한 것도 사법의 정치화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사법부가 민주적인 정당성을 판단하려고 덤벼드는 순간 이미 사법은 정치화할 수밖에 없다. 민주적인 정당성을 따지자면 법원이야말로 100석 이상의 국회의원들의 합의로 이루어진 비대위 설치를 무효화할 수 있는 민주적인 정당성을 갖고 있는가. 그렇기 때문에 법원은 정당 문제를 판단할 때 민주적인 정당성이 아닌 합법성만을 판단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헌법이 정당의 조직과 활동이 민주적일 것을 요구한 것은 정당의 당헌 당규의 제·개정을 비롯한 당직자 선출과 의사 결정 과정이 민주적이어야 한다는 것을 명령한 것이다. 따라서 법원이 인정한 대로 비대위 설치의 절차가 당헌 당규에 따라 하자가 없었다면 당연히 그 결과물인 비대위도 합법적인 것으로 판단했어야 한다. 그것이 법원이 해야 할 합법성의 판단이다. 사퇴한 최고위원 자리를 전국위를 통해 보충해서 정상화할지 바로 비대위 체제로 갈지를 결정하는 일은 헌법이 보장한 정당의 자율 영역이지 법원이 개입할 일이 아니다. 법원의 활동 공간은 법치주의의 영역이지 민주주의의 영역이 아니다. 법원은 이번 결정을 법치의 공간에서만 다시 한번 깊이 검토하기를 촉구한다.

조선일보